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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티시아 - 인간의 종말
이반 자블론카 지음, 김윤진 옮김 / 알마 / 2017년 8월
평점 :
레티시아 - 인간의 종말
제목만 봤을 때는 '레티시아'가 특정 용어인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레티시아는 18세 소녀의 이름입니다. 레티시아 페레. 2011년 1월 18일 밤에서 19일 사이에 납치되어 살해되었습니다.
쌍둥이 언니 제시카와 함께 위탁가정에서 생활하며 서빙 알바를 했던 소녀의 죽음.
저자는 왜 레티시아에게 주목했을까요.
프랑스 대통령 니콜라 사르코지는 살인범에 대해 내린 형벌을 비판하며, 판사들에게 잘못이 있다면 엄중히 징계하겠다고 공언했고,
이로 인해 사법계 역사상 유례가 없는 파업을 초래했습니다. 프랑스 대통령의 개입과 사법계의 파업은 그야말로 국가적 사건이 된 것입니다.
또한 뒤이어 사건 속의 또 다른 사건이 드러납니다.
2011년 8월, 위탁가정의 양부가 레티시아의 언니 제시카를 성추행한 혐의로 조사를 받습니다.
양부가 제시카를 성추행했다면 레티시아 역시 피해자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안타깝게도 레티시아는 범죄의 희생양이 되어 죽은 후에야 인간다운 관심을 받게 되었습니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서 레티시아의 본모습과 존엄성, 자유를 되돌려주고자 합니다.
레티시아의 생명과 인간성을 앗아간 범죄로부터 그들의 존재를 복원시킨 이 책은, 결코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책이 아닙니다.
굳이 비극적인 소녀의 삶을 재조명하는 건, 그들을 외면했던 사람들과 이 사회에 보내는 메시지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근래 영화 <청년 경찰>을 봤습니다.
경찰대학생인 두 청년은 밤길을 걷다가 우연히 여자가 납치되는 장면을 목격합니다.
급한 마음에 납치 차량을 좇아가지만 놓쳐버립니다. 인근 파출소를 찾아가 납치 사건을 신고하지만 경찰의 반응은 냉담합니다.
경찰 선배를 찾아갔으나 높으신 분의 자녀가 실종되었다며 긴급출동에 나섭니다.
결국 두 청년은 직접 납치된 여자를 찾아나섭니다. 여자는 아직 미성년자인 18세 소녀로 가출한 상태였고, 같은 처지의 아이들과 동거하며 알바하던 중이었습니다.
가출한 소녀들만 계획적으로 납치하여 불법적으로 난자를 추출하여 팔아먹는 나쁜 놈들.
소녀들의 난자로 불임부부의 인공수정을 시술하며 돈벌이에 급급한 산부인과 의사.
만약 두 청년이 아니었다면 납치됐던 소녀들은 쥐도새도 모르게 죽었거나 인신매매되었을지도 모릅니다. 영화의 결말은 극적으로 구출된 소녀가 두 청년을 찾아와 감사를 표현하는 것으로 끝납니다. 해피엔딩인가요?
아닙니다, 전혀 행복하지 않은 결말이었습니다. <청년 경찰>에서 피해소녀들을 구한 건 경찰이 아닌 경찰대학생이었습니다. 선량한 두 청년이 슈퍼맨이 된 영화. 현실에서 슈퍼맨을 기대할 수는 없습니다. 무너진 가정, 학대받는 아이들, 가출 청소년, 성폭행 피해자들.... 사회적 불평등 속에서 범죄자들의 표적이 되는 약자들.
우리 사회의 레티시아... 누가 그들을 지켜줄 것인가라는 질문에 말문이 막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