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가지에서 읽는 철학책 - 떠남과 휴休, 그리고 나의 시간
장 루이 시아니 지음, 양영란 옮김 / 쌤앤파커스 / 2017년 7월
평점 :
절판


휴가를 떠나면서 책 한 권을 챙겨갈 때 어떤 책을 가져갈까요?

아마도 철학책은 아닐 겁니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나면 철학책이 왜 휴가지에 어울리는 책인지 알게 될 겁니다.

'바다를 사랑한 철학자'라고 불리는 장 루이 시아니.

그는 프랑스의 어느 해변가에서 이 책의 서문을 썼다고 합니다.

"....드디어 그곳에 도착했다. 오랫동안 꿈꾸고 그토록 그리던 바로 그 바닷가.

...하고 싶은 모든 일을 할 수 있다. 말하자면, 우리는 이 바닷가에서 거의 완벽하게 '철학'을 할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바캉스를 떠난 사람이 자기 몸에 하듯이, 그러니까 일상에서 걸치고 있던 갑갑한 옷을 모두 벗어던지는 것처럼 철학을 대해야 한다.

...바로 그런 까닭에, 여름철을 위한 이 작은 철학책은 '휴가를 사유 안'에, 또는 '사유를 휴가 안'에 슬쩍 밀어 넣을 것이다." (006-009p)

우리에게 철학은 선뜻 다가가기 어려운 학문입니다. 그래서 철학책은 골치아픈 책으로 치부되곤 합니다.

자, 그러면 <휴가지에서 읽는 철학책>은 어떨까요?

시끌벅적 요란하게 놀고 싶은 사람에게는 이 책을 펼쳐볼 시간이 없을테니까, 이 책의 용도는 냄비받침이 되겠네요.

그러나 바쁘고 정신없는 일상이 싫어서 조용하고 한적한 휴가를 즐기고 싶은 사람에게는 이 책이 심심풀이용 혹은 잠자리 취침용으로 쓰일만 합니다.

책의 목차를 보면, 휴가와 철학이 많이 닮았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떠난다 -> 그곳에 도착한다 -> 놀란다 -> 다시 산다 ->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 -> 현재에 산다 -> 옷을 벗는다 -> 자신을 북돋아준다 -> 높이 올라간다 -> 스스로에게 묻는다 -> 명상을 한다 -> 관조한다 -> 읽는다 -> 엽서를 쓴다 -> 걷는다 -> 기뻐한다 -> 웃는다 -> 소통한다 -> 사랑한다 -> 모래 위에서 논다 -> 환해진다 -> 햇빛을 받는다 -> 돌아간다

한가하고 여유롭지 않으면 사색할 수 없습니다. 고로 사색을 위해서 휴식, 쉼이 필요합니다.

철학이란 훌쩍 떠난 여행지에서 홀로 사색에 잠기는 그 순간 피어납니다.

메를리 퐁티는 <철학 예찬>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철학적 절대란 어디에도 없다. 따라서 그것은 절대로 다른 곳이 아니다. 철학적 절대는 매 사건마다 깃들어 있다." (031p)

어느 곳에서나, 언제든지 우리는 철학을 만날 수 있습니다. 다만 우리가 알아차리지 못할 뿐.

저자는 해변가에서 휴가를 즐기는 모든 활동 속에서 철학을 이야기합니다.

소크라테스, 에픽테토스, 키케로, 파스칼 등등 수많은 철학자들이 슬그머니 등장합니다.

그 중에서 알베르 카뮈의 수필집 <여름>을 인용한 부분이 가장 공감됩니다. 카뮈는 어린 시절과 청소년기를 보낸 곳을 다시 찾습니다. 그곳에서 맞이한 명상의 나날을, 카뮈는 명상에 대해서 이런 말로 끝을 맺습니다. "겨울의 한가운데에서, 나는 마침내 내 안에 꺾이지 않는 여름이 깃들어 있음을 알게 되었다." (098p)

"내 안의 꺾이지 않는 여름"이라는 표현이 굉장히 멋집니다.

뜨거운 여름, 휴가 온 해변가에서 자기 내면의 여름을 찾을 수 있다면 그야말로 짜릿한 순간이 되지 않을까라는.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그 무엇도 될 필요가 없는, 오로지 휴식을 위한 시간에 비로소 나는 나자신이 될 수 있습니다.

해변가에서 한 줄기 시원한 바람처럼 철학이 있습니다. 스쳐지나가는 바람을 그대로 느끼듯이 이 책도 자연스럽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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