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다 괜찮아질 겁니다 - 삶의 벼랑 끝에서 침묵을 택한 어느 은둔자의 이야기
피코 아이어 지음, 최지숙 옮김 / 서사원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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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


집에 불이 났다면 무엇을 챙길 거냐는 질문.

답은 정해져 있네요. 왜냐하면 이미 경험한 적이 있거든요. 지금 다시 묻는다고 해도 그때와 다르지 않을 것 같아요. 한밤중에 아래층 화재로 연기가 올라와서 자다가 황급히 대피했을 때, 가족들을 챙기느라 그냥 몸만 나왔거든요. 긴급한 상황이 되니까 가족의 안전 외에는 딴 걸 챙길 여력이 없더라고요. 다행히 빠르게 불길이 잡혀서 큰 피해가 없었으니 망정이지, 전소되는 사고였다면 상상만으로도 끔찍하네요. 그날 이후로 가장 소중한 것이 무엇인가를 늘 마음에 품고 있네요.

《결국 다 괜찮아질 겁니다》는 피코 아이어 작가의 치유 에세이네요.

이 책은 산불로 터전을 잃고 가족의 병마와 이별을 겪은 저자가 캘리포니아의 한 수도원에서 침묵과 고독을 통해 내면을 치유하고 삶의 본질을 깨달아가는 과정을 담아낸 치유의 기록이네요. 저자는 1992년 이후, 주로 미국 캘리포니아주 빅서에 위치한 베네딕도회 뉴 카말돌리 수도원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으며, 그 외에는 대부분 일본의 교외에 머물며 침묵과 사유의 삶을 이어가고 있다고 하네요.

한순간에 소유했던 모든 걸 잃었다면 절망에 빠지기 마련인데 저자는 가톨릭 수도원의 침묵 속에서 혼란스러운 마음을 다스리며 환희를 느끼는 체험을 기록으로 남겼네요. 세상의 소음에서 벗어나 수도원의 고요 속으로 들어가는 일이 모든 사람에게 똑같은 깨달음을 주진 않을 거예요. 외로움과 침묵을 극도로 싫어하는 사람도 있으니까요. 또한 저자가 겪은 가혹한 시련들, 삶의 벼랑 끝을 마주한다면 그와 같은 선택을 할 수 있을지 자신이 없네요. 하지만 그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통해 마음 가장 깊은 곳으로 향하는 여정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그 감동은 고스란히 전해지네요. 아름다움과 침묵 그리고 고독, 이것은 우리 삶을 풍요롭게 채우는 것들이네요. 그외에 다른 것들로 채우다 보면 결국에는 탈이 나는 것 같아요. 내면적인 수행을 위해 꼭 그곳에 가야 하는 건 아니지만 방황하는 사람들에겐 그곳이 평온한 안식처가 될 것 같네요. 속세와의 단절, 상실과 이별이 때로는 예기치 못했던 해방의 세계로 이끌기도 하니까요. 누구도 자신이 필요한 걸 줄 수 없고, 자신의 상처를 치유해 줄 수 없다는 걸, 멈춰 선 시간 속에서 비로소 진정한 나를 발견할 수 있네요. 놀랍게도 깊은 내면으로 파고들수록 혼자가 아닌 함께 존재하는 법을 배우게 되네요. 수도사들은 고독에서 얻은 결실로 공동체를 더 깊어지게 만든다고 하네요. 우리를 자유롭게 할 수 있는 존재는 우리뿐이라는 사실을 일깨워주는 시간이었네요. 결국 다 괜찮아질 겁니다, 라는 말에 미소짓게 되네요.



"일흔 번째 생일을 앞두고 돌아보니, 이 책에 기록한 베네딕도회 수도원만큼 제 삶을 바꾸고 마음을 열어준 곳은 없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처음 수도원을 방문했을 당시, 저는 캘리포니아 산자락에서 발생한 산불로 인해 가족과 함께 살던 집이 전소되면서 가진 것을 모두 잃었습니다. 당장 잘 곳을 찾다가 길을 따라 올라간 곳이 바로 '뉴 카말돌리 수도원'이었죠. 정신을 맑게 깨우는 침묵으로 가득한 그곳은 곧 제 마음의 비밀스러운 안식처가 되었고, 그렇게 몇 주가 지나고 몇 년이 흐르는 동안 인연이 이어졌습니다. ··· 당신이 어떤 배경을 가졌든, 어떤 종교를 믿든, 침묵 속에서 며칠을 보내다 보면, 당신의 내면이 한층 깊어지고, 자신이 진정 사랑하는 것이 무엇인지 다시 깨닫게 될 것입니다. ··· 여러분 모두에게 흐트러진 감각을 되찾고 삶의 기쁨 속에 단단히 뿌리내리는 경험을 선사하고 싶었습니다." (7-8p) _ 피코 아이어 2026년 6월, 「한국어판 서문」 중에서


"비어 있을 때, 비로소 나는 주변의 모든 것들로 채워질 수 있었다."

(28p)


"수도원의 고요는 깊은 숲이나 산 정상의 그것과는 다르다. 이곳의 고요는 살아 움직이며 진동하고, 손에 잡힐 듯 밀도가 높다. 그리고 그 고요가 지닌 아름다움 ㅡ 그리고 그것을 한층 더 깊고 넓게 확장하는 것 ㅡ 은 그것이 우리 모두의 소유라는 점에 있다."

(29p)


"이제 나는 안다. 진정한 사치란 더 이상 무언가를 갈구할 필요가 없는 마음의 상태라는 것을."

(58p)


"그가 계속해서 우리에게 들려주는 것은 결국 하나다. 우리가 믿을 수 있는 유일한 것은 끝내 이해할 수 없는 어떤 현실이라는 것."

(62p)


"방금 읽었는데 'blessing (축복)'이라는 단어가 

프랑스어로 '상처'를 뜻하는 'blessure'에서 유래했더군요."

"그렇군요. 일리가 있는 말이네요. 축복이란 상처처럼 우리를 완전히 뚫고 지나가기도 하니까요."

"하지만 상처도 축복이 될 수 있지 않을까요."

(168-169p)


수도원장에게서 답장이 왔다. 여느 때처럼 넘치는 생기와 새로운 생각들로 가득찬 편지였다.

그는 "사랑이 그러하듯 희망도 때로는 선택입니다."라고 썼다.

"코넬 웨스트가 희망에 대해 남긴 유명한 말을 당연히 알고 있겠지요? 희망과 낙관의 차이에 대해 한 말이죠."

전자인 '희망'이 아무런 근거가 없는 상황에서도 몸을 던지는 도약이라면,

후자인 '낙관'은 자신이 알고 있는 범위 안에서 상황이 잘 풀리기를 기대하는 시도일 뿐이다.

(260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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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성공하는 AI 비서, 오픈클로 - 윈도우·맥미니·라즈베리 파이까지, 30분 만에 구축하는 오픈클로 실전 활용서
박권 외 지음 / 책밥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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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


누구나 쉽게 사용할 수 있지만 진짜 아무것도 모르면 제대로 활용할 수 없는 AI.

영화 <아이언맨>에서 주인공이 자비스라는 인공지능을 비서를 대하듯 지시를 하며 24시간을 함께 하는데요. 그냥 좀 많이 똑똑한 시스템(Just A Rather Very Intelligent System), 일명 '자비스(J.A.R.V.I.S)와 같은 나만의 AI 비서를 고용하는 미래가 코앞에 다가왔네요. AI 에이전트는 인간과 상호작용이 가능하고 독립적으로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어서 실질적인 업무 자동화와 생산성 향상을 실현할 수 있다는 점에서 시장의 주목을 받고 있네요. 최근 뜨고 있는 AI 에이전트 플랫폼 오픈클로(OpenClaw)에 대해 궁금했는데 실전 200% 활용법을 알려주는 책이 나왔네요.

《누구나 성공하는 AI 비서, 오픈클로》는 교육부의 AIEDAP 마스터 교원 일곱 명이 공동 집필한 오픈클로 실전 활용서네요.

저자들은 현재 초중고 학교 현장에서 AI 융합 교육을 하고 있는 교사들이며, 이 책은 디지털 교육혁신의 연장선으로 전문가가 아닌 일반인, AI를 잘 모르는 초보자를 위한 실전 안내서라고 할 수 있네요.

최근 오픈소스 생태계에서는 AI 에이전트와 사용자를 연결하는 인터페이스로의 전환이 진행되면서 오프클로의 영향력이 커지고 있네요. 창업자인 피터 스타인버거가 평소 쓰던 메신저로 컴퓨터에 명령을 내리고 싶어 주말 프로젝트를 시작한 것이 출발점이고, 초기에는 WhatsApp 게이트웨이라는 의미의 Warelay로 부르다가 이후 Claude 모델 활용을 강조한 Clawdbot(Clawd)으로 변경했다가 상표권 문제로 급하게 가재의 탈피를 뜻하는 Moltbot 으로 바꿨다가 최종적으로 2026년 1월 말, 현재의 OpenClaw 로 확정됐네요. 주위에서 오픈클로 얘기가 나올 때 자주 언급되며 충격을 준 것이 몰트북의 존재인데 이곳은 인간은 출입불가, 오직 AI 에이전트들만이 모여 상호작용하는 커뮤니티 공간이네요. 단순히 질문에 답하는 봇을 넘어 다른 에이전트와 자율적으로 소통하는 모습 때문에 보안에 대한 우려와 불안감이 생기고 있네요. 그래서 오픈클로를 무작정 설치해서 사용하기 전에 관련 내용을 확실하게 인지하고 진행하는 것이 중요하네요. 이러한 보안 문제를 인지해야 위험을 통제할 수 있는 대응 장치들을 마련할 수 있으니까요. 에이전트가 사용할 수 있는 도구의 범위는 사용자가 직접 제어할 수 있어요.

이 책에서도 처음 시작할 때는 편리함보다는 '안전'이 우선임을 강조하고 있네요. 실제 업무 계정이나 중요한 파일을 바로 연결하지 말고, 실습용 폴더와 테스트 계정을 분리해 두고, 보안과 비용, 검토의 기준을 명확히 세우는 안전한 운영 감각이 최우선이네요. 여기에서는 오픈클로가 왜 필요한지, 어디에 쓰는지, 어떻게 시작하는지, 무엇을 조심해야 하는지를 알기 쉽게 설명하면서 누구나 오픈클로를 통해 자신의 업무를 직접 자동화해보는 '첫 번째 성공 경험'을 목표로 하고 있네요. 다양한 환경에서 오픈클로를 시작할 수 있는데, 구형 PC, 맥 미니(Mac mini), 라즈베리 파이(Raspberry Pi)로 나누어 각자 알맞은 환경에서 시작하는 방법이 나와 있어요. 오픈클로와 함께 쓰면 더 강해지는 도구들로는 Codex CLI 와 Codex App, Claude Code, Claude 데스크톱 앱, Hermes Agent 와 함께 활용할 수 있고, 바로 써먹는 실전 활용법과 보안 및 지속가능한 운영 관리 가이드, 마지막으로 오픈클로 환경별 오류 해결 및 추천 설정 체크리스트까지 꼼꼼하게 알려주네요. 오픈클로가 이토록 빠르게 이슈가 된 것은 에이전트의 사용처를 일상적인 메신저라는 가장 친근한 공간으로 가져왔기 때문인데 복잡한 전용 UI 대신 메신저 대화창을 실행 런타임으로 삼을 수 있다는 용이한 접근성과 편리함이 한몫을 했네요. 하지만 도구가 강력해질수록 권한 관리와 보안 격리가 더욱 중요해진다는 점을 명심해야 할 것 같네요. 오픈클로를 도입할 때는 단순한 호기심을 넘어, 스스로 동작하는 에이전트를 어떤 안전한 경계 안에서 통제하고 관리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반드시 선행되어야 하네요. 누구의 말처럼 강력하면서도 순수한 어린애 같은 오픈클로를 얼만큼 잘 통제하느냐가 관건인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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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세부터 시작하는 진로 설계 수업 - AI 세대 청소년을 위한 나만의 진로 무기 만들기
야마와키 히데키 지음, 김지예 옮김 / 동아엠앤비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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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


자신의 미래를 그려보며 고민하는 청소년들을 위한 길라잡이 책이 나왔네요.

중고등학생 자녀를 둔 부모라면 특히 이 책이 건설적인 대화를 나누는 데에 많은 도움이 될 것 같네요. 부모가 바라는 대학이나 직업 말고 아이 스스로 원하는 미래가 무엇인지를 구체적으로 그려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네요. 변화하는 AI 시대를 적응하는 일은 비단 청소년만의 문제가 아닌 동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문제라는 점에서 이 책은 '미래 창조'라는 놀라운 전략을 제시하고 있네요.

《15세부터 시작하는 진로 설계 수업》는 야마와키 히데키 교수의 미래 창조 수업이라고 하네요.

경제학자인 저자는 유럽과 미국 경영 대학원에서 활동한 최초의 일본인 학장이며, 이 책은 피터 드러커 경영 대학원에서 20년 이상 강의해 온 '미래 창조' 수업 내용을 바탕으로 중학교 3학년인 15세 전후의 독자들도 이해할 수 있도록 핵심만을 추려 쓴 실천형 진로 설계서라고 하네요.

"경영학자 피터 드러커는 '미래를 예측하는 가장 훌륭한 방법은 직접 미래를 창조하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드러커의 말처럼 여러분 자신은 미래를 직접 만들어 나갈 수 있습니다. 이 책은 여러분이 미래를 창조하는 것을 도울 목적으로 쓰였습니다. 미래에 대한 생각하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직접 미래를 만들어 나갈 수 있도록 말입니다. ··· 지금까지 여러분이 배워 온 '자신을 아는 것'과 '미래에 대해 생각하는 것'과 이 책에서 소개하는 내용이 어떻게 다른 지 간단히 살펴보겠습니다. 이 책이 차별화되는 지점은 '자신을 아는 것'과 '미래'를 개별적으로 다루지 않으며, 이 둘을 합쳐서 '자신의 미래를 창조하는' 방법에 대해 다루는 데 있습니다. ··· 자신이 에너지를 얻을 수 있고, 애착과 열정을 가지고 할 수 있는 활동이 무엇인지 파악하고 그로부터 해결해야 할 과제와 문제의식을 찾아낸 다음 자신의 미래를 창조하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할 것입니다.

저자는 생각의 틀을 만드는 방법을 직접 활용하려면 다섯 가지 마음가짐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하네요. 첫째, 기존의 생각의 틀을 깨라, 둘째, 왕성한 호기심을 가져라, 셋째, 프로세스에서 아이디어를 창출하라, 넷째, 공감을 이끌어 내라, 다섯째, 일어나서 행동하라. 이 책에서는 다섯 가지 마음가짐 가운데 프로세스를 통해 새로운 아이디어를 도출하라는 항목을 단계별로 응용하며 활동해가는 과정을 설명해주네요. 큰 틀로 보면, 자신을 아는 것으로 시작해 자신이 바라는 미래를 명확하게 하는 연구 주제를 발견하고, 새로운 의미를 창출하여, 목적을 구체화시켜 자기 브랜드를 완성할 수 있네요. 프로젝트의 과제를 발견하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도출하기에 앞서, 반드시 '자신을 알아야 한다'는 점을 반복해서 강조하는데, 그만큼 '자기 이해'는 미래를 향한 출발점이기에 매우 중요하네요. 청소년기에 아이들이 꿈이나 진로에 대해 막막하게 여기는 건 자신에 대해 잘 모르기 때문이네요. 저자는 마인드맵, 퓨처스 휠, 디자인 사고, 블루오션 전략 등 경영 대학원의 실제 수업도구를 청소년 눈높이에 맞춰 설명해주면서, 아이들이 직접실천하며 생각한 내용을 작성할 수 있는 워크북을 제공해주네요. 자신의 행동과 활동이 목적과 인생관, 그리고 열정과 에너지에 부합하여 언행일치, 즉 일관성 있는 상황을 만들어가면서 미래 창조를 완성해가는 길을 알려주네요. 결국 자기 자신에게 정직하고, 일관성과 진실성을 바탕으로 행동한다면 자신의 손으로 미래를 창조할 수 있다는 것이 핵심이네요. AI 시대의 미래 진로를 고민하는 사람들을 위한 혁신적인 지침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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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일에는 이름이 없다 - 기획 노동, 누구나 하지만 아무도 부르지 않은 일
김희경 지음 / 웨일북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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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


살림과 돌봄에 관한, 이름 없는 노동의 실체를 밝히는 책이 나왔네요.

김희경 작가의 《이 일에는 이름이 없다》는 '기획 노동, 누구나 하지만 아무도 부르지 않은 일'에 관한 기록이네요.

저자는 집안일, 가사노동, 살림, 육아, 간병, 돌봄 등을 포괄하여 '돌봄'이라는 용어를 써왔고, 해외에는 '인지 노동' 또는 '정신적 부담'으로 부르지만 이 책에서는 국내 연구진이 명명한 '기획 노동'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여 그 개념과 본질을 소개하고 있네요.

"집안일을 해본 사람들은 이 이야기를 조금만 꺼내도 '아, 그거!' 하고 '머릿속 살림과 돌봄'의 정체를 알아맞힌다. 아무리 쳐내도 끝나지 않는 '할 일 목록' 때문에 머릿속은 뒤죽박죽인데 마땅한 이름조차 없는 일. 뇌를 꺼둘 수도 없는데 눈에 보이지 않기에 '일을 나눠 하는데도 왜 나는 피곤할까'를 고민하게 만드는 이름 없는 노동. 이를 국내 연구진이 '기획 노동'이라 명명한 것이 2024년 무렵 매체에서 다뤄지자 맘 카페와 소셜 미디어를 중심으로 금기를 건드리는 소문처럼 '기획 노동'이라는 단어가 빠르게 번져나갔다.

(8p)

요즘은 가사 분담이 평등하게 이루어지는 것 같지만 속내를 들여다 보면 기획 노동을 떠맡는 사람과 주어진 일만 겨우 하는 사람 간에 깊은 간극이 존재하네요. 살림과 돌봄의 기획 노동은 눈에 보이지 않고 아무도 알아주지 않기 때문에 기획 노동을 떠맡은 사람만이 그 노동의 무게를 견디면서 점차 지쳐가고 있네요. 그래서 저자는 보이지 않는 노동, 이름 없는 일에 붙여진 '기획 노동'이 무엇인지를 명확하게 알리고자 맞벌이 부부, 워킹맘, 싱글맘, 전업주부, 부모 돌봄을 혼자 떠맡다시피 한 자녀들, 장애아 엄마와 장애 당사자를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함께 전하고 있네요.

살림과 돌봄을 여성의 일로 간주하는 가부장제의 성별 역할 규범과 산업화 이후 남녀의 역할을 공적, 사적 영역으로 나눈 이데올로기 밑바닥에는 소위 모성 본능의 신화가 깔려 있는데 이는 20세기 중반 이후 다양한 연구를 통해 반박 증거들이 나오고 있네요. 미국 사회학자 앨리슨 데이밍거의 연구에 따르면 부부 간 기획 노동의 불평등은 성향이나 성격 차이가 아니라 기술을 어떻게 쓰냐의 차이라고 분석했네요. 이성 커플의 남녀는 유급 및 무급 노동에서 자신의 역량을 다르게 활용했는데, 많은 남성들이 돈을 버는 직장에서는 역량을 최대한 발휘하고 집안일을 돌볼 만한 정신적 에너지를 남겨두지 않는 반면에 여성들은 그럴 수 없어서 소진되거나 경력을 바꿔야 하는 상황에 부닥친다는 거예요. 이는 남녀의 기질 차이가 아니라 남성들이 일터에서 발휘하는 정신적 기술을 집에 돌아오면 꺼버리는 선택적 무능 때문이라고 보고 있네요. 주 양육자로 아이를 키우는 남성 동성혼 커플의 뇌를 관찰했더니 시상하부를 포함한 감정 처리 네트워크가 활성화되었다고, 즉 포유류 어머니와 같은 생물학적 반응이 남성의 뇌에서 활성화되었다는 거예요. 따라서 기획 노동의 본질은 여성의 전유물도, 사랑의 본능도 아니며 훈련과 경험을 통해 습득되는 기술이자 역량이라는 거예요. 우리는 혼자 살아갈 수 없기에 돌봄을 수행하는 기획자이자 돌봄을 받아야 하는 당사자로 살아갈 수밖에 없네요. 기획 노동에 대해 깊이 들어갈수록 돌봄은 단순히 개인이나 성별 문제가 아니라 사회 문제로서 공동체 기반의 대안이 필요하다는 점을 인식하는 계기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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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 읽고 말하다
아사쿠라 가스미 지음, 전화윤 옮김 / 현암사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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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


일흔, 여든의 나를 떠올려보네요.

상상은 잘 안 되지만 늙는다는 건 그만큼 오랫동안 살아왔다는 증거니까 좋은 일이겠지요.

다만 나이 들었다는 이유로 못하는 일들이 생긴다면 뭔가 슬플 것 같기는 해요. 언제일지 기한을 알 수는 없지만 마냥 손 놓고 기다리는 일은 없을 것 같아요. 어쩌면 소설 속 노인들처럼 즐거운 독서모임을 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읽고 읽고 말하다》는 아스쿠라 가스미 작가의 장편소설이네요. 20년 동안 이어져 온 평균 나이 85세의 초고령 독서모임 '언덕 중간에서 책을 읽는 모임'과 슬럼프에 빠진 소설가이자 카페 시트론의 점장 야스다의 이야기네요. 결성 당시부터 독서 모임의 회장을 맡고 있는 오쓰키 가쓰미 씨는 여든여덟 살이고 부회장을 맡고 있는 실바니아는 여든여섯 살이네요. 나비넥타이는 실바니아와 동갑이고 같은 중학교에서 근무한 적 있는 전직 교사예여. 마차에 씨는 아흔두 살로 모임의 최고령자이고, 일흔여덟 살의 신짱 씨는 마차에 씨의 연하남편이네요. 이밖에 회계를 맡고 있는 여든두 살의 맘마까지 여섯 명의 회원들이 매달 한 번씩 모여서 모임 책을 일인당 두 장 정도씩 낭독하고 그때마다 다함께 감상을 나누고 있는데 종종 이야기가 산으로 가네요. 그만큼 지나온 세월에 대해 할 말들이 많다는 의미일 거예요. 인생이 책이라면 여기 독서모임 회원들은 다들 전집 시리즈 분량이네요.

"기적이다. 무려 전원 참석이다." (307p) 라는 표현이 과장이 아닌 것이, 여든을 넘기면 무슨 일이 일어나든 이상하지 않은 나이니까요. 여러 사정을 고려하면 모두가 빠짐없이 참석한다는 자체가 감사하고 소중한 일이네요.

"지금 이러고 있는 건 자기 관 속에 자기 손으로 꽃을 던지는 거나 매한가지인 일입니다.

저승길이 외롭지 않도록 말이지요. 길을 헤매지 않고 극락을 잘 찾아갈 수 있도록."

흐흠, 하고 콧소리를 내는 회장의 안색이 다시 나빠져 있었다. 잿빛 그림자가 드리운 듯했다.

얼굴뿐 아니라 목소리에도 기운이 없었다. 얼굴과 목소리에서 늘 느껴지던 윤기와 탄력을 느낄 수 없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활기가 넘쳤는데. 야스다는 회장에게서 눈을 돌렸다. 가슴이 조금 아프다.

자기 탓인 것만 같아 송구스러운 마음이 올라온다.

"······ 여하튼 회장님은 올해 88세거든요."

(···)

"나도 예전부터 비슷한 생각을 했어. 아 행복하다, 하고 느낄 때 꽃이 한 송이씩 늘어나는 거지.

그 꽃을 내 관에 넣어두면 되는 거야. 그러면 꽃으로 푹신푹신한 관이 되는 거잖아.

무슨 말인지 이해가 됐어. 회장님, 언제나 그렇지만 오늘은 특히 예리하시네."

(81-82p)

코로나 시기에 어쩔 수 없이 중단되었던 모임이 3년 만에 재개했고, 올해가 결성 20주년이어서 젊은 야스다 마쓰오 군을 명예고문으로 영입했네요. 4년 전 신인상을 수상했고 3년 전에 책을 낸 적이 있는 소설가, 근데 어떤 연유로 현재는 소설을 쓰지 못하고 있는 야스다는 독서모임에 참여하면서 책을 통해 서로의 삶을 나누며 세대를 뛰어넘는 따뜻한 교감을 하게 되네요. 잔잔한 물결처럼 슬그머니 자연스럽게 흘러드는 인생 이야기에 뭔가 힐링이 된 것 같아요. "살아 있잖아, 살아 있잖아요, 할머니, 살아 있잖아요." (336p)라는 응원의 말에 뭉클해졌네요. 읽고 읽고 말하는 사이에 위로와 격려, 감동을 전해주는 따뜻한 이야기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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