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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 읽고 말하다
아사쿠라 가스미 지음, 전화윤 옮김 / 현암사 / 2026년 7월
평점 :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
일흔, 여든의 나를 떠올려보네요.
상상은 잘 안 되지만 늙는다는 건 그만큼 오랫동안 살아왔다는 증거니까 좋은 일이겠지요.
다만 나이 들었다는 이유로 못하는 일들이 생긴다면 뭔가 슬플 것 같기는 해요. 언제일지 기한을 알 수는 없지만 마냥 손 놓고 기다리는 일은 없을 것 같아요. 어쩌면 소설 속 노인들처럼 즐거운 독서모임을 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읽고 읽고 말하다》는 아스쿠라 가스미 작가의 장편소설이네요. 20년 동안 이어져 온 평균 나이 85세의 초고령 독서모임 '언덕 중간에서 책을 읽는 모임'과 슬럼프에 빠진 소설가이자 카페 시트론의 점장 야스다의 이야기네요. 결성 당시부터 독서 모임의 회장을 맡고 있는 오쓰키 가쓰미 씨는 여든여덟 살이고 부회장을 맡고 있는 실바니아는 여든여섯 살이네요. 나비넥타이는 실바니아와 동갑이고 같은 중학교에서 근무한 적 있는 전직 교사예여. 마차에 씨는 아흔두 살로 모임의 최고령자이고, 일흔여덟 살의 신짱 씨는 마차에 씨의 연하남편이네요. 이밖에 회계를 맡고 있는 여든두 살의 맘마까지 여섯 명의 회원들이 매달 한 번씩 모여서 모임 책을 일인당 두 장 정도씩 낭독하고 그때마다 다함께 감상을 나누고 있는데 종종 이야기가 산으로 가네요. 그만큼 지나온 세월에 대해 할 말들이 많다는 의미일 거예요. 인생이 책이라면 여기 독서모임 회원들은 다들 전집 시리즈 분량이네요.
"기적이다. 무려 전원 참석이다." (307p) 라는 표현이 과장이 아닌 것이, 여든을 넘기면 무슨 일이 일어나든 이상하지 않은 나이니까요. 여러 사정을 고려하면 모두가 빠짐없이 참석한다는 자체가 감사하고 소중한 일이네요.
"지금 이러고 있는 건 자기 관 속에 자기 손으로 꽃을 던지는 거나 매한가지인 일입니다.
저승길이 외롭지 않도록 말이지요. 길을 헤매지 않고 극락을 잘 찾아갈 수 있도록."
흐흠, 하고 콧소리를 내는 회장의 안색이 다시 나빠져 있었다. 잿빛 그림자가 드리운 듯했다.
얼굴뿐 아니라 목소리에도 기운이 없었다. 얼굴과 목소리에서 늘 느껴지던 윤기와 탄력을 느낄 수 없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활기가 넘쳤는데. 야스다는 회장에게서 눈을 돌렸다. 가슴이 조금 아프다.
자기 탓인 것만 같아 송구스러운 마음이 올라온다.
"······ 여하튼 회장님은 올해 88세거든요."
(···)
"나도 예전부터 비슷한 생각을 했어. 아 행복하다, 하고 느낄 때 꽃이 한 송이씩 늘어나는 거지.
그 꽃을 내 관에 넣어두면 되는 거야. 그러면 꽃으로 푹신푹신한 관이 되는 거잖아.
무슨 말인지 이해가 됐어. 회장님, 언제나 그렇지만 오늘은 특히 예리하시네."
(81-82p)
코로나 시기에 어쩔 수 없이 중단되었던 모임이 3년 만에 재개했고, 올해가 결성 20주년이어서 젊은 야스다 마쓰오 군을 명예고문으로 영입했네요. 4년 전 신인상을 수상했고 3년 전에 책을 낸 적이 있는 소설가, 근데 어떤 연유로 현재는 소설을 쓰지 못하고 있는 야스다는 독서모임에 참여하면서 책을 통해 서로의 삶을 나누며 세대를 뛰어넘는 따뜻한 교감을 하게 되네요. 잔잔한 물결처럼 슬그머니 자연스럽게 흘러드는 인생 이야기에 뭔가 힐링이 된 것 같아요. "살아 있잖아, 살아 있잖아요, 할머니, 살아 있잖아요." (336p)라는 응원의 말에 뭉클해졌네요. 읽고 읽고 말하는 사이에 위로와 격려, 감동을 전해주는 따뜻한 이야기였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