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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운 방 안에서 내다본 밝은 세상
김화영 지음 / 현대문학북스 / 1996년 2월
평점 :
절판
가끔 서점이나 헌책방을 구경하고 있다 보면, 책장 귀퉁이에 ‘영화일기’, ‘독서일기’ 따위의 제목으로 꽂혀 있는 책들이 왕왕 눈에 띈다. 이런 책을 내는
것이 지식인이 되기 위한 통과의례처럼 느껴지기도 하는데, 글 깨나 쓴다는 사람이라면 모두 한 두 권쯤은
출판된 책이 있는 듯 하다. 물론 이렇게 보이는 것도 아등바등해야 간신히 중산층에 들까 말까한 나의
사회〮경제적 위치와
기껏해야, 그것도 아주 낮은 수준의 책과 영화에 대한 문화적 소양에서 나온 것이지만 말이다.
내에게
보이는 것은 ‘영화일기’, ‘독서일기’ 같은 책들뿐이지만, 실제로는 ‘클래식일기’, ‘오페라일기’ 같은 책이 나는 미처 보지 못한 곳에 수십, 수백 권 쌓여있을 지도 모를일이다. 그리고 ‘영화일기’. ‘독서일기’ 같은
책을 쓴 사람들 역시 그들의 경제적〮문화적
수준에서 할 수 있었던 것은 책 읽기와 영화 보기 밖에 없었기 때문에 그런 책을 쓸 수 밖에 없지 않았을까. 단돈
만원이면 새 책을 살 수 있고 그것마저 없다면 헌책방을 가면 된다. 혹 헌책을 살 여력마저 안 된다면
모든 책을 공짜로 빌릴 수 있는 도서관을 이용하면 된다. 영화 역시 마찬가지로 만원이면 한 편을 볼
수 있고, 올바른 방법은 아니지만 사탕 하나 가격에도 못 미치는
140원으로 인터넷에서 다운을 받을 수 있다.
김화영
씨가 쓴 책의 제목 <어두운 방안에서 내다본 밝은 세상>은
이를 가장 잘 나타내는 말이 아닐까. ‘어두운 방안에서’ (물론
그 분은 이렇게 하지 않았겠지만) 140원을 내고 영화를 다운 받아 보며 수 많은 감독과 배우와 스텝들의
노력으로 만들어낸 역작이 그려내는 ‘밝은 세상’을 ‘내다본’다는 것이다.
반면에
고급 문화라고 일컬어지는 오페라나 클래식을 향유할 수 있는 사람들은 어두운 방안에 있을 필요가 없다. 아니
있을 수가 없다. 앞에 아트 혹은 예술이 꼭 들어가는 휘황찬란한 극장에서 에서 오페라와 클래식 연주를
감상한다. 어릴 때부터 늘 보고 듣고 자라왔고 십 만원을 호가하는 입장권 가격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정말로
밝은 세상, 나에게 오페라를 듣고 갤러리에서 미술품을 감상하는 것은 전혀 딴 세상의 이야기다. 어릴 때 들은 것이라고는 TV의 가요프로에 출연하는 가수들뿐이었고
지금은 기타를 뚱기고 드럼을 두들기는 밴드들의 노래들뿐이다. 미술은 더 말할 것도 없다. 어린 시절 집에서 클래식을 들어본 적도 없고 오페라는커녕 미술관을 가본 기억이 있는지조차 가물가물하다. 그도 그럴 것이 부모님 역시 나와 비슷한 환경에서 자랐기 때문이다.
나도
모르는 새 따라잡을 생각조차 하지 못할 정도로 그들과 엄청난 격차가 벌어진 것이다. 그나마 ‘어두운 방안’에서 영화나 보고 서점과 헌책방을 기웃거리며 책만 뒤적일
뿐이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이렇게 지금까지 살아지게 된
것을. 클래식이니 오페라니 하는 것들을 보고 들을 수 없으니 책과 영화라도 열심히 볼 뿐이다. 그것이 나름의 문화자본을 쌓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비록 누군가
오페라의 유령이나 카라얀 같이 어디선가 한 두 번 주워 들어봤을 뿐인 것들을 물으면, 깨갱하고 주눅들겠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