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
안톤 슈낙 지음, 차경아 옮김 / 문예출판사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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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은 왜곡된 기억일지도 모릅니다.

안톤 슈낙의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

제게 이 책은 한 조각 추억 속에 있습니다.

중학교 시절 국어선생님께서 수업 마지막 10분은 책을 읽어주셨습니다.

주로 에세이가 많았는데 그 중 유독 이 책이 뇌리에 남아있습니다.

책의 내용이 아니라 그 책을 읽어주시던 선생님의 목소리와 그때 그 느낌.

마른 몸매에 맑은 눈동자, 약간은 떨리는 듯한 음성.

이 책을 떠올리면 타임머신처럼 그 시절 그 순간으로 돌아간 듯한 느낌을 받습니다.

그래서 오랜만에 재출간된 이 책을 발견한 순간, 무척 반가웠습니다.

추억 그 자체인 책.

소리내어 읽어보았습니다.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  -  울고 있는 아이들의 모습은 우리를 슬프게 한다.

초가을 햇살이 내리쬐는 정원 한 모퉁이에서 오색영롱한 깃털의 작은 새의 시체가 눈에 띄었을 때.

대체로 가을철은 우리를 슬프게 한다.

이를테면 비 내리는 잿빛 밤, 소중한 사랑하는 이의 발자국 소리가 사라져갈 때.

그러고 나면 몇 주일이고 당신은 다시 홀로 있게 되리라..... "  (9p)

십대 시절에는 어떤 의미인지도 모른 채 그저 가슴이 느끼는 대로 내맡겼는데,

세월이 흘러 다시 읽어보니 조금 알 것 같습니다.

막연한 느낌이 아니라 살면서 체득하게 된 앎.

첫 문장을 소리내어 읽으며, 오늘따라 초가을 햇살이 내리쬐어서, 바람이 서늘하게 불어서,

홀로 있게 되어서 슬펐습니다. 조용히 흐르는 눈물...

".... 이 모든 것은 우리들 가슴에 스며들며 우리를 슬프게 한다." (13p)

마지막 문장이 깊숙하게 스며들었습니다. 나의 목소리가 "슬프게 한다"를 소리낼 때, 나는 귀가 아닌 가슴으로 들었습니다.

안톤 슈낙은 그저 초가을 풍경을 읊었을 뿐인데, 이미 제 가슴에는 슬픔이 스며들었습니다.

추억 속의 이 책은 전혀 슬픔이 느껴지지 않았는데, 지금 제 눈 앞에 놓인 이 책은 그때와는 전혀 다른 책으로 다가옵니다.

라틴어 학교 학생 안톤 슈낙의 치기 어린 장난과 허세, 첫사랑 그리고 친구들의 죽음...

지금 우리에게는 그의 삶이 다소 낯설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삶의 모습이 다를 뿐, 그의 생각과 감정까지 낯선 것은 아닙니다.

"... 나를 설레게 한 것은 그리움이었을까?  그것은 오히려 허영이고, 쾌감이며, 유희였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것은 순전히 무자비하고 불운한 돈 주앙 같은 자의 마음의 동기였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157p)

우리의 감정은 가끔 제멋대로 흘러갈 때가 있습니다. 그 순간은 진심이었을지 몰라도 모든 게 진심이 아닌 것처럼.

"... 영원히 다시 오지 않을 세월 속으로 묻혀버린, 흘러가버린 그 겨울.

희미한 새벽빛 속을 한 사나이와 어린 소년이 눈 속에 크고 작은 발자국을 내며 가고 있었다.

이 어린 소년이야말로, 오늘 이 시간 마인 강변에서 상념에 잠겨 바라다보는 이 사나이였던 것이다.... "(241p)

안톤 슈낙의 글은, 우리 내면의 아이와 어른을 만나게 합니다. 차가운 눈길 위에 크고 작은 발자국.

어쩌면 누가 읽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느낌으로 다가올지도 모르겠습니다. 당신의 가슴 어디를 파고들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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