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품 (특별판) 작가정신 소설향 11
정영문 지음 / 작가정신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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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품>이란 책은 크기가 손바닥만 합니다.

겉표지가 반투명으로 비치는 종이로 싸여져 있습니다.

예전 국민학교 시절엔 기름종이라고 해서 국어 교과서에 붙여서 따라쓰기 연습을 했었다는...

기름종이로 이 책을 감싼 것이 의도된 설정이라면 매우 훌륭합니다.

얼핏 형태는 보이지만 안개처럼 희미하게 보이는 효과.

<하품>은 정영문 작가의 소설입니다.

스토리는 단순합니다.

배경은 동물원, 등장인물은 단 두 사람이 나누는 대화.

아침부터 기분이 이유 없이 별로였던 '나'는 우연히 동물원을 갔고, 그 곳에서 한때 알고 지내던 '사내'를 만납니다.

그 사내는 '나'를 반갑게 아는 체 하지만 '나'는 그가 반갑지 않습니다. 무시하는 '나'를 붙잡는 그.

두 사람은 벤치에 앉아 시덥잖은 이야기를 나눕니다. 앞뒤가 맞지 않는, 서로 무시하는 대화가 끝없이 이어집니다.

이를테면, 그는 "그래,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지, 그런데 그게 언제 였지?" 같은...

이토록 답답한 대화를 그들은 왜 하고 있는 건지... 처음에 이 책을 펼치기 전에는 너무 얇아서 금세 읽겠구나 싶어서 잠자리에 펼쳤다가 두어 장을 넘기지 못하고 하품을 하다가 잠이 들었습니다. 결국 세 번에 나누어 다 읽어냈습니다. 그리고 책 뒷편에 실린 작품해설은 읽지 않았습니다.

정영문 작가의 <하품>은 문학상 최초 그랜드슬램, 한무숙문학상, 동인문학상, 대산문학상 수상 작품이라는 것을 다 읽고 난 뒤에야 알게 됐습니다.

하지만 수상작품이라고 해서 이 소설이 더 훌륭해보이거나 더 가치있는 작품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그런 것은 심사위원이나 평론가들이 할 일이고,

책을 읽는 독자는 그저 책을 읽으면 될 일이니까.

자, 이제부터 한낱 독자의 소감을 적어보겠습니다.

<하품>은 제목 그대로 하품을 유발하는 소설입니다. 재미 위주의 소설을 원한다면 절대 보지 마세요.

불면증이 있다면 이 책이 도움이 될 지도 모르겠습니다. 이건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소견일뿐, 심각한 불면증은 의사에게 진료받으시길.

그런데 왜 수면유도제와 같은 책을 끝까지 읽었느냐고 묻는다면,

그건 마치 소설 속의 '나'와 같은 심정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소설 속의 '나'는 우연히 그를 만났고, 원치 않는 대화를 이어가면서 그를 비난하고 무시하지만 점점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습니다.

그들은 과거에 함께 일한 적이 있었고, 그때도 마음은 맞지 않았지만 손발은 잘 맞았던 훌륭한 짝패였다고, '나'는 말합니다.


- 어떤 때는 우리가 서로 구별이 안 갈 정도로, 한 사람으로 여겨지기까지 했어, 우리의 비루함이, 우리를 우리답게 만들어주었던 비루함이 우리를 하나로 묶어 주었던 것 같아, 그가 말했다. (29p)


딱 이 느낌입니다. 내가 이 책을 끝까지 읽은 이유.

그들의 비루함을 비난하면서도 나라는 사람 역시 내 안의 비루함이 싫어서 그들을 밀어낸 것이 아닐까라는.

우리는 멋진 영웅이나 신나는 모험 이야기에 끌리지, 이런 비루한 대화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새로울 것이 없는 이야기, 오히려 내 안의 비루함을 끄집어내는 이야기라서.

소설 속의 '나'는 그와 헤어지면서 "만약 그럴 수만 있다면, 다시는 자네를 보고 싶지 않네."라고 말합니다.

'나'에게는 그와의 만남이 '한 눈에 들어오는 이 흐릿한, 일그러진 여름 풍경' 같기 때문에.

<하품>은 소설 속의 '나'처럼 투덜대면서 읽게 되는, 그러나 한 번 읽게 되면 끝까지 읽을 수밖에 없는 그런 소설입니다.

그건 마치 우리의 일상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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