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만나는 양자의 세계 - 양자 역학부터 양자 컴퓨터 까지 처음 만나는 세계 시리즈 1
채은미 지음 / 북플레저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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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


10월은 양자 수업을 듣기에 딱 좋은 시기인 것 같아요.

매년 10월이 되면 한 해 동안 인류에 가장 큰 공험을 한 사람이나 단체에게 주어지는 노벨상 수상자가 발표되는데, 올해 노벨물리학상은 전자 회로처럼 큰 스케일에서도 양자 현상이 제대로 작동한다는 점을 증명한 세 명의 과학자에게 돌아갔네요. 유엔이 지정한 양자역학 탄생 100주년을 맞은 2025년, 양자 기술을 현실로 가져온 물리학자들의 공로를 인정한 것인데, 그 내용을 살펴보니 전자회로에서 양자 터널링 현상을 증명한 것이래요. 수상자들은 1984년과 1985년 극저온 등 특정 조건에서 저항이 사라지는 초전도체 회로를 활용해 실험을 수행했고, 초전도체에서 전자가 쌍을 이루는 쿠퍼 쌍이 집단적으로 움직이며 원래는 전류가 흐르지 못하는 절연층을 뛰어넘는 양자 터널링 현상이 관찰되었으며, 이 연구결과는 회로 기반 양자컴퓨터 구현 가능성의 단초를 제시하여 약 15년 뒤인 1999년 양자컴퓨터의 정보처리 단위인 큐비트 개념이 처음 등장하게 된 거예요. 이후 대규모 투자가 일어나 2015년 전후로 미국 빅테크기업들이 양자컴퓨터 사업에 뛰어들게 된 거래요. 연구 당시 존 클라크 교수(현재 83세)는 UC버클리의 지도 교수, 존 마티니스 교수(현재 67세)는 박사과정생, 미셸 드보레 교수(현재 72세)는 프랑스에서 온 박사후연구원이었대요. 우와, 과학자들에겐 나이는 진짜 숫자에 불과하네요. 학창 시절에 물리학을 좋아하는 학생은 아니었지만 뒤늦게 알면 알수록 물리학의 세계가 흥미롭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네요. 특히 양자역학, 초면은 아닌데 늘 새롭게 느껴진다고 해야 할까요. 책 제목처럼 저에겐 항상, 처음 만나는 듯한 양자의 세계라서 관련한 책들을 보면 반갑더라고요. 양자 역학을 잘 모른다고 해서 기죽거나 실망할 필요가 없는 것이, 세계적인 물리학자 리처드 파인만 교수는 "양자 역학을 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양자 역학을 모르는 사람이다"라고 말했대요. 그러니 조금씩 꾸준히 알아가면 될 일이네요.

《처음 만나는 양자의 세계》는 물리학과 채은미 교수님의 첫 대중교양서라고 하네요.

이 책에서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 아름답고 신비한 양자의 세계와 양자 컴퓨터가 이끄는 미래를 소개하고 있어요. 사실 양자 역학에 관심이 없고, 전혀 모르는 사람들도 이미 일상에서 매일 양자 역학을 경험하고 있어요. 스마트폰 화면, 가로등, TV, 자동차, 전조등, 냉장고 안의 불빛까지 거의 모든 인공광의 중심에 있는 LED, 이 작고 효율적인 빛의 원천 뒤에 양자 역학이라는 과학의 세계가 숨어 있네요. LED는 발광다이오드의 줄임말로 전기를 흘려 주면 스스로 빛을 내는 아주 작은 전자 소자라서, 빛을 내는 과정에 열 손실이 거의 없고, 전력 효율이 매우 높으며, 수명도 길다 보니, 어느새 백열전구와 형광등에서 LED로 빠르게 대체된 거예요. LED는 전기적 신호를 양자 역학적 반응으로 바꾸어 빛을 내는 장치이며, 빛이 나는 원리는 양자 도약, 즉 전자가 높은 에너지 상태에서 낮은 상태로 떨어지면서 빛을 내는 현상이래요. LED의 색은 그 안에 들어간 반도체 재료의 특성으로 양자 역학적 성질에 따라 정확히 결정되어, 갈륨-질소 기반의 반도체는 파란빛, 갈륨-바소는 빨간빛, 갈륨-인은 녹색빛을 내는 거래요. 이렇게 특정 재료를 선택해 정확하고 선명한 색을 낼 수 있기 때문에 LED는 조명뿐 아니라 디스플레이, 통신 장비에도 폭넓게 활용되는 거예요. 이렇듯 양자 물리학은 우리가 보지 못하는 세계를 통해 우리가 사는 세계를 구성하고 발전시키며, 더욱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해주네요. 요즘 주목받고 있는 양자 컴퓨터를 비롯한 양자 정보 과학 기술에서는 양자 역학의 가장 대표적인고 신비로운 특성인 중첩과 얽힘을 이용해 고전 컴퓨터로는 엄두도 못 낼 새로운 기술을 실현하려고 시도하고 있고, AI와의 융합으로 산업 전반에 걸친 거대한 혁신을 전망하고 있네요. 양자 역학의 기본부터 양자 컴퓨터까지 전반적인 흐름을 이해하는 데에 도움이 되는 양자 수업이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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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YPTO.AI - 블록체인과 AI의 본질을 이해하고, 트렌드를 파악하다
김기영 외 지음 / 키랩스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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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


최근 오픈AI CEO 샘 올트먼이 한국을 방문했다는 놀라운 뉴스를 봤어요.

이번 방한이 중요한 이유는 오픈AI가 주도하고 있는 스타게이트 프로젝트 수행에 한국과의 협력을 적극적으로 내비쳤고, 이는 우리나라가 AI 허브 국가로 도약하는 길이기 때문이에요. 반도체 공급망과 통신, 클라우드 인프라, 생활 밀착형 플랫폼을 모두 갖춘 우리나라를 전략적 거점으로 삼아 글로벌 AI 혁신을 앞당기려는 것으로 분석하고 있어요. 불과 1년 전에는 상상도 못했던 초거대 프로젝트가 점점 현실이 되고 있어요. 오픈AI가 설계한 AI 가속기와 브로드컴의 네트워킹 솔루션이 결합한 시스템이 전 세계 오픈AI 데이터센터와 파트너 시설에 차례로 배치될 예정이며, 이는 챗GPT 같은 오픈AI의 AI를 작동시키기 위한 핵심 인프라가 되는 거예요. 이렇듯 시시각각 바뀌고 있는 글로벌 시장을 이해하고, 미래를 전망하는 데에 도움이 되는 책이 나왔네요.

《CRYPTO.AI》는 블록체인과 AI의 본질을 이해하고 트렌드를 파악할 수 있는 책이에요.

저자들은 지금 시점에 주목할 인물로 오픈AI CEO 샘 올트먼을 꼽으면서, AI 인프라 투자에 전력을 다하고 있는 올트먼 CEO가 동시에 강력한 블록체인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는 사실을 언급하면서 블록체인과 AI는 반대의 개념이 아니라 매우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는 기술이며, 두 기술을 균형 있게 바라보고 공부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어요. 이 두 기술의 본질을 이해하고 주요 트렌드를 파악하는 노력은, 이제 생존의 문제라는 것이 우리가 이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해요. 책 제목을 블록체인의 상징인 크립토와 인공지능의 약자인 AI를 하나의 도메인처럼 묶어낸 것도 두 기술을 통합하여 조망하는 것이 필요하기 때문이에요. 이 책에서는 분산형 네트워크 블록체인의 본질과 인공지능 AI의 본질을 다루면서 최신 트렌드와 응용 사례를 소개하면서 블록체인과 AI의 교차점을 주목하고 있어요. 이 거대한 기술의 융합 앞에서 우리는 갈림길에 서 있고, 세계 각국은 AI 주권을 향한 치열한 경쟁을 하고 있어요. 저자들은 우리의 강점을 활용해 누구도 대체할 수 없는 우리만의 길을 개척할 수 있다고, 미래에 관한 질문들은 더 이상 미래학자들의 전유물이 아닌 우리 모두가 함께 답을 찾아야 하는 과제라고 이야기하고 있어요. 갈수록 기술의 발전 속도가 빨라지고 있어서 따라잡기도 버거운 상황이지만 저자의 말처럼 새로운 시대의 주소를 상징하는 두 기술의 본질은 반드시 알아야 한다는 점에 동의하네요. 디지털 경제의 중심에 무엇이 있고,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가 곧 우리의 미래가 될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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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로토닌하라! - 리커버 특별판
이시형 지음 / 중앙books(중앙북스)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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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


정신건강의학과 의사이자 뇌과학자 이시형 박사님은 올해 아흔두 살, 건강은 남이 챙겨주는 게 아니라 스스로 지키는 습관에서 비롯된다는 말 그대로 몸소 실천하며 건강한 노년의 삶을 보여주고 계시네요. 아흔을 넘긴 나이에도 매일 사단법인 세로토닌문화원으로 출근해 강연을 이어가고, 매년 건강 관련 서적을 집필하고 있는, 현역 의사라는 점이 놀랍네요. 도대체 늙지 않고 건강하게 사는 비결은 무엇일까요. 해답은 이 책 속에 있네요.

《세로토닌하라!》는 출간 15주년 기념 에디션, 리커버 특별판으로 나왔네요. 이미 출간 당시에 베스트셀러였고 수많은 사람들의 삶을 바꾼 이시형 박사님의 솔루션을 2025년 새롭게 다시 만나게 되어 무척 기쁘네요. 이 책은 스트레스로 몸과 마음이 지치고 아픈 모든 사람들을 위한 처방전이라고 보면 좋을 것 같아요. 사람을 움직이는 건 뇌, 특히 전두엽의 전두전야는 모든 인간 행동의 총사령부 역할을 하는데, 중요한 세 가지 기능은 조절, 창조, 행복이며, 전두전야의 조절 능력을 높이는 것이 바로 뇌 속의 신경 전달 물질인 세로토닌이에요. 따라서 충동을 조절하고, 스트레스를 다스리며, 두뇌 활동을 돕는 세로토닌을 충분히 활용하는 방법이 이 책의 핵심 내용이네요.

지금 우리에게 왜 세로토닌인가, 이것은 우울증을 비롯한 정신과적 증상이 모두 세로토닌 부족이 주된 원인이며, 뇌과학계에서도 지구촌의 온갖 폭력과 각종 중독 증상들이 현대인의 세로토닌 결핍증 때문이라고 밝혔네요. 세로토닌만 적정량 유지된다면 개인은 물론 범세계적인 폭력, 중독도 예방할 수 있다는 거예요. 세로토닌 신경은 원시적 파충류 뇌라 불리는 뇌간에 있는데 이 뇌간의 세로토닌 신경이 전두엽은 물론 온 뇌에 넓게 뻗쳐 있기 때문에 전두엽의 기능도 뇌간이 조절하고, 그 중심에는 세로토닌이 있는 거예요. 전두엽은 인간이 인간일 수 있게 하는 중추이고, 특히 전두엽 중 앞쪽에 위치한 전두전야는 양심, 윤리, 규범, 희생 등 인간지고의 중추적 역할을 하는데, 고령이 되면 뇌 전체는 6퍼센트 정도 위축되지만 전두엽은 관리를 잘못하면 29퍼센트까지 위축이 진행되어 진짜 노인이 되는 거예요. 그래서 노년 건강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전두엽 관리라고 강조하네요. 노화는 '감정의 노화'에서 비롯되는데, 만약 감정이 무뎌진다면 위험 신호라고 봐야 해요. 전두엽 관리 수칙 제1조는 '감동하라'인데, 우리 뇌는 감동을 느끼면 세로토닌이 분비되어 전두엽이 긍정적인 상태로 조율된다고 하네요. 마음이 젊으면 몸도 젊어진다는 말은 진짜 사실이고, 수많은 뇌과학적 실험 결과가 이를 뒷받침하고 있대요. 젊음과 활력을 조정하는 뇌, 그 안에 세로토닌을 활성화시킨다면 강력하게 자신의 마음을 지키고 행복감을 느낄 수 있다는 거예요. 세로토닌 분비를 촉진시키는 전두엽 만들기 10계명이 나와 있는데, 이것만 꾸준히 잘 실천한다면 젊은 뇌를 유지하며 건강하게 살 수 있네요. 세로토닌 효과가 얼마나 대단한가는 이시형 박사님을 보면 바로 확인할 수 있네요. 뇌과학이 알려주는 행복과 건강의 비결, 세로토닌으로 멋지게 100세 인생을 살아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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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스플레이 구조 교과서 - LCD, OLED의 발광 원리부터 패널 구조, 구동방식까지 디스플레이 기술 메커니즘 해설 지적생활자를 위한 교과서 시리즈
사이토 가쓰히로.고미야 신이치 지음, 신찬 옮김 / 보누스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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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


누가 텔레비전에 나왔다는 얘길하면서 브라운관이라고 말해서 다들 웃었네요. 언제적 브라운관이냐고 말이죠. 네모난 박스 형태로 부피가 크고 무거웠던 브라운관 TV는 사라졌고, 요즘 아이들은 박물관에 가야 볼 수 있는 골동품이 되었네요. 워낙 기술의 발전 속도가 빠르다 보니, 무엇이 얼마만큼 변했는지를 따라가기가 버겁네요. 최근 삼성전자가 세계 최초로 빨강(R) 초록(G) 파랑(B) 세 가지 색의 발광다이오드(LED)를 광원으로 사용하는 사용하는 '마이크로 RGB TV'를 개발 출시했다는 기사를 봤는데, 디스플레이 기술의 본질인 빛과 색을 가장 정교하게 제어한다는 설명만으로는 잘 모르겠더라고요. 우리가 매일 마주하는 TV , PC, 스마트폰 디스플레이 속에 숨겨진 발광 원리와 분자 구조, 제작법 등등 디스플레이 기술 메커니즘을 해설해주는 책이 나왔네요.

《디스플레이 구조 교과서》 는 첨단 기술의 원리가 궁금한 사람들을 위한 해설서라고 보면 좋을 것 같아요. 이 책의 저자는 나고야 공업대학 명예교수인 사이토 가쓰히로 박사와 소프트뱅크에서 20년 이상에 걸처 IT 관련 잡지 편집장을 비롯해 그룹사 대표 및 임원을 역임한 고미야 신이치라고 하네요. 첫 장에서는 과거 가정용 TV 로 보는 디스플레이의 변천사가 사진과 함께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 있어요. 일본 기준, 1960년 출시된 'TV8-301' 부터 2023년 출시된 4K를 지원하는 65인치 유기EL TV 'XRJ-65A80L' 모델이 나와 있어서 한눈에도 기술의 발전을 확인할 수 있네요. 현재 가장 주목받는 기술은 OLED(유기EL)와 양자점이라서, 이 부분에 중점을 두어 구조와 작동 원리를 설명해주고 있어요. 유기EL의 발광 원리, 유기EL 분자 구조, 유기EL 디스플레이 제작법, 액정 분자의 성질과 특징, 액정 디스플레이의 원리, 양자점 디스플레이, 디스플레이 관련 부품의 종류와 기능을 살펴보고, 이 기술들을 둘러싼 기업들의 치열한 경쟁과 업계의 시장 현황을 알려주네요. 깔끔하고 선명한 초고화질 TV를 볼 때마다 감탄이 절로 나왔는데, 이 책 덕분에 첨단 기술에 담긴 과학 원리를 배울 수 있어서 유익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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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다 하다 앤솔러지 1
김유담 외 지음 / 열린책들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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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


늘상 다니던 길이라서 더 모를 때가 있어요.

발걸음을 재촉하며 걸을 때가 많거든요. 그러다가 문득 느긋하게 걷는 날에는 '원래 이 길이 이랬던가?'라며 다시 보게 되더라고요.

눈앞에 있어도 보이지 않던 것들이 눈길을 주면 달라지듯이, 소설은 무심코 지나쳤던 세상을 저배속으로 바라보게 만드네요. 어느 길 위에서 스쳐 지나갔을 누군가의 이야기, 어쩌면 나의 이야기일지도... 더딘 걸음, 느린 속도에 속이 터지다가도 그게 아니었다면 놓쳤을 순간들을 생각하면 우리에겐 이야기를 나눌 시간이 필요해요.

《걷다》는 열린책들 하다 앤솔러지 시리즈 첫 번째 책이에요. 동사 <하다>를 주제로 우리가 하는 다섯 가지 행동, 즉 <걷다, 묻다, 보다, 듣다, 안다>에 관해 스물다섯 명의 소설가가 함께한 단편소설집 시리즈라고 하네요. 이번 책은 '걷다'를 주제로 쓰여진 김유담, 성해나, 이주혜, 임선우, 임현 작가님의 단편을 만날 수 있어요. 김유담 작가님의 <없는 셈 치고>에서는 아픈 고모를 챙기는 조카딸 선화의 이야기인데, "그보다 더 쓰라린 건 마음인지도 몰랐다." (42p), "모른 척하는 일이 더 아프게 느껴져서..." (43p)라는 두 문장으로 요약되네요. 딱 한 번 등장하는 화자의 이름은 '선화'인데, 그 이름이 나오는 장면에서 마음이 짠해졌어요. 가질 수 없는 마음이란 슬픔일까요, 아니면 절망? 그냥 없는 셈 치는 게 가능한지 모르겠네요.

성해나 작가님의 <후보(後步)>에서는 퇴행성 관절염을 앓는 근성에게 의사는 산책을 권했어요. 뒤로 걷는 것이 관절에 무리가 덜 간다는 조언이 떠올라 조심스레 뒤로 걷는 근성은 모든 게 뒤로 흘러가는 풍경을 보다가 문득 세실과의 추억을 떠올리며 젊은 시절의 이야기를 들려주네요. "혹시 재즈 좋아하세요?" (78p) 만약 세실에 내게 물었다면, 좋아질 것 같다고 말해줄 것 같아요. 재즈가 듣고 싶은 밤이네요.

이주혜 작가님의 <유월이니까>는 그들이 그토록 기다렸던 유월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네요. 그 사건 이후로 달라진 삶, "이제 곧 유월이야." (113p)라는 말이 유난히 슬프게 느껴지는 건, 펄럭이는 방패연을 든 남자와 트랙을 돌며 뛰고 있는 여자, 그리고 그 뒤를 좇아 뛰는 남자의 마음을 알기 때문이겠지요.

임선우 작가님의 <유령 개 산책하기>는 유기견인 열세 살의 영국코커스패니얼 '하지'에 관한 이야기예요. "하지야, 왜 나에게 돌아왔니? 왜일까, 왜 돌아왔을까?" (126p) 그 이유가 뭔지, 너무 환히 잘 보이네요. 어라, 나만 보이는 게 아니라 다른 사람 눈에도 보였다는 게 완전 반전이네요. 어쩌면 이것이 사랑의 힘인지도 모르겠네요. 충분히 사랑해주지 않았다고 했지만 진심으로 사랑했고, 그만큼 그리웠던 거죠. 하지는 진짜 착한 개였나봐요.

임현 작가님의 <느리게 흩어지기>는 혼자 사는 명길의 산책 이야기예요. 글쓰기 모임에서 유독 살갑게 구는 성희는 명길에게 자꾸, "언니는 알죠? 언니는 이해하잖아요." (166p)라고 말하지만 명길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어요. 산책을 하다가 낡고 허름한 수첩을 발견했다면 주워서 펼쳐 볼까요, 아니면 그냥 지나칠까요. 그 속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그야 펼쳐봐야 알 수 있지요. 직접 겪어봐야 안다는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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