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똑딱이’를 좋아했던 이유
‘똑딱이’는 야구에서 흔히 거포, 홈런타자와 반대말로 쓰인다. 홈런을 칠 때 나는 소리가 묵직한 ‘딱’이라면 짧은 안타를 칠 때 나는 소리는 가벼운 ‘똑딱’, 그러니까 장타보다는 단타에 타격보다는 달리기와 수비에 능한 선수를 지칭한다. 흔히들 야구의 꽃은 홈런이라고 한다. 홈런이 꽃이라면 1루타는 꽃잎 하나다. 홈런은 한 방으로 1점을 얻을 수 있지만 단타로 1점을 얻기 위해서는 최소 3개의 안타가 필요하다. ‘타격왕은 벤츠를 타고 홈런왕은 캐딜락을 탄다’는 말처럼 둘 사이에는 연봉에서도 현격한 차이가 있다.
이상하게 어릴 때부터 홈런타자보다 ‘똑딱이’가 좋았다. 때에 따라 바뀌기는 했지만 항상 ‘똑딱이’로 불리는 유형의 선수를 좋아했다. 딱히 특별한 이유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냥 좋았다. 왜 좋은지 몰랐다. 때로는 내가 이상한 게 아닌가 하는 의심마저 들었다. 좋아하는 데 돈이 드는 것도 아닌데 왜 홈런 잘 치는 선수를 두고 짧은 안타를 잘 치는 선수를 좋아하는지 말이다.
왜 ‘똑딱이’가 좋은지에 대한 의문은 야구에 대한 관심이 멀어져 가면서 자연스레 잊혀 갔다. 얼마 전 지나가다 양준혁 선수의 인터뷰를 보게 됐다. 거기에 이런 내용이 있었다. “항상 1루까지 열심히 뛰면서 매 순간 최선을 다하는 것이 중요하지 홈런 1위, 안타 1위 같은 숫자로 나타나는 기록이 중요한 게 아니에요.” 양준혁 선수가 달리 보였다. 그리고 이 말은 내가 ‘똑딱이’를 좋아했던 이유에 대한 답이었다.
그들은 수비수의 키를 넘기는 안타든 수비수 정면으로 향하는 범타든 무조건 1루를 향해 전력으로 질주한다. 타구를 보지도 않은 채 1루만 보고 뛴다. 수비수가 방심한 틈을 타 2루까지 가기 위해, 수비수가 실수할 수도 있기 때문에 일단 뛰고 보는 것이다. 부상의 위험이 있는 슬라이딩도 망설이지 않는다. 살겠다는 일념 하나로 몸을 날린다. 유니폼은 흙투성이가 된다. 이런 노력과 열정에 나는 반했던 것이 아닐까.
어떻게든 살아서 1루를 밟겠다는 의지, 이것은 우리의 인생에 그대로 적용된다. 그들은 홈런을 치기에는 부족한 힘을 끈기와 근성으로 메꾼다. 어떻게든 공을 맞혀져 파울을 만들어내고 페어가 되는 순간 1루만 바라보고 온 힘을 다해 뛰는 것이다. 이런 작은 노력이 모여 1점이 만들어지고 1점 쌓여 팀은 승리에 이른다.
국적을 불문하고 야구계에 홈런타자가 별로 없듯이 나를 포함해 대부분의 사람이 현실에서 홈런타자이기보다는 ‘똑딱이’에 가까울 것이다. 갑자기 엄청난 힘이 생길 가능성은 거의 없다. 살아남는 방법, 인정받는 방법은 단 하나다. 투수를 물고 늘어져 어떻게든 야구배트를 공에 갖다 대고, 잘 맞든 잘 맞지 않든 1루를 향해 죽어라 뛰고, 흙먼지를 날리며 베이스에 몸을 날리는 것 말이다. 온몸은 땀과 흙으로 범벅이 될 것이다.
그러다 보면 자연스럽게 남들의 환호와 축하를 받으며 홈 베이스를 밟는 순간이 찾아오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