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경가족>, ‘남은 자의 몫과 남은 자에 대한 우리의 몫

 

남은 자의 몫

 

 영화 <동경가족>은 노부부의 자녀들이 사는 동경 방문으로 시작한다둘에게는 세 명의 자녀가 있다첫째 아들은 의사로 개원해 단란한 가정을 꾸리고 있고 둘째 딸은 미용실을 운영하며 남편과 둘이 오붓하게 지내고 있다노부부는 순서대로 두 집에 들른다셋째 아들은 둘의 유일한 걱정인데,공연 무대 설치 일을 한다아직 결혼하지 않은 상태다영화는 오랜만에 조우한 부모와 자녀의 모습을 비추며 가족의 의미에 대해 다시금 돌아보게 한다그뿐만 아니라 단카이 세대’(2차 세계대전 직후인 1946~1949년에 태어난 일본의 베이비붐 세대)와 단카이 세대의 자녀 간의 차이를 비롯해 일본 사회의 고령화 문제를 탁월하게 짚어냈다동경의 한 술집에서 옛 친구와 함께 변해버린 일본과 늙어버린 자신을 안타까워하고 세상의 주역이었던 과거를 추억하는 히라야마 슈키치(하시즈메 이사오 분)와 그들을 아니꼽게 바라보는 삼사십대 직장인의 모습은 노년층을 바라보는 젊은층의 인식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영화는 막바지로 흘러 노부부는 동경 여행을 마치고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는 날을 앞두게 된다하지만 슈키치는 아내와 함께 돌아갈 수 없게 된다아내 히라야마 토미코(요시유키 카즈코 분)는 갑자기 정신을 잃고 쓰러진다그는 다시 일어나지 못한다올 때는 둘이 함께였지만 돌아갈 때는 혼자가 된 것이다가족 모두는 고향으로 내려가 장례를 지낸다슈키치는 여전히 말이 없다. “망자와 생자는 죽은 날이 아니라파묻는 날 헤어지는 것”(김광규「남은 자의 몫『처음 만나던 때』)이라는 말처럼 그는 아내와 영원히 볼 수 없게 된 것이다.

 “엄마를 잃은 자식들은 저마다 슬픔의 이기주의자가 된 것 같았다자기들의 슬픔만 곱씹을 뿐,

아빠의 슬픔은 위로해주려 하지 않았다반세기 가까이 함께 살아오며 사남매를 길러낸 아내를 잃은 지아비의 심정을 그들이 알 리 없었다.”(김광규「남은 자의 몫」자녀들은 아버지를 위로하기는커녕 앞날을 걱정하기에 바쁘다아버지에 관한 이야기는 앞으로 어떻게 모실지에 관한 것뿐이다아버지를 어떻게 보살필지에 대해 이야기가 오고 간다모두 각자의 이유로 아버지를 모시는 데 어려움을 표한다슈키치는 섬에 남아 혼자 지내겠다고 말한다자녀들은 아버지가 걱정스럽지만 일단 지켜보기로 하고 동경으로 올라간다그나마 셋째 아들 히라야마 쇼지(츠마부키 사토시 분)는 애인 마미야 노리코(아오이 유우)와 좀 더 남아 아버지를 돌본다.

 

남은 자에 대한 우리의 몫

 


"노년은 전투가 아니다. 노년은 대학살이다." (필립로스, 『에브리맨』​)

 

 오래된 제비집이 사그라져가고 있었다혼자서 감당할 수 없는 슬픔 때문이 아니라도이제는 가장 노릇이 끝난 셈이었다서둘러 모든 일을 정리하고혼자서 떠날 준비를 해야 할 차례였다아쉬운 전송을 받으며 먼저 떠난 자는 얼마나 행복한가.

(김광규「남은 자의 몫」)

 

 쇼지와 노리코가 섬을 떠난 후 영화는 막을 내린다하지만 문제는 이제부터 시작이다남은 자 슈키치는 어떻게 살아갈까이제는 모든 것을 혼자서 해내야 한다. ‘떠날 준비마저 말이다. ‘노년이라는 대학살’(필립 로스『에브리맨』)을 그는 혼자 감내해야 하는 것이다이는 영화 속 허구도먼 나라 일본의 이야기도 아니다한국그리고 우리 모두의 이야기다그리고 그 상황은 일본보다 훨씬 위험하다.

 노년은 아픔가난외로움이라는 삼중고와의 싸움이다물론 형편이 나은 몇몇은 비교적 수월하게 견뎌낼 수 있겠지만 대다수는 그렇지 못하다특히 온갖 질병과 급속도로 노쇠해지는 몸은 누구도 피할 수 없다. ‘고려대 박유성 교수팀의 발표에 따르면 65세 이상 노인 10명 중 7명이 만성질환 두 가지 이상을 앓고 있으며소득 하위 20%는 자식 얼굴을 1년에 네 번도 못 보며부모 소득이 1%높아질수록 따로 사는 자식과 일주일에 한 번 이상 볼 가능성이 두 배로 증가(숭실대 조사)하며노인 빈곤율이 OECD 평균은 12.8%인 반면 한국은 48.5%에 이른다게다가 전체 의료비가 100원 나왔을 때 일본은 14미국은 12원만 개인이 낸다우리는 35원을 개인이 해결한다.’(참조김수혜低소득 일자리 전전하며, 5~6년 앓다가쓸쓸히 가는 한국식 죽음’, 『조선일보』)

 남은 자가 떠난 자를 부러워할지 모르는 지경에 이르렀다이런 상황에서 남은 자는 과연 간직한 뒷모습의 기억을 전해주고 스스로 떠날 때까지아무런 일도 없었던 것처럼그렇게 계속해서 살아”(김광규「남은 자의 몫」)갈 수 있을까남은 자 혼자 감당하기에는 그 몫이 너무 크다남은 자의 몫을 사회국가정부가 나눠 맡아야 한다남은 자가 남은 자의 몫을 다할 수 있도록 우리 모두는남은 자에 대한 몫을 해야 한다어떻게 남은 자에 대한 몫을 할 수 있을지 고민이 필요한 지금이다.  

 


결국 혼자남게 된 슈키치. 가족의 빈자리를 채우는  일은 사회, 우리 모두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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