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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 떨어진 동산에서 호미와 괭이를 들자 -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에 남은 보통 사람들의 독립운동
이동해 지음 / 휴머니스트 / 2025년 7월
평점 :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우리가 기억하는 독립운동가들은 극히 일부였다는 걸, 이 책을 보고서야 깨달았네요.
《꽃 떨어진 동산에서 호미와 괭이를 들자》는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에서 잘 알려지지 않은 독립운동가 40명을 소개한 책이에요.
"1965년 3월 2일, 내무부 치안국 감식계 창고에서 사진 한 장이 발견된다. 바로 유관순의 수감 시절 사진이었다. 우리가 유관순 하면 떠올리는 그 사진이다. ... 이 사진들의 출처는 일제시기에 제작된 6,000여 장의 카드 뭉치였다. 그 카드들에는 수형자, 수배자, 감시 대상자의 정보가 인물 사진과 함께 담겼는데, 일제는 이를 활용해 독립운동가를 탄압하고 잡아들였다. 카드 뭉치는 1945년 해방 후 한국 경찰에 넘겨져 보관됐다. ... 국사편찬위원회는 이 카드에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라는 이름을 붙였다. 카드에 담긴 인물 수는 4,837명이며, 단순범 18명을 제외한 모두가 독립운동 관련자다. 가로 15센티미터, 세로 10센티미터의 한 뼘 안에 들어올 작은 카드지만 그 한 장 한 장이 전하는 울림이 적지 않다." (5-6p)
이 책에는 1919년부터 1943년까지 시간 순으로 독립운동가들의 인물 카드가 수록되어 있어요. 첫 번째 인물은 신동윤, 그는 3월 3일 개성 만세 시위에 참여한, 이름 모를 군중 속 한 사람이었는데, 거기에서 그치지 않고 3월 17일, 남대문역 3등 대합실에서 큰 소리로 외쳤다고 해요. "여러분은 고향에 돌아가면 한국 독립 만세를 절규하라! 각 지방에서 독립운동을 하는 자가 없다면 한국의 독립은 기약할 수 없다!" (20p) 신동윤의 외침에 경찰이 달려들었고, 그는 체포되는 순간까지도 '한국 독립 만세'를 절절히 부르짖었다고 해요. 독립을 부르짖는 것이 죄가 되는 세상에서 수많은 이들은 당당히 외치고 옥고를 치뤘어요. 열여덟 살 소년 한범우는 철원 군수가 태극기를 들고 만세를 불렀다는 소식을 듣고(철원 군수 오태환은 흥분한 군중들이 독립 만세를 부르라고 강요해 마지못해 만세를 불렀다고 함), 원주 군수 오유영에게 당신도 조선 독립 만세를 부르라고 소리쳤다가 서대문감옥에 갇혔는데 석방된 지 3개월 만에 옥살이 여독으로 세상을 떠났다고 하네요. 한범우 외에도 수많은 10대 청소년들이 만세 시위에 참여했는데 여기엔 배화학당의 학생 24명 중 이수희의 인물카드만 나와 있어요. 사진만 보면 그저 앳된 아이의 모습인데, 체포당했을 때 어찌 그리 용감할 수 있는지... 이수희는 형사가 성명, 주소를 쓰라고 하자 쓸 줄 모른다고 답했고, 형사가 "주소와 제 이름도 못 쓰는 것이 어찌 만세를 불렀느냐"고 따져 묻자, "못 쓰리는 하나 나라 사랑하는 마음이야 없겠는가" (38p)라고 대꾸했다고 하네요. 이렇듯 어린 학생들부터 어른들까지,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독립을 외치는 평범한 이들의 목소리가 없었더라면 오늘날의 대한민국은 존재하지 않았을 거예요. 나라를 빼앗기고 고난의 시대를 살면서도 독립을 위해 싸웠던 분들은 몇몇의 영웅만 있는 게 아니라 평범한 보통 사람들이 더 많았다는 것이 무척 가슴 뭉클하고 자랑스럽게 느껴졌어요.
그동안 국가로부터 서훈을 받은 독립운동가는 1만 5천여 명 정도, 이 가운데 극소수만 독립운동의 영웅으로 교과서에 실렸고, 대부분의 독립운동가들은 잊혀진 채 보훈대상자로 기록될 뿐, 그마저도 자료 인멸로 서훈을 받지 못한 이들이 더 많다는 사실에 절로 고개가 숙여졌네요. 친일세력과 군사독재, 그 잔당들이 장기간 집권하면서 독립운동사는 외면당했고, 점점 잊혀지는 요인이 되었네요. 불과 몇 개월 전까지만 해도 홍범도 장군 등 독립운동가들의 혼을 지우고 백선엽 등 친일인사들의 복권을 시도하고, 친일 뉴라이트인사들로 역사기관들을 점령하여 우리 역사를 부정하고 일본제국주의를 미화하는 교과서 편찬, 독재 정부를 미화하는 편향된 역사수업이 진행되었는데, 이제부터 바로잡아야 할 때라고 생각해요. 이름없는 영웅들을 기억하면서 앞으로 친일청산이라는 묵은 과제를 수행할 차례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