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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서 페퍼 - 아내의 시간을 걷는 남자
패드라 패트릭 지음, 이진 옮김 / 다산책방 / 2017년 12월
평점 :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만큼 고통스러운 것은 없을 겁니다.
아서 페퍼, 그는 일흔을 앞둔 노인이자 아내를 잃은 남자입니다.
"꼭 1년 전 오늘, 그의 아내가 죽었다.
세상을 떠났다 고 사람들은 말한다. 죽었다 라는 말이 욕이라도 된다는 듯이. 아서는 세상을 떠났다 는 말을 증오했다.
그 말은 잔물결이 일렁이는 운하를 가르며 지나가는 보트처럼, 혹은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을 떠다니는 비눗방울처럼 온화하게 들렸다.
그러나 그녀의 죽음은 그렇지가 않았다." (10p)
저는 감히 아서의 슬픔과 고통을 짐작할 수 없기에, '아내를 잃었다'라고 표현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 소설은 우리가 인생에서 경험할 수 있는 극도의 상실감을 생생하게 그려내고 있습니다. 40여 년의 결혼 생활 동안 오로지 아내만을 사랑했던 남자 아서 페퍼는 아내의 죽음으로 삶의 의욕마저 잃게 됩니다. 그는 아내 미리엄의 기일에 유품을 정리하다가 옷장 속에서 하트 모양의 상자를 발견합니다. 그것도 부츠 속에서. 주홍색 가죽으로 된 하트 상자엔 조그만 황금 자물쇠가 달려 있는데 열쇠는 찾을 수 없습니다. 아마 누구라도 그 닫힌 상자를 어떻게든 열었을 거라고 장담합니다. 더군다나 아서는 근 50여 년을 열쇠 수리공으로 살아왔으니... 상자 안에는 화려한 금팔찌가 들어 있었습니다. 묵직하고 둥근 고리들과 하트 모양의 잠금장치가 달려 있는 참charm 팔찌. 독특한 건 아이들 그림책에 나오는 태양처럼 팔찌에서 뻗어 나가며 달려 있는 참들이 모두 여덟 개 - 코끼리, 꽃, 책, 팔레트, 호랑이, 골무, 하트, 반지 - 가 있다는 것. 그 중 코끼리 참에 오톨도톨한 부분에 <아야 Ayah . 0091 832 221 897>라고 새겨져 있었고, '아야'는 아시아나 인도의 보모 또는 가정부를 뜻하고 0091은 영국에서 인도로 전화할 때 국가번호라는 걸 알아냅니다.
도대체 이 팔찌는 아내 미리엄에게 어떤 의미를 지녔을까요?
아서는 미리엄과 살면서 한 번도 이 팔찌를 본 적도, 들은 적도 없었기 때문에 아내의 숨겨진 과거를 밝히기 위한 여행을 떠나게 됩니다. 팔찌에 달려있는 여덟 개의 참들은 아서에게는 너무도 낯선 미리엄의 과거가 담겨 있었고, 아서는 당혹감과 함께 묘한 질투심을 느끼게 됩니다.
이 소설은 결코 미스터리물이 아닙니다. 아서 페퍼의 여정을 따라가다보면 어느새 팔찌의 비밀 따위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가정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벗어난 적 없는, 시계처럼 규칙적인 삶을 지향했던 아서 페퍼가 어떻게 변해가는지를 주목하게 됩니다. 일흔의 나이, 좀처럼 와닿지 않았던 그 나이가 유독 이 소설을 읽으면서 크게 와닿았습니다. 어쩌면 지금의 나 자신도 늙어가는 중임을 실감하고 있어서. 그래서 더욱 이 소설은 공감할 수 있는 나이에 읽으면 좋을 것 같습니다. 부모가 되기 전에는 부모의 마음을 알 수 없는 법. 소중한 것을 잃어버린 후에 깨닫는다면 그때는 너무 늦습니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면 후회없이 사랑하기를.
내 생애 마지막에 기억하고 싶은 건 오직 그것 뿐일 것 같습니다. 사랑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