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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에서 책 읽는 여자
크리스틴 페레플뢰리 지음, 최정수 옮김 / 현대문학 / 2018년 2월
평점 :
절판
전철 안에서 책에 몰입한 사람의 표정은, 매력적입니다.
잘생겼다거나 예뻐서가 아니라 그 사람의 손에 책이 펼쳐져 있기 때문에... 책이 부리는 마술처럼.
<지하철에서 책 읽는 여자>의 주인공 쥘리에트도 똑같은 시각 베르시 역 맨 앞쪽 문에 올라타는 녹색 모자 남자에게 시선이 머뭅니다.
그 남자는 아침마다 늘 손가방에서 책을 꺼내 맛있는 음식을 맛보는 미식가처럼 만족스러운 미소를 짓고 책을 펼칩니다. 쥘리에트는 그 남자의 모자, 그 미소, 보물이 담긴 그 손가방 때문에 그 남자를 빨아들일듯 바라봅니다. 녹색 모자 남자의 미소를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 나오는, 다정하면서도 거리감 느껴지는 체셔 고양이의 미소라고 생각하는 그녀... 쥘리에트는 평범한 일상 속 자신을,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로 만드는 능력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 그녀가 부동산 사무소에서 일한다는 게 전혀 어울리지 않지만, 그때문에 더 현실적으로 다가옵니다. 영화 슈퍼맨도 일상에서는 일반인 코스프레를 했으니까.
이 소설에서도 쥘리에트가 슈퍼맨으로 변신하는, 비현실적인 일이 벌어집니다. 그건 바로 전달자!!!
우연히 길을 걷던 쥘리에트는 끌리듯 여자아이를 따라갑니다. 녹슨 높다란 철 대문에는 '무한 도서 협회'라고 새겨진 금속판이 붙어 있습니다. 그곳에는 수많은 책들이 가득차 있고 검은 옷을 입은 남자가 쥘리에트에게 말을 건넵니다.
"자, 이 책들을 가지세요. 이 책들을 어디에 정리해야 할지 몰라 곤란했던 것이 이제야 기억납니다. 그건 이 책들이 이곳을 떠날 준비가 되었다는 의미예요." (42p)
그 남자의 이름은 솔리망, 쥘리에트가 전달자가 되려고 찾아온 걸로 생각했던 겁니다. 여자 아이의 이름은 자이드, 솔리망의 딸.
그곳에 들어온 전달자는 정해진 책들을 전부 전달할 책임을 부여받는다고 합니다. 단순히 책을 전달하는 택배기사 개념이 아니라 책마다 알맞은 독자를 골라줘야 합니다. 훌륭한 전달자는 상대의 내면을 읽을 줄 아는 공감 능력을 지녔다고. 책의 입장에서 자신을 잘 읽어줄 만한 사람을 찾아준다고 볼 수 있습니다.
신기하게도 쥘리에트는 그곳에 들어선 순간 전달자가 되어버린 것 같습니다. 자석처럼 끌리듯.
그다음에 무슨 일이 벌어졌을까요?
궁금한가요? 제가 가장 궁금한 건 쥘리에트가 솔리망에게 물었던 "247페이지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나요?"라는 질문에서 247페이지의 내용입니다. 솔리망의 대답은 "247페이제에서 모든 것이 어긋나는 것 같아요. 당신도 알겠지만, 그 부분이 가장 좋은 대목이죠." (52p)입니다.
살짝 느낌이 오시나요? 참고로 이 책은 245페이지뿐.
어떤 사람은 그런 책을 '인생 책'이라고 표현합니다. 아직 만나지 못했다고 실망할 필요는 없습니다. 저자는 친절하게도 다양한 책들의 이름을 알려줍니다.
대프니 듀 모리에의 『레베카』, 로베르토 후아로스의 시집『열세 번째 수직 시』, 플로랑스 들레의 『평범한 시간들의 종말』, 키플링의 『바로 그런 이야기들』...
여기에 나오는 책이 아니어도 어딘가에 나만의 책이 있을 것 같지 않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