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산다는 것에 대하여: 수건이냐 걸레냐, 문제는 그 너머에

 

 토요일 아침, 약속 시간 한 시간 전에 일어났다. 10분만 더 자겠다는 안이한 생각이 참사를 불러 일으켰다. 부랴부랴 씻고 나왔다. 빨랫줄에 걸린 수건(?) 한 장이 보였다. 재빠르게 몸에 묻은 물기를 털고 집을 나섰다. 재빠르게 준비한 덕에, 아니 택시비로 6,000원을 지불한 대가로 약속 시간에 늦지 않았다. 두어 시간쯤 지났을까, 함께 사는 친구로부터 메시지가 왔다. “XX 대박. 걸레를 수건으로 착각하고 몸 씻음. 어떻게 이걸 분간 못할 수가 있지?” 걸레로 몸을 씻다니, 심지어 그 걸레는 나흘 전부터 바닥 구석구석의 먼지를 닦아낸 것이라고 했다. 갑자기 몸이 근질거리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생각하기에 따라서 걸레를 수건으로 알고 한두 번 쓴 것은 큰 문제가 아닐지 모른다. 혹자는 자신의 비슷한 경험을 떠올리며 누구나 그런 실수 한 번쯤은 할 수 있다고 말할지 모른다. 하지만 문제의 본질은 걸레와 수건을 따질 만큼 깔끔한 성격인지 아닌지 혹은 걸레와 수건의 미세한 차이를 구별해낼 만한 섬세한 시력을 가졌는지 아닌지에 있지 않다.

 그 친구는 이어 이게 다 걸레질을 한 번도 안 해봤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정확한 지적이었다. 그 순간 걸레로 몸을 씻었다는 찝찝함은 걸레를 잡아본 적이 한 번도 없다는 민망함과 미안함으로 바뀌었다. 실제로 나는 제대로 걸레질을 하고 걸레를 빨아본 적이 없었다. 그러니 당연하게도 나는 걸레와 수건을 분간해내지 못한 것이다. 따라서 이렇게 말할 수 있다. 걸레와 수건의 차이를 알아내지 못하는 사람은 곧 가사노동에 제대로 참여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말이다.

 이와 비슷한 일은 집에서 비일비재하게 발생한다. 그리고 문제의 주인공은 대개 가사노동에 참여하지 않는 사람, 한국의 경우에는 거의 남성이다. 나처럼 걸레를 수건으로 착각해 몸을 씻는 경우, 설령 그 정도의 실수는 하지 않더라도 배우자에게 이거 걸레야 수건이야?” 묻는 것부터 시작해 소금과 미원을 헷갈려 요리를 망치는 경우, 물론 정체불명의 요리를 창조해내는 사고를 일으키지 않더라도 둘 중에 뭐가 소금이야?” 또는 국자는 어디에 있어?” 묻는 이유는 전적으로 평소에 가사노동에 참여하지 않기 때문이다.

 민망함을 무릅쓰고 내가 겪었던 일은 한 가지 더 말하자면, 화장실 틈새를 닦는 용으로 둔 칫솔로 양치질한 적이 있다. 이것 또한 단순한 실수, 가볍게 웃어 넘길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이를 닦는 칫솔과 화장실 때를 없애는 칫솔을 구분하지 못한다는 것은 화장실 청소에 신경쓰지 않은 나의 평소 모습을 그대로 보여준다. 이런 어처구니 없는 일은 가사노동에 많은 시간을 투여하는 사람, 한국의 경우는 대개 여성, 에게는 결코 일어나지 않는다.

 이처럼 가정에서 벌어지는 실수는 단순 실수가 아니다. 가정 내의 대소사에 무관심했음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징표다. 문제의 본질이 이러하다면 답은 간단하다. 가사노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것이다. 물론 그 다음, 설거지를 할 때 그릇만 달랑 씻고 싱크대 주변에 튄 물을 행주로 닦지 않는 식의 태도는 또 다른 문제지만 말이다.  

 

 

 

 

          

가사노동,함께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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