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동안 출판시장의 모습은 한결같았다. 오랫동안 자기계발 관련 책들과 ‘힐링’을 전하는 책들은 유행에 유행을 거듭했고 그 사이에는 비집고 들어갈 작은 틈조차 보이지 않았다. 수많은 스타와 ‘멘토’가 탄생했다. 그들은 여전히 인기를 구가하고 있다. 그런데 거대한 장벽처럼 보이던 자기계발과 ‘힐링’의 유행에 최근 작은 균열이 일어났다.
한병철 교수의 『피로사회』가 인기를 얻은 것을 시작으로 ‘○○사회’라는 제목의 책들이 속속 등장했다. 『피로사회』에 이은 『투명사회』를 비롯해 주창윤 교수의 『허기사회』, 엄기호 교수의 『단속사회』, 정지우 작가의 『분노사회』 등 다양한 책들이 출간되었다. 제목은 조금 다르지만 노명우 교수의 『세상물정의 사회학』 역시 같은 흐름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동안 보기 힘들었던 책들의 등장은 일단 환영할만한 일이다. 사회에 대해 말하는 다양한 책들이 출간되는 현상을 어떻게 볼 수 있을까. 오랫동안 지속되었던 자기계발과 ‘힐링’의 유행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IMF 이후 자기계발 서적은 꾸준한 인기를 끌었다. 그 안에는 수많은 성공담들이 담겨있었다.흔히 말하는 ‘개천에서 태어나 용이 된’ 사람, 즉 자수성가를 이룬 사람들의 이야기였다. 성공의 주인공들이 전하는 말은 한결 같다. “노력해라. 당신도 언젠가는 성공할 수 있을 것이다”
자기계발 다음으로는 ‘힐링’이 찾아왔다. 2010년 말 김난도 교수의 『아프니까 청춘이다』 이후 한국사회에는 ‘힐링’ 바람이 불었다. ‘힐링’을 전하는 ‘멘토’의 이야기 방식은 자기계발과 조금 달랐다. 자기계발이 다그쳤다면 ‘힐링’은 보듬어주었다. “많이 힘들지? 그때는 다 그런 거야. 조금만 더 참아.” ‘멘토’들은 사람들의 아픔에 공감해주었고 사람들은 ‘멘토’들에게 의지했다.
자기계발과 ‘힐링’, 둘은 말하는 방식에서 확연한 차이를 보이지만 본질은 똑같다. 성공도 실패도 자신의 노력여하에 달려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더 열심히, 더 치열하게 살라는 것이다. 개인과 사회와의 관계, 개인에게 끼치는 구조의 영향은 전부 탈각된 채 모든 책임은 개인의 어깨 위에 올려진다.
시간이 지날수록 사람들은 지쳐갔다. 노력조차 할 수 없는 환경은 둘 째 치고라도, 개인의 노력만으로 전부 해결될 수 없다는 것을 점차 깨달았다. 자기계발과 ‘힐링’이 결국 자수성가 이데올로기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않은 말임을 알게 된 것이다. 그리고 “왜?”라고 묻기 시작했다. 왜 자신의 삶이 이렇게 팍팍하고, 왜 미래의 답이 보이지 않는지 말이다.
사회와 관련한 많은 책들의 출현과 인기는 이에 대한 방증이다. 이제 사회에 대해 질문하기 시작한 것이다. 인간은 혼자 살 수 없다. 어떤 방식으로든 공동체를 이루고 살아간다. 따라서 구조와 사회에 대한 이해 없이는 개인에 대한 이해 또한 있을 수 없다. 개인에 대해 아무리 많은 질문과 고민을 한다 해도 사회적 맥락이 고려되지 않는다면 공염불에 불과하다.
앞서 언급한 책들의 저자들은 분노, 허기, 단속을 우리 사회의 특징적인 징후로 파악하고 그 현상의 원인에 날카로운 매스를 들이댄다. 징후가 다양한 만큼 원인 또한 다양하다. 그 많은 원인을 하나둘 알아갈 때, 특히 지금으로써는 도저히 손쓸 수 없어 보이는 원인을 마주할 때는 힘이 빠지기도 한다. 하지만 지독한 무력감에 휩싸일지라도, 도무지 답이 보이지 않는다 하더라도 새롭게 질문을 한다는 것은 치료에 조금 다가섰음을 뜻한다. “만일 사회가 그 사회에 대한 질문을 멈춘다면 사회는 아픈 것이다”고 그리스 철학자 카스토리아디스는 말했다. 당장은 아파서 피하고 싶을지 모르지만 끊임없이 사회에 대해 질문을 하는 것만이 역설적으로 아픔을 치유하는 방법이다. 그리고 이것이 개인을 치유할 수 있는 지름길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