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키는 언제나 만남을 이야기했지
가와이 도시오 지음, 이지수 옮김 / 바다출판사 / 2025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


너무 늦어버렸네, 뭔지 기억나진 않지만 혼자 지각했다는 사실만 생각나는 꿈을 꿨어요.

연이틀, 이렇게 연달아 꿈을 꾼 건 너무 오랜만이라, 대부분은 꿈 내용이 기억나지 않을 정도로 푹 자는 편인데 이번에는 꿈을 꿨다는 사실이 기억나면서 영 기분이 별로인 걸 보면, 뒤숭숭한 꿈, 일명 개꿈을 꾼 것 같아요. 아무것도 한 게 없고 그냥 잠자고 일어났을 뿐인데 감정이 상했다는 게 우습더라고요. 진짜 나쁜 일이 일어난 건 아니니까, 어찌보면 꿈이라서 다행인 거죠. 더군다나 열심히 쥐어짜봐도 도통 기억나지 않으니 여기서 끝, 중요한 건 의식하지 못했던 내면을 잘 살펴보는 일인 것 같아요. 심리 치료에서는 내담자의 꿈 이야기를 상담 재료로 다루는 경우가 많다고 하네요. 일본을 대표하는 정신분석학자인 가와이 도시오는 꿈과 무의식, 내러티브를 통한 치유, 문화와 정신의학의 접점을 탐구해왔는데, 무라카미 하루키의 데뷔작부터 작품들을 꿈 텍스트로 분석해왔다고 하네요. 이번에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집 《일인칭 단수》라는 작품을 중심으로 만남의 본질을 고찰하는 책이 나왔네요.

《하루키는 언제나 만남을 이야기했지》는 정신분석학자가 바라본 하루키 작품 속 '만남'을 다룬 책이에요.

이 책에서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일인칭 단수》에 실린 각 단편을 중점적으로 다루지만 하루키의 초기작부터 대표적인 작품들까지 그 안에 나타난 만남에 주목하여 내재적으로 살펴보고 있어요. 좋아하는 작가의 작품들을 탐독하는 경우는 많지만 이렇듯 세밀하게 분석하는 경우는 많지 않을 거예요. 특히 '만남'을 모티브로 하여 작품을 들여다보는 과정이 특별하게 느껴졌네요. 인간관계를 맺고 살아가야 하는 우리들에게 만남은 필연적인 사건인데 하루키의 이야기에서는 다양한 만남을 통해 수수께끼 같은 상황들이 벌어지고, 그것이 도화선이 되어 더 깊은 곳까지 끌고가고 있어요. 모두가 알다시피, 소설은 현실에서 있을 법한 이야기지만 누구나 그와 같은 경험을 하는 건 아니잖아요. 작가의 의도가 무엇인지 몰라도, 작중 화자와 인물들에게 몰입하면 느껴지는 것들이 있는데, 때로는 달갑지 않은 만남이지만 그 덕분에 얻는 것도 있어요. 하루키 작가는 한 인터뷰에서 《일인칭 단수》에 대해 "'나는 아니지만, 내가 이랬을 수도 있는' 일인칭 관점을 지닌 인물들이 주인공" (239p)이라고 밝혔다는데, 심리 치료사의 입장에서는 훌륭한 교본을 발견한 셈이네요. 독특하고 흥미로운 이야기 속에 숨겨진 심리가 무엇인지를 알아가는 재미가 있네요.

1985년 작 단편 <빵가게 재습격>은 "빵가게 습격 이야기를 아내에게 한 것이 옳은 선택이었는지 나는 여전히 확신할 수 없다."라는 문장으로 시작된다. 뒤이어 이것이 옳은 선택이었는가 하는 논의가 짤막하게 이어지고, 몇 줄 뒤 "나는 뭐가 어찌 됐든 간에 아내에게 빵가게 습격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말았다"라는 문장이 나온다. 여기서는 화자가 빵가게 습격에 관한 이야기를 해 버렸다는 사실 자체가 강조되어 있다. 어떤 사건은 이야기함으로써 비로소 사실이 되기 때문이다. 이야기하지 않으면 사실이 되지 않는다. 심리 치료에서 내담자가 상담자에게 이야기를 하는 것의 의미가 바로 여기에 있다. ... 이야기를 통해 누군가와 무언가를 공유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그러나 공유하려고 노력해도 충분히 공유하지 못하는 부분이 생기기도 한다. 이때 문제가 되는 것은 상대와의 만남과 관계의 질이다. 요컨대 이야기하는 상대와 진정으로 만나고 있지 않으면, 혹은 상대와 충분한 관계를 맺고 있지 않으면 공유가 이루어지지 않는다." (16-17p)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