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소치 동계 올림픽이 막을 내렸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이번 올림픽이었다. 빙상연맹의 부정과 비리에 대한 사람들의 비난을 불러일으킨 빅토르 안(안현수)의 금메달 행진, 금메달을 목에 걸 것으로 예상되었던 모태범과 이승훈의 부진, 기대 이상의 활약을 펼친 여자 컬링 대표팀, 세계 최고의 실력을 다시 한 번 증명한 ‘빙속여제’ 이상화가 많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렸다.
무엇보다 김연아가 출전한 여자 피겨스케이팅이 단연 화제였다. 김연아는 은메달을 획득했다. 이는 곧 판정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소트니코바가 러시아 대표라는 이유로 판정에서 특혜를 받아 1등을 했다는 것이다. 한국의 언론뿐만 아니라 외국의 몇몇 언론에서도 여자 피겨스케이팅의 판정을 문제 삼았다. 한국 국민들은 분노했다. 이는 곧 판정 재심사 서명운동으로 이어졌다. 200만 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서명에 동참했다.
서명운동은 시민이 직접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창구 중 하나다. 하지만 지금 이와 같은 서명운동은 정당하다고 볼 수 있을까? 그리고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갖고 호응을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카타리나 비트, 미셸 콴 등 과거 유명 피겨스타에 더해 시카고 트리뷴, AFP통신 등 외신에서도 판정에 의문을 제기한 것을 보면 판정의 객관성에 의심의 여지가 있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일 것이다. 그렇다면 여기서 다시 한 번 의문을 던져봐야 하지 않을까? 유명 피겨 스타, 외신의 의견은 철저한 객관성에 근거한 판단일까? 피겨스케이팅에서 판정 항목 중 예술 점수가 있다. 물론 가능한 한 보편성과 객관성을 근거로 판단되어야 하지만 개인적인 취향과 성격이 개입될 수밖에 없는 부분이다.
‘심판의 판정도 경기의 일부’라는 스포츠계의 오랜 경구가 있다. 경기하는 선수가 사람이듯, 심판 역시 사람이다. 판정에서 실수뿐만 아니라 개인의 가치개입이 어느 정도 드러날 수밖에 없다. 과거에 그랬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4년 후 평창에서 동계 올림픽이 개최된다. 한국 역시 알게 모르게 개최국의 이점을 얻을 것이다. 만약 그때 지금의 피겨스케이팅 판정 논란과 같은 일이 다시 벌어진다면, 그리고 논란의 수혜자가 한국 선수라면 우리는 어떤 반응을 보일까 궁금하다. 지금과 같이 재심사를 하자는 서명운동이 일어날까. 아마 그럴 가능성은 요원해 보인다.
2002년 한∙일 월드컵 16강에서 이탈리아는 한국에 패했다. 우리에겐 감동적인 승리이자 한국 선수들의 땀과 노력이 만든 결실이었다. 이탈리아 사람들도 똑같이 생각할까? 한국 선수들은 왜 그렇게 거칠었으며,심판은 한국의 편이었다며 경기의 결과에 대해 분노했다. 한국이든 이탈리아든 문제의 본질은 우리, 우리선수, 우리나라는 항상 옳으며 반드시 승리해야 한다는 생각이 아닐까.
스위스의 작가 피터 빅셀이 이런 말을 남겼다. “애국주의에는 적이 필요하다. 아, 여러분은 내가 지금 애국주의와 국수주의를 혼동한다고 생각하는가? 아니다. 타인의 애국심은 언제나 국수주의다.”(피터 빅셀,『나는 시간이 아주 많은 어른이 되고 싶었다』) 과거에는 아사다 마오와 안도와 일본이, 현재는 소트니코바와 러시아가 우리의 적이 되었다. 2014년 브라질 월드컵 조별 예선에서 만나는 러시아에 복수해야 한다는 얘기가 들려온다. 바로 지금, 피터 빅셀의 말을 한 번쯤은 다시 되짚어봐야 할 때가 아닐까. 우리 역시 언제든 누군가의 적이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