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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 들어도 좋은 말 (스페셜 에디션) - 이석원 이야기 산문집
이석원 지음 / 그책 / 2017년 9월
평점 :
품절
이석원 작가의 두 번째 산문집.
제게는 첫 번째 책입니다. 처음 만나는 작가의 책.
<언제 들어도 좋은 말>이라는 다소 오글오글거리는 제목 때문에 달달한 내용을 상상했습니다.
여자와 남자의 손으로 추측되는 두 손이 살짝 맞닿은 표지 그림도 한몫을 했습니다.
그런데 이런 .... 책을 읽다가 책표지를 다시 봤습니다.... 소설이었나?
아니, 분명히 '이석원 이야기 산문집'이라고 쓰여 있습니다.
낯가림이 심하고 마음이 얇아서 사소한 자극에도 민감하다는 작가님이 이토록 솔직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냈다는 게 가능할까라는 의구심.
원래 사람은 자기 내면에 다양한 모습을 갖고 있다지만 이렇게 다를 수 있다니 놀라웠습니다.
지인의 소개로 만난 정신과 의사라는 그녀.
결코 평범하지 않은 그녀와의 만남들.
"우린 ...... 이제 친해지겠지.
마음은 놔두고 몸만 기형적으로 친해지겠지." (185p)
스스로 천직이라 믿었던 글 쓰는 일에 대해 회의를 느끼던 시기에 하필이면 그녀를 만났다는 것이 우연치고는 참으로 고약한 것 같습니다.
그런데 가만 생각해보니, 작가님이 더 고약한 게 아닌가 싶습니다.
본인만의 일도 아니고, 그녀와 관련된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를 책으로 써냈으니 말입니다. 작가로서의 복수인 건가요.
물론 작가님의 심정을 이해 못하는 건 아닙니다. 처음에는 호기심으로 시작했고, 그다음은 약간의 설렘으로 기대했는데, 결론은 마음이 아닌 몸의 위로라니...
아무리 정신과 의사라도 자기 자신은 제대로 치유하기 어렵겠지요. 그러니까 다중인격처럼 몸과 마음을 분리해서 사람을 만나는 방식을 선택했는지도 모르겠네요.
전혀 공감하기 어렵지만 이런 기묘한 관계 속에서도 연애 비슷한 감정 변화가 생긴다는 게 신기할 뿐입니다.
나이들면서 서글퍼지는 건 순수함이 사라졌다는 것입니다. 사람과의 관계에서 순수함만 모두 증발해버린 듯한 기분이 들 때... 그게 나 때문인지, 그 사람 때문인지는 알 수 없지만 문득 세월의 무게가 느껴집니다. 알면 알수록 알고 싶지 않은 사람의 속내. 그래서 남자는 첫사랑을 평생 가슴에 품고 산다는 말이 생겼나 봅니다. 첫사랑이야말로 절대 변하지 않을테니까요. 약한 자여, 그대 이름은 남자이니라. 아니, 사랑에 빠진 모든 사람은 약자이니라.
상처받지 않으려고 사랑하지 않을 수 있다면 우리는 사랑하지 않고 살 수 있을까.
누군가를 사랑하게 된다는 건 얼핏 자신의 의지로 선택한 것 같지만 피할 수 없는 운명이 아닐까. 그 사랑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해도.
현실에서 사랑은 스쳐가는 바람 같습니다. 느낄 수는 있지만 잡아둘 수는 없는... 살다보면 어떤 바람이 내게 불어올지 알 수는 없지만 부디 산뜻한 바람이 불기를.
저는 이석원 작가를 잘 모릅니다. 그래서 그냥 이 책 속에 담긴 마음을 있는 그대로 느낄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지 못하는 자의 고백' - 어쩌면 아무에게도 들키고 싶지 않은 찌질한 나를 보여준 것만으로도 대단한 용기였다고, 덕분에 수많은 찌질이에게 위로와 힘이 되었다고. 사랑이 떠나고 나서야 알게 되는 것들... 왜 진작 알지 못했나 후회되는 것들, 그러나 돌이킬 수 없는 것들.
작가님에게 언제 들어도 좋은 말은, "뭐해요?"
제게 있어서 언제 들어도 좋은 말은, 사랑하는 사람이 따뜻하게 불러주는 내 이름.
평생 따뜻하게 내 이름을 불러줄 그 사람이 곁에 있기를 소망하게 됐습니다. 소중한 것을 잊지말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