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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한 여자 1 - 개정판
공지영 지음 / 해냄 / 2018년 1월
평점 :
품절
"정인은 밀려오고 밀려가는 자잘한 파도를 바라본다.
완전한 성에 나를 가두고 오래된 성벽처럼 이끼 끼고 담쟁이 무성하게 오래오래 버티다가 그 안에서 홀로 고요하고 싶다는 바람......을 생각하려다가
정인은 문득 생각을 멈추었다. 누구든 그럴 수 없다고, 산다는 것은, 밀려오고 밀려가는 파도 같은 것, 성처럼 멈추어 우뚝한 게 아니라,
흔들거리면서 가는 거라고, 다만 그 이름이 파도인 것을 잊지 않듯이,
날마다 새로 해안선을 그리며, 덜컹거리면서 가는 것은 아닐까......
그녀의 마음에 파도가 다시 밀려왔고 그러자 그 생각의 모래성마저 우두두 무너져버렸다." (346-347p)

<착한 여자>는 한 여자의 파란만장한 삶을 그려낸 소설입니다.주인공 오정인. 엄마는 "내가 죄가 많아서 널 낳았구나......"라고 말하며 어린 정인의 짧은 단발을 귀 뒤로 넘겨주며 말했습니다.
"그렇지만 엄마는 너를 낳을 때 아주 좋은 꿈을 꾸었단다......
힘든 날이 가면 좋은 날들이 올 거야. 무슨 일이 있어도...... 니 자신을 믿어야 한다....... 넌 참 착한 아이였단다......
엄만 착하게 살지 못했다......" (77-78p)
그 말이 마지막 유언이 되었습니다. 엄마는 그날밤 저수지에 빠졌습니다. 겨우 열 살짜리 계집아이를 세상에 남겨두고 떠났습니다.
아빠는 왜 그토록 엄마를 미워했을까요? 피가 날 정도로 때린 건 아빠인데, 참을 수 없다며 울음을 터뜨리는 사람도 아빠였습니다. 말없이 주먹질을 견디고, 울음마저 참아낸 엄마는 결국 저세상으로 갔습니다. 아빠는 미련없이 새 여자와 살림을 차렸습니다. 정인의 오빠 정관은 집을 나갔고, 언니 정희마저 서울로 떠났습니다. 아픈 할머니를 모시면서 살게 된 정인이는 엄마 말대로 착한 아이였습니다. 그러나 아무도 착한 아이를 봐주지 않습니다. 오히려 착한 아이의 여린 어깨 위에 짐을 지웠습니다.
어쩌다보니 '착하다'는 말은 어리숙하고 만만하다는 의미로 변질된 것 같습니다.
세상은 착한 사람에게 더 가혹한 것 같습니다. 부당하다면 발악이라도 해야 하는데 묵묵히 참는 건 그럴만한 이유가 있는 거라고.
정인에게는 더 이상 따스하게 품어줄 엄마가 없습니다. 그녀에게 필요한 건 사랑이었습니다.
그래서 현준의 음흉한 호의에 넘어갔고, 정씨댁의 저주 때문에 명수에게 다가가지 못했고, 기생충 같은 호영에게 매달렸던 거라고...
상처를 받아 본 사람은 상처입은 사람을 한 눈에 알아보는 법.
정인은 파도를 보면서 그제서야 깨닫습니다. 산다는 건 파도 같은 거라고.
아마도 이걸 공감할 수 있는 사람은 이미 험난한 파도를 겪어봤을 겁니다. 파란만장 정인 씨는 잘 버텨냈습니다. 착한 여자라서 억울해도 어쩔 수 없습니다. 오정인이라는 사람은 원래 그런 사람이니까. 상처투성이 인생이라서 남의 아픔까지 품어줄 수 있는 사람이니까. 부디 정인 씨가 평화롭기를 바랍니다. 휘발성 행복이 아니라 흡수성 평화가 함께 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