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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진짜 인생은
오시마 마스미 지음, 김난주 옮김 / 무소의뿔 / 2017년 9월
평점 :
절판
어느날 문득 누군가의 말 한 마디가 강한 펀치처럼 다가올 때가 있습니다.
"당신의 진짜 인생은 여기 없어."
우시로는 유명 소설가 홀리에게 이 말을 듣고 안정적인 공무원 일을 그만뒀습니다.
그리고 운명처럼 곧바로 홀리의 비서가 되어 또다른 인생을 살게 됩니다.
편집자 가가미는 홀리 씨의 남편 미노시마와 함께 카지노 도박에 빠져서 완전 비참한 상황에 처하게 됩니다.
당시 홀리는 미노시마와 이혼한 상태였고 자신의 재산을 두 사람이 도박에 탕진했다는 걸 알게 됩니다.
놀라운 건 홀리의 태도였습니다. 가가미의 횡령을 용서했고 이후로도 편집자 일을 맡겼던 것.
그래서 가가미는 평생 홀리를 위해 일하겠다고 다짐하지만 스멀스멀 도박 중독기가 나타나서 홀리에게 종종 거액의 돈을 빌리고 있습니다.
홀리 곁에서 이 모든 상황을 지켜보고 관리하는 우시로는 걱정만 할 뿐 대놓고 반대하지는 않습니다. 어찌됐건 홀리 마음이니까.
소설가를 꿈꾸는 마미는 출판사에 보낸 원고가 번번이 퇴짜를 맞아서 절망하던 차에 편집자 가가미로부터 한 가지 제안을 받습니다.
자신이 엄청 좋아하는 소설가 모리와키 홀리의 제자가 되어보라는 제안.
그런데 실상은 홀리 선생이 재활 치료 중이라 원고를 쓰지 않으니, 제자가 아니라 시중 들 사람이 필요했던 것.
물론 홀리가 원했던 건 아니고 가가미의 계략이랄까. 마미 같은 젊은 여자애가 옆에서 자극을 주면 홀리가 원고를 쓸 수도 있고, 반대로 소설가 지망생인 마미에게도 도움이 될 수 있을테니까, 양쪽 모두 나쁠 게 없다는 결론.
문제는 홀리와 우시로를 만난 마미가 사흘 만에 그 집에서 도망쳤다는 것.
홀리는 마미를 처음 보자마자, "처칠을 닮았네."라고 말했습니다. 처칠은 홀리의 대표작 '비단 배' 시리즈에 나오는 검은 고양이로 포탄처럼 기운이 넘쳐 주인공들을 골치 아픈 사건으로 몰고 가는 번잡스러운 캐릭터.
소설가는 언어의 마법사라고 했던가. 홀리는 소설가답게 처음 만나는 사람마다 뚜렷한 이미지를 떠올립니다. 무슨 초능력자나 무속인 같은 능력이 있는 건 아니고, 그냥 작가적 상상력인 듯. 홀리는 우시로를 처음 봤을 때, 자신의 집에서 일하고 있는 모습을 떠올렸습니다 - 엷은 연두색 투피스에 노란 구두를 신고 홀리 집에서 일하는 우시로. 그로부터 3년 뒤 우시로는 노란 구두와 엷은 연두색 투피스를 구입했는데 그제서야 홀리가 그런 말을 했던 기억이 났습니다.
"말은 속박한다.
그걸 언어의 혼이라고 하는 걸까.
당신의 진짜 인생은." (21p)
홀리의 요청으로 다시 돌아온 처칠, 아니 마미는 그 집에서 소설을 쓰는 대신 고로케를 만듭니다. 이 무슨 황당한 상황일까 싶지만 홀리의 집에서라면 얼마든지 가능한 일입니다. 늘 그렇듯이 홀리는 진지한 듯, 무심한 듯 말했으니까요. "당신의 진짜 인생은?" 그 말이 마법처럼 사람들에게 진짜 인생을 찾게 만든 것 같습니다.
신기하게도 이 책을 읽는 내내 누가 물어본 것도 아닌데 자꾸만 스스로에게 '내 진짜 인생은?' 묻게 됩니다.
어떤가요? 당신의 진짜 인생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