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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랑 ㅣ 로망 컬렉션 Roman Collection 11
윤이형 지음 / 나무옆의자 / 2017년 12월
평점 :
설랑... 소리를 내면 왠지 달착지근한 설탕 같기도 하고 살랑살랑 바람 같기도 해요.
책표지도 옅은 핑크빛이라서 따뜻한 느낌이에요. 손에 쥔 동그란 과자를 자세히 보니 과자가 아니라 달이었네요. 혹시 모를까봐 반짝반짝 초승달, 반달, 보름달 표시가 있네요.
사실 책제목에서 '랑'이라는 한자를 몰라서 찾아봤어요.

말하는 이리? 아니면 이리를 말하다? 혼자 그 뜻을 추측해봤죠.
책을 읽다보니 주인공 서영이 그 뜻을 알려주더군요. 설랑은 '이야기 쓰는 늑대'라고.
윤이형의 소설 <설랑>은 판타지라고 하기엔 현실적이고, 로맨스라고 하기엔 약간 아쉬웠어요. 아무래도 <트와일라잇>같은 판타지 로맨스에 익숙한 탓일지도 모르겠네요.
이상하게 한국소설은 판타지 요소마저도 현실적으로 느껴지는 것이, 제 편견이 작용하나봐요.
뭐랄까, <설랑>은 놀이동산에 있는 '거울의 집' 같은 구성 때문에 어지러웠어요.
주인공의 직업이 소설가인데, 소설 내용이 허구가 아니라 자신의 체험을 쓴다는 점이나 소설 속에 그들이 쓴 소설이 나오면서 현실과 소설이 뒤섞여요. 어찌보면 <설랑>을 쓴 윤이형 작가는 소설 속에서 또다른 자아를 주인공으로 만들었는지도 모를 일이죠. 모든 건 꿈이지만, 그 꿈을 믿는 것이 소설가의 숙명일지도...
주인공 서영은 꿈 속에서 늑대인간이에요. 누군가와 사랑에 빠지면 결국 보름달이 뜨는 밤에 그 사람을 잡아먹게 돼요. 사랑했던 사람은 현실에 존재하지만, 마지막은 늘 꿈에서 끔찍한 비극으로 끝나버리는 거죠. 소설가인 그녀는 자신이 사랑했던 사람의 이야기를 써요. 마치 서영의 사랑은 소설이 완성됨으로써 박제되는 동물 같아요, 아니 그녀의 표현에 따르면 소설책은 파괴된 사랑의 증거이자 한 사람의 삶이 타고남은 재를 담은 유골함이에요. 상상력이 대단하죠? 문제는 서영 자신이 진짜 늑대인간이라고 믿는다는 거예요. 매번 사랑을 두려워하면서도 사랑하고, 결국엔 그 사랑을 파괴함으로써 소설을 탄생시키는 소설가.
서영이 쓴 소설 <스틸 라이프>는 마니아층이 있을 정도로 꽤 인기가 있어요. <스틸 라이프>는 시리즈로 지금까지 12권이 출간되었는데, 제목은 그냥 알파벳 순으로 A로 시작해서 L이 마지막 책이 됐어요. 여기서도 책 제목 <스틸 라이프>가 영어 단어를 확인하기 전까지는 여러 가지를 상상하게 만들어요. Steal life , 인생을 훔치다? Steel life , 강철 수명? 그런데 스틸 라이프(Still life)는 '정물'을 가리키는 미술용어였어요. 서영에게 이 제목의 의미는 정지된 사물, 스스로는 움직일 수 없는 물건, 죽어버린 것들이에요.
<설랑>에서 가장 큰 사건은 서영이 최소운이라는 신인작가를 만난 거예요. 새로 창간하는 무크지를 맡게 된 소운이 서영에게 작품 의뢰를 한 거죠. 원래 서영이었다면 바로 거절했을텐데, 굳이 만난 건 최소운 작가가 쓴 데뷔작 <하줄라프>가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에요. 서로 만나기 전부터 상대방이 쓴 소설에 매료된 거죠.
도대체 사랑이란 뭘까요? 제게는 난해한 소설 같아요. 다 읽고 나서도 잘 모르겠어요. 서영의 꿈처럼 우리는 각자 혼자만의 세계를 가지고 있는 것 같아요. 누군가의 세계를 이해하려면 온전히 사랑하는 수밖에는 없는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