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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천재적인
베네딕트 웰스 지음, 염정용 옮김 / 단숨 / 2013년 11월
평점 :
품절
소설의 제목 <거의 천재적인(fast genial)>은 베네딕트 웰스를
가리킬 때 필요한 수식어다. 여행이라는 과정을 통해서 탈출구가 보이지 않는 한 명의 인생을 그려냈다. 여느 여행처럼 순간의 즐거움도 행복함도 있지만, 그에게는 인생 전부를
건 여행이다. 프랜시스는 지금 인생의 기로에 놓여있다.
세상의 똥구멍에서
어머니가
라이언과 이혼한 후 프랜시스와 어머니는 클레이몬트에 정착했다. 그곳은 선전 팸플릿에서 ‘뉴저지 주의 중심부에 위치한, 장래가 유망하고 발전도상에 있는 도시’지만 다르게 표현하자면, 아니 사실대로 말하면 ‘세상의 똥구멍’에 있는 도시다. 그리고
그곳에서 가장 밑바닥에 위치한 트레일러가 그의 집이다. 어머니는 다시 시작할 수 있다고, ‘새로운 것’을 이룰 수 있다고 입버릇처럼 말했지만 반년 후 정신병원에
입원했다.
프랜시스는
‘루저’다. 클레이몬트의
트레일러에서 살고, 운동신경이 좋아 레슬링을 했었지만 이내 그만두었고,
학교성적은 하위권이다. 게다가 어머니는 정신병원에 입원 중이다. 운이 좋아 회복될 수 있다 해도 완쾌는 요원한 일처럼 보인다. 너절한
남자들, 조울증, 입원, 퇴원이라는
악순환에서 결코 빠져나오지 못할 것처럼 보였다(p33).
학교에서
그에게 관심을 가지는 여자는 아무도 없다. ‘루저’라고 놀림
받기 일쑤다. 그럴수록 프랜시스의 내면에는 무언가 자라나고 있었다. 어떤
물건을 부숴버리거나 누군가를 패주고 싶은 충동이 솟구쳤다. 그럴 때마다 주변을 한 바퀴 달리거나 귀청을
찢을 만큼 시끄러운 음악을 들었지만 허사였다. 그의 내면에는 어떤 낯선 것이 자라고 있었다. 그것은 점점 더 커지고 강해졌다(p80). 그것은 세상에 대한 분노일까, 혹은 삶에 대한 허무일까.
앤메이 가드너와 출생의 비밀
삶의
목적도 이유도 갖지 못한 채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프랜시스의 삶에 앤메이 가드너가 들어온다. 그녀를 처음
만난 곳은 어머니가 입원한 정신병원에서였다. 프랜시스는 한 눈에 반했다. 서로의 아픔과 상처를 이야기하며 조금씩 친해지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엄마가 남긴 편지를 발견했다. 자신의 모든 과거가 담겨있었다. 프랜시스는
자신이 시험관 아기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는 백만장자 먼로의 유전자 엘리트층을 길러낼 계획에 의해
태어난 아기였다. 그의 아버지는 돈을 받고 정자를 제공했고 어머니는 돈을 받고 아이를 낳아 기른 것이었다. 정자를 제공한 그의 아버지는 하버드 대학교를 졸업했고, 첼로를 멋지게
연주했고, 아이큐가 170이 넘는, ‘기증자 제임스’라는 가명의 남자였다.
프랜시스는
충격을 받았다. 하지만 한편으로 기회이기도 했다. 친아버지가
정말로 그러한 사람이라면, 그의 피를 물려받은 자신은 지금의 밑바닥 생활을 벗어나 잘나가는 엘리트가
될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새로운 세상이 열리는 것이다. 프랜시스는 당장에 앤메이 그로버와 함께 친아버지를 찾아 나서기로 결심했다. 클레이몬트에서
시작해 뉴욕, 라스베이거스, 샌프란시스코, 로스앤젤레스를 지나 티후아나에 이르는 여행이 시작됐다.
그들은 여행을 시작했다. 그들이 뉴욕
시내를 빠져나가는 동안 프랜시스는 손가락으로 조수석의 글러브 박스를 초조하게 두드렸다. 불확실성 속으로
뛰어드는 여행이었다. 이 제임스라는 정자 기증자가 어느 고독한 대학 교수인지, 속물이 된 컨트리클럽 회원인지 아니면 애정이 넘치고 가정적 인물인지는 아무도 알 수 없었다. 그럼에도 프랜시스는 친아버지를 찾아내기만 하면 그가 자신을 이 지겨운 곳에서 꺼내주리라 예감이 들었다. 그것만은 아주 확실해. (p138)
친아버지와 카지노, 그의 유일한 희망
아버지를
찾는 여행 도중에 그들은 라스베이거스에 도착한다. 프랜시스는 기다렸다는 듯이 카지노로 향한다. 라이언이 준 5,000달러를 종잣돈 삼아 도박을 시작한다. 시작과 동시에 몇 판을 내리 이겨 꽤 큰돈을 땄지만, 종내 모든
돈을 잃고 만다. 빈털터리가 된 그들은 그로버의 부모님께 돈을 얻어 가까스로 여행을 이어간다.
무엇에
홀린 사람처럼, 확률 없는 도박에 몰두하는 프랜시스가 한심하게 여겨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에게 다른 선택지는 애초에 주어지지 않았다. 정신병원에 입원한 어머니와 트레일러에서의 가난한 생활, 이 사이에서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당연한 얘기지만 교육을 제대로 받지도 못했다. 입대를 잠시 고려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것이 그의 인생을 해결해
줄 수는 없었다. 혼자서 먹고살기에 넉넉하지는 못해도 부족하지 않은 돈을 벌 수 있겠지만 정신병원에
있는 엄마까지 부양하기에는 역부족이다.
그때
마침 친아버지의 존재를 알게 됐고, 자신과 어머니 인생의 방향을 바꿔줄 변곡점을 될 것이라는 기대로
친아버지를 찾아 나선 것이다. 그에게는 친아버지가 유일한 희망이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그 희망은 산산이 부서진다. 하버드를 졸업한 똑똑한 엘리트일 것이라고
상상했던 그의 친아버지는 티후아나에서 막노동으로 하루하루 연명하는, 프랭클린 자신과 다를 바 없는 ‘루저’였다.
아버지의
실체를 알게 된 프랭클린은 좌절한다. 자신을 클레이몬트의 지겨운 생활에서 꺼내줄 구원자, 친아버지는 애초에 없었던 것이다. 실망만 안은 채 그들은 다시 라스베이거스로
향한다. 아직 한 가지 탈출구가 남았다. 카지노다. 한 번만 제대로 터지면 새로운 인생을 살 수 있을 것이다.
그는
남은 전재산을 털어 도박을 시작한다. 거듭 승리를 거두었고 한 번만 더 이기면 100만 달러를 얻을 수 있다. 검은색에 배팅했다. 만약 공이 지금 검은색 칸에 굴러 떨어진다면, 그는 모든 것을 다시
한 번 바꾸어놓을 수 있다(p429). 그렇게 되면 앤메이와 함께 샌프란시스코로 이사할 것이다. 어머니의 삶도 달라질 것이다. 빨간색이 나와 돈을 잃었을 때도 생각해
본다. 그러면 내일 군대에 지원할 것이고 전혀 다른 삶을 살 것이다.
어쩌면 브래드 제닝스의 형처럼 전쟁터에서 사망하거나 불구가 되어 돌아와 죽을 때까지 절망적인 삶을 근근이 이어갈지도 모른다(p430).
공이 마침내 멈출 때까지의 그 몇 초 동안 프랜시스는 세 가지의 삶을 동시에 살았다. 트레일러 정착촌에서의 삶, 샌프란시스코나 이라크에서 펼쳐질 새로운
두 가지 삶 사이를 왔다 갔다 했다. 그는 부와 행복, 가난과
죽음 사이를 오갔다. 그것은 단 하나의 나라, 즉 이 나라에서
영위할 수 있는 세 가지 삶이었다. 동시성이 주어진 불가사의한 순간이었다. 이 세 가지 삶 중에서 두 가지는 이제 영원히 사라져버릴 것이기 때문이다.
(…)
그는 자신의 숨소리와 공이 굴러가는 소리를 들었고, 머릿속으로 샌프란시스코 또는 이라크, 앤메이와 존 또는 고독한 생활, 삶 또는 죽음을 그려보았다. (p431)
딸깍하고
공이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프랜시스는 조용히 눈을 뜬다. 공이
멈춘 곳은 검은색 칸일까 빨간색 칸일까. 그의 인생 굴곡은 새로운 변곡점을 만나 위로 올라가게 될까, 아니면 더욱 가파르고 빠르게 아래로 향하게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