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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은 다 거짓이야
대니얼 나예리 지음, 김래경 옮김 / 해피북스투유 / 2026년 8월
평점 :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
거짓말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을 거예요.
근데 꽤 많은 사람들이 거짓말에 홀린 듯 빠져드네요. 분명 거짓말이라고 밝혔는데도 말이죠.
처음부터 속마음을 숨기고 남을 속이는 엉큼한 거짓말과는 아예 태생부터 다르네요. 왜냐하면 이건 거짓말이 허용되는 '이야기의 세계'라는 것을 우리 모두가 알고 있기 때문이에요. 진실과 거짓말에 대한 어떤 이야기 하나가 생각나네요. 진실만 말하는 마을과 거짓말만 하는 마을이 있는데 두 마을로 들어서는 갈림길에서 나그네가 진실만 말하는 마을로 가고 싶다면 어떤 질문을 해야 할까요. 정답은 '당신이 사는 마을로 가려면 어느 길로 가야 합니까?'라고 물은 뒤에 그 사람이 가리키는 방향의 길로 가면 되네요. 거짓말쟁이가 우리를 속인다는 걸 알고 있으니 그의 말을 반대로 해석하면 되는 거죠. 진실과 거짓 사이의 딜레마, 때로는 허구를 통해 전하는 진심이 더 크게 와닿기도 하네요.
대니얼 나예리 작가의 장편소설 《슬픔은 다 거짓이야》는 난민 소년이 들려주는 이야기네요.
솔직히 첫 문장을 읽으면서 소름이 돋았네요. 고국을 탈출하여 떠돌이 신세가 된 난민들은 어딜가나 환영받지 못하는 존재라서 그들의 목소리는 묻혀 버리고 마네요. 진실의 외침은 아무도 듣지 않는 공허한 소음일 뿐이지만 여기, 이 소설은 강렬한 흡입력으로 독자들을 끌어당기네요.
이란에서 태어나 난민 생활을 거쳐, 일곱 살에 가족과 함께 오클라호마로 이주했다는 대니얼 나예리 작가는 소설 속 열두 살 소년 호스로를 통해 뼈아픈 난민 생활의 경험들을 고대 페르시아 신화와 《천일야화》의 셰에라자드처럼 우리에게 경이로운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네요. 슬픔은 다 거짓이라는 거짓말, 피투성이가 된 할아버지의 손처럼, 중요한 건 기억하고 있다는 것, 무엇보다도 살아남았다는 사실이겠지요. 언젠가는 자신들이 온전해지리라는 걸 알고 있다는 소년의 믿음, 어쩌면 천 년이 걸릴지도 모르지만 조금씩, 조금씩 그곳을 향하고 있다는 걸 이제는 우리도 알게 되었네요.
"페르시아인은 다 거짓말쟁이다. 그리고 거짓말은 죄다.
이것이 밀러 선생님 반 아이들 생각이다. 아이들이 만나본 페르시아인은 나밖에 없는데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모르겠다.
엄마는 이 말이 사실이라고 한다. 어디까지나 인간은 다 죄인이고 그래서 하나님의 구원이 필요하다는 이유에서다. 아빠는 그 말이 틀렸다고 한다. 페르시아인은 거짓말쟁이가 아니란다. 시인이라는데, 그게 더 나쁘다. 시인은 거짓말을 하고 있는지조차 모른다. 자기 꿈만 기억하려고 할 뿐이다.
6천 년 역사와 지금껏 전해진 모든 이야기의 변형만 기억하려 든다.
어떤 이야기에서는 내가 밀러 선생님 반 뒤편에 있는 난민 꼬마가 아니라 변장한 왕자일지도 모른다.
정체를 들키면 난 《천일야화》에 나오는 말을 할 것이다. '나를 보내주시오. 그러면 전해 내려오는 기묘한 이야기를 들려드리리다.'
이야기는 모두 이렇게 시작된다.
약속한다. 당신이 들으면 난 이야기를 들려주겠다.
서로를 이해하고 서로에게 이해받을 수 있다. 그러고 나면 우리는 적이 아니다.
··· 여기에는 나의 기억을 세고 있는 나밖에 없다.
그리고 당신, 독자. 그대가 누구건 지금 나에겐 그대가 왕이다."
(11-12p)
"사실 이건 왕의 이름이었다.
··· 이것은 전설이다.
호스로. 이 이름은 당신 입을 위한 것이 아니다.
하지만 영웅은 늘 전설보다 못하다. 호스로는 엉덩이가 큼직한 열두 살짜기 꼬마일 뿐이다.
대니얼이라 불러도 좋다. 생각해 보면, 인간의 위대함이 찬란하게 빛나는 보석 박힌 양탄자에 왕이 올라섰어도 창밖으로 고개를 내밀면 비는 여전히 내리고 있었을 거다."
(26-27p)
"당신이 관심을 기울이면 '불쌍한 나' 같은 이민자들의 고통 이야기로 허비하지 않겠다고 약속한다.
당신의 관심이 소중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당신의 동정심을 바라지 않는다.
여기 당신 마음속 거실에서 소통이라는 도전에 우리가 잘 대처하면,
시간과 공간 그리고 모든 일상적인 것을 가로질러 서로의 가슴 깊은 곳을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당신은 내가 당신과 같은 사람이라는 것에 동의할지도 모른다.
난 못생겼고 희한하게 말한다. 가난하다. ··· 하지만 당신처럼, 난 신중하게 창조되었다.
자신이 지은 것을 보고 기뻐하신 신이 나를 지었다.
당신처럼, 난 친구를 원한다."
(31p)
"진실을 알고 싶은가? 가장 아픈 것은 망각이다.
우리를 죽이려는 비밀경찰이 아니다. 내 목에 종이 클립을 쏘아대는 브랜던 고프가 아니다.
레이도 아니다. 나를 역겨워하는 모든 사람도 아니다.
이런 고통은 나를 강하게 해주는 고통이다. ··· 하지만 주먹을 아무리 힘껏 쥐어도
기억이 쏟아져 나와 사라진다. ··· 할아버지의 얼굴을 잊어가는 느낌이 바로 그렇다.
좋은 것은 하나도 없다. 별거 아닌 것밖에 얻지 못한다. 심장 한 조각이
신음 같은 소리를 내고 사라진다. 가끔 그 자리를 눌러본다.
구멍의 생김새로 무엇이 있었는지 기억해 내려 애쓴다.
그게 전부다. 당신은 무언가 덜해졌다.
그래서 내가 이런 걸 다 쓰고 있다는 것이 진실이다.
내 뒤에서는 기억이라는 카오스가 가루로 부서지고 있다.
허물어지는 팔 한쪽을 지켜보지만 거기 무엇이 있었는지 곧바로 잊는다.
··· 난 영어를 배우면서 이탈리아어도 잊었다.
레이를 만나면서 아빠의 나쁜 점도 모두 잊었다.
엄마 쪽 할아버지도 잊었다."
(73-74p)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