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의 지혜 모리스 마테를링크 선집 1
모리스 마테를링크 지음, 성귀수 옮김 / arte(아르테) / 2017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지혜와 운명>이라는 책을 통해 모리스 마테를링크를 알게 됐습니다.

하지만 작가의 이름만 몰랐을 뿐 이미 그의 작품을 읽었습니다. 아마도 저뿐 아니라 많은 이들이 읽었을 겁니다.

바로 <파랑새>의 작가 모리스 마테를링크.

왜 그를 벨기에의 셰익스피어라고 부르는지 알 것 같습니다. 그의 글은 묘한 매력이 있습니다.

읽을 때는 시원한 바람처럼 와닿고, 읽은 후에는 향기처럼 여운이 남습니다.

<꽃의 지혜>는 한 편의 다큐멘터리 영화 같습니다.

꽃을 보면서 '아, 예쁘다~'라는 감탄사가 전부였던 사람에게, 꽃은 그저 우연히 피어나는 게 아니라는 걸 깨닫게 해줍니다.

우리는 흔히 연약하고 무력한 상태를 '식물'에 비유합니다. 그러나 이 책을 읽고 나면 식물이 얼마나 강인한 의지로 살아가고, 꽃을 피워내는지 감탄하게 됩니다.

그는 이 책을 통해 모든 식물학자들이 익히 알고 있는 몇 가지 사실을 되새기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가 한 일은 새로운 발견이 아니라 몇몇 기본적인 관찰이라고.

매우 겸손한 태도입니다. 그는 심도있는 관찰을 통해서 식물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지혜의 증거로서 '꽃'을 집중조명하고자 합니다.

"... 식물이 보여주는 가장 완벽하고 조화로운 지혜의 증거를 대보라고 한다면 나는 단연코 난초를 추천하겠습니다.

이 까다롭고 오묘한 꽃 속에서 식물의 천재성은 극에 달하고, 기발한 섬광으로 수많은 영역의 경계를 단번에 꿰뚫어버립니다.

... 찰스 다윈의 <곤충에 의한 난의 수정에 관하여>는 바로 이를 집중적으로 연구한 저서인데,

꽃의 영혼이 보여주는 지극히 영웅적인 분투에 대한 경이로운 기록을 담고 있지요.

... 꿀벌이나 나비를 끌어들여 정해진 시간과 형식에 따라 자신이 바라는 일을 정확히 수행하도록 만드는 기술 면에서는

가히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꽃이니까요."  (76-78p)

어떤가요?  한 곳에 뿌리내린 채 움직일 수 없는 식물이 곤충을 자기 마음대로 조종할 수 있다는 것이 놀랍지 않나요?

우리는 이러한 현상들을 생물학적인 사실로만 받아들였지, 식물의 능력으로 인정해주진 않았습니다.

이 책 속에 나온 식물들 중 제 눈길을 끈 건 '두레박난'입니다.

저자는 '두레박난'에 대해서 '이 녀석은 기상천외한 상상력의 산물'이라고 극찬합니다.

두레박난의 계략은 너무나 신기한 이야기같아서 그대로 옮겨 전해봅니다.


아래쪽 꽃입술은 큼직한 잔이나 두레박처럼 생겼는데,

바로 위에 드리운 두 개의 원뿔 모양 관에서 나오는 맑은 물 같은 액체가 그 안으로 방울방울 떨어지지요.

그러다 두레박이 반쯤 차오르면 옆으로 비어져 나온 도관을 통해 물이 빠져나갑니다.

이러한 수력 시설의 생김새만으로도 눈이 휘둥그레질 지경입니다만,

정작 그 이면에 도사린 계략의, 거의 악마적이라 할 정도로 주도면밀한 진면목은 이제부터 시작입니다.

...  일단 순진한 곤충은, 앞에서 잠시 언급한 쫄깃쫄깃한 혹에서 풍겨나오는 달짝지근한 향기에 이끌려

함정 속으로 빠지게끔 되어 있습니다.

그 혹은 두레박 바로 위, 구명 두개를 갖춘 일종의 방 안에 자리 잡고 있지요.

이때 말벌이 한 마리로 그친다면 두레박이나 암술머리, 꽃가루와는 아무 상관 없이 얌전히 식사를 마치고 떠날 수 있을 것입니다.

물론 꽃의 입장에서는 그보다 더한 낭패가 없겠지요.

하지만 이 현명한 난 꽃은 자기 주위로 요동치는 삶의 면면을 속속들이 꿰뚫은 지 이미 오래입니다.

자고로 벌이라는 족속은 탐욕스럽고 부산하기 그지없는 데다 늘 바글바글 떼로 몰려다닌다는 것쯤은 훤히 알고 있지요.

... 자, 이제 부지런한 말벌 두어 마리가 달콤한 방 속으로 한꺼번에 비집고 들어옵니다.

당연히 공간이 비좁을 수밖에 없겠지요.

... 그 와중에 적어도 어느 한 놈은 아래 대기하고 있는 두레박 속으로 떨어지고야 맙니다.

난데없이 물통에 빠진 말벌의 멋진 반투명 날개가 구석구석 젖어들면,

아무리 애를 써도 다시 날아오를 수 없습니다.

바로 이것이야말로 교활한 꽃이 노린 사태지요.

마법의 두레박에서 벗어날 수 있는 탈출로는 그 안에 든 액체를 밖으로 쏟아내버리는 도관밖에 없습니다.

한데 넓이가 곤충 한 마리가 겨우 지나갈 정도인 그 도관을 녀석이 무사히 빠져나가려면,

우선 끈끈한 암술머리에 등이 닿아야 하며,

도관 내부를 따라 죽 이어진 꽃가루덩이의 점액샘을 건드려야만 합니다.

급기야  점성이 있는 꽃가루를 잔뜩 묻힌 채 함정을 벗아난 말벌이 이웃의 다른 두레박난을 찾아들면

다시 똑같은 가짜 잔치와 어리석은 몸싸움, 물통으로의 추락, 힘겨운 탈출의 전 과정이 반복되면서,

탐욕스러운 암술머리에게 꽃가루만 잔뜩 선사하게 되는 것이지요.

... 그래봐야 우연에 기댈 수밖에 없는 일인데 왜 그 토록 복잡한 장치를 동원하겠느냐고 의문을 품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 하늘을 정복하려고 그토록 애쓰는 우리의 모습을 화성이나 금성쯤에서 누군가가 내려다보고 있다면,

그들 또한 이런 질문을 하지 않을까요?

"기구, 비행기, 낙하산 같은 기괴하고 조잡스러운 도구들이 대체 왜 필요한 거지?

그저 새들처럼 두 팔에 힘센 날개를 다는 간단한 방법이 있는데 말이야."  (97-102p)


<꽃의 지혜>가 준 감동을 달리 뭐라고 표현하지 못하겠습니다. 직접 읽어봐야 제대로 느낄 수 있습니다.

모리스 마테를링크는 꽃과 우리가 서로 닮았다고 말합니다. 그러니까 활짝 핀 꽃처럼 우리의 삶도 활짝 피어야 되지 않을까요?

암담한 상황 속에서도 지혜롭게 피어나는 꽃처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