프랜차이즈가 아니면 갈 데가 없어

 

 한국의 프랜차이즈화 정도를 새삼스럽게 다시 실감할 때가 있는데, 친구와 약속 장소 정하기 위해 대화를 나눌 때다. 강남에서 볼까, 종각에서 볼까, 아니면 홍대입구에서 볼까. 그럴 때마다 문득 스쳐 가는 생각이 있다. “사실 어디든 다 똑같지 않은가?” 실제로 홍대입구, 종각, 강남, 서울 어디를 가든 온통 프랜차이즈로 뒤덮여 있다. 서울뿐 아니라 지역 고유의 특색을 자랑하는 동네를 가도 비슷하긴 마찬가지다. 프랜차이즈 편의점, 치킨집, 카페, 식당으로 가득하다. 위치를 알려주는 표지판을 보지 않으면 다른 곳과 구분하기 힘들 정도로 말이다.

 이는 아주 작은 예에 불과하다. 프랜차이즈는 이미 우리의 일상생활 구석구석에 파고들었다. 너무나 자연스럽고 당연하게 시장보다 마트를, 동네의 작은 밥집보다 유명 프랜차이즈 식당을 자주 찾지 않는가. 어느덧 우리 생활에서 빠질 수 없는 요소가 되어버린 프랜차이즈, 그것의 의미는 무엇일까?

 

프랜차이즈화에 대한 명상

 

 미국의 저명한 사회학자 조지 리처(George Ritzer)는 『맥도날드, 그리고 맥도날드화The McDonaldization of Society』에서 효율성(efficiency), 계산가능성(calculability), 예측가능성(predictability), 통제(control)로 대표되는 맥도날드의 특성을 들어 맥도날드화’(McDonaldization)라는 개념을 고안했다. 맥도날드는 어떤 음식점보다 빠르게 정확한 양의 음식을 제공하고 전 세계에 똑같은 햄버거를 제공한다. 이는 고도의 무인기술과 통제된 작업을 통해 이루어진다. 맥도날드화의 또 다른 이름은 프랜차이즈화일 것이다. 맥도날드와 마찬가지로 프랜차이즈 음식점, 상점은 전국 어디에서나 똑같은 상품을 제공한다. 그리고 우리는 이러한 사실에 편안함과 안정감을 느끼며 프랜차이즈 가게로 향한다

 하지만 이러한 편리함 속에도 문제는 분명 존재한다. 조지 리처는 합리성의 불합리성이라는 이름으로 과도한 맥도날드화의 몇 가지 문제점을 지적했다. 많은 문제가 있지만 그 중에 비인간화, 동질화를 꼽을 수 있다. 프랜차이즈에 일을 보기 위해 들어가는 것은 인간관계를 맺는 과정이라기보다는 프랜차이즈라는 시스템에 접속하는 쪽에 가깝다. 그곳에서 어떤 사람이 일하는지는 관심의 대상이 아니며 고객과 점원은 주문을 위해 필요한 대화 외에 다른 이야기를 나누지 않는다. 프랜차이즈 안에서 서로 간의 접촉은 최소화된다. 집 앞에 있는 편의점을 일 년 동안 매일같이 들락날락해도, 장을 보기 위해 항상 대형마트를 들러도 그곳에서 일하는 사람과 1분 이상 대화를 나누지 않는다. 어쩌면 이러한 방식에 익숙해져 가끔 점원이 개인적으로 던지는 짧은 대화와 호의 담긴 질문마저 불편하고 어색하게 느껴지는지 모른다.

 과도한 프랜차이즈화의 또 다른 영향은 전국을 빠른 속도로 동질화시키고 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프랜차이즈의 확산은 곧 전국 거리의 풍경이 비슷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두메산골이 아닌 한 5분만 걸으면 편의점을 발견할 수 있고, 사람이 조금이라도 모이는 곳이다 싶으면 어김없이 프랜차이즈 카페와 음식점이 들어선다. 어디든 똑같이 펼쳐지는 프랜차이즈의 홍수 속에 새로움을 향한 호기심은 동질화와 예측가능성으로 대체되었다.    

 

프랜차이즈화된 세상에서 살아가기

 

 맥도날드화 혹은 프랜차이즈화의 문제점이 있다고 해도, 시골에서 농사를 지으며 모든 생활을 자급자족을 통해 이룩하지 않는 한 이를 벗어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또한 맥도날드화가 확산되기 이전의 모습이 전적으로 좋았다고 말하기도 힘들다. 심지어 맥도날드화의 문제점보다 장점이 훨씬 커 보이기도 한다. 여기서 우리가 택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조지 리처는 개인적 대응으로 최선의 비법은 맥도날드화된 세계에 갇히지 않은 채, 그것이 제공하는 최선의 것들의 장점만을 택하는 취하는 것이다. () 불가피한 경우에 한해 또는 합리화되지 않은 체계에서 제공할 수 없는 경우에 한해 맥도날드화된 체계를 이용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조지 리처의 말이 맥도날드화가 끼치는 비인간화, 동질화 같은 부작용을 최소한으로 줄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일지 모른다. 잠시나마 프랜차이즈 없이 살아보고, 그 과정에서 한동안 잊고 있었던 것을 기억해내려는 시도가 작은 시작이 아닐까. 매일같이 마주치는 편의점 점원과 몇 년 동안 아무 말도 없이 지내고, 전국이 프랜차이즈의 이름으로 똑같아지는 모습이 전적으로 좋다고 말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조지 리처 책의 한국 번역판 표지에 이렇게 쓰여 있다. “유토피아인가, 디스토피아인가?” 둘 사이에 우리는 놓여있다. 그리고 어디로 향할지는 우리의 노력, 즉 맥도날드화와 프랜차이즈화가 주는 혜택과 동시에 잃어가는 것이 무엇인지 곰곰이 따져보고 생각해보려는 노력에 달려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