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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생활은 계속된다
이나가키 에미코 지음, 김미형 옮김 / 엘리 / 2018년 2월
평점 :
모든 것은 2011년 동일본 대지진, 그날로부터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강진 발생으로 초대형 쓰나미가 도시를 덮쳤고 후쿠시마현에 위치한 원자력발전소의 가동이 중지되면서 방사능 누출 사고가 발생했던 그날.
<그리고 생활은 계속된다>는 저자 이나가키 에미코가 '개인적 차원의 탈원전 계획'을 실행에 옮긴 체험담을 쓴 책입니다.
우선 그녀의 실행력에 놀랐고, 이나가키식 생활이 가져온 변화를 보며 감탄했습니다.
이토록 자신의 생활방식을 완전히 바꿀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요.
대부분의 사람들은 원전 사고를 보면서 원자력발전소를 반대합니다. 그런데 그녀는 원전 반대를 말로만 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삶을 통해서 보여줍니다. 처음에는 전기 소모를 반으로 줄이는 것부터 시작했는데, 나중에는 '전기 없이 살기'가 되었습니다. 아예 '전기가 없다'고 여기며 살되, 도저히 안 되겠다 싶을 때만 쓰자는 것입니다.
냉장고를 제외한 모든 가전제품 코드를 뽑기, 엘리베이터 대신 계단 이용하기, 집 안의 모든 조명 끈 채 생활하기. 마지막 단계는 냉장고마저 없애버리기.
식품은 딱 그날 먹을 양만 구입하고, 채소는 햇볕에 말려서 보관하기. 집에서 전기온수를 안 쓰려고 공중목욕탕 이용하기. 빨래는 손으로 직접 빨다보니 옷도 최소한으로...
우와, 이게 가능하다니 너무 충격적입니다. 왜냐하면 저는 '전기 없는 삶'을 상상해봤다가 도저히 불가능하다는 결론을 내렸기 때문입니다. 전기가 주는 편리함과 쾌적함을 버리고 굳이 고생스러운 삶을 살 필요는 없으니까요. 그게 당연하다고 생각했습니다. 태어날 때부터 전기 없이 살았으면 모를까, 쭉 편하게 살다가 갑자기 전기를 못 쓴다면 그건 재앙일 거라고 상상했습니다.
그런데 이 책을 보니 이나가키 에미코는 아주 잘 살고 있습니다. 전기 없는 삶에 도전하여, 가스도 끊고 수돗물도 아주 조금만 쓰고, 거의 모든 생필품마저 최소한으로 줄이다가, 하다하다 회사까지 그만두었다고 합니다. 그 부분은 전작 <퇴사하겠습니다>를 통해 퇴사 이후의 삶이 어떠한지를 상세히 썼다고 합니다. 이 책은 퇴사 이후 '자연주의 나 혼자 산다'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고소득 직장을 그만둔 이유는 모르겠지만 이 책에서 그녀는 자신의 삶에 매우 만족하고 있습니다. 남들 시선에 신경쓰지 않고, 혼자가 되는 걸 두려워하지 않기로 결심하면서 그녀의 삶이 바뀐 것 같습니다. 자신의 삶에서 전기를 비롯한 물질적인 풍요를 줄이고 없애는 과정이 흡사 부처님의 고행처럼 느껴집니다. 감히 도전할 엄두가 나지 않지만 그녀 덕분에 내 삶을 돌아보게 됩니다. 나는 무엇으로 사는가...
그녀는 당당하게 말합니다. "... 저의 도전은 아직도 진행형입니다. 어느새 정신을 차려보니, 더 내려놓을 게 없을까 늘 두리번거리는 내가 있습니다. 무언가를 내려놓을수록 저는 더욱 단단해지고 더욱 자유로워지기 때문입니다. ... 아아, 오해하지 마시길. 다른 분들에게 저와 같은 극단적인 생활을 해보라고 강요하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습니다. 다만 한 가지, 이것 하나만큼은 마음 한구석에 담아두고 잊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지금 세상은, 막다른 골목에 다다른 느낌입니다. 다들 그렇게 말합니다. 경기가 안 좋다, 인구가 줄고 있다, 빈부 격차는 심해지기만 한다, 어디를 보아도 사방이 꽉 막힌 느낌이다. 그런데 저는 홀로, 그래서, 뭐 어쩌라고, 그런 건방진 마음으로 살고 있습니다. 여전히, 세상을 버려선 안 되는 것이라고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생각하고 있습니다. 내가 변하면 세상이 변한다는 것을 나의 몸으로 체험하고, 누구보다 나 자신에게 놀라면서 말이지요." (13-14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