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스티스맨 - 2017년 제13회 세계문학상 대상 수상작
도선우 지음 / 나무옆의자 / 2017년 6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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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숨에 읽게 되는 소설.

그건 첫 장을 읽는 순간 알게 됩니다.

소설가는 한 문장을 쓰기 위해서 수많은 시간을 매달렸을텐데 독자는 겨우 몇 시간 만에 읽어버리니 미안한 마음이 듭니다.

한 번도 소설가의 입장에서 생각해 본 적이 없는데 왠지 <저스티스맨>은 그런 생각이 듭니다.

아마도 마지막에 본 '작가의 말'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매 년 공모전에 응모해오면서 쓰디쓴 낙방을 경험했던 그에게 수상 소식은 무엇보다 기쁜 소식이었을텐데 의외로 반응은 차분했다고 합니다.

그건 기쁘지 않아서가 아니라 오히려 간절함이라는 것이 한 팔 년쯤 간절하다 보니 그게 뭔지 잘 모르게 된 모양이라고 말합니다.

이 소설은 이미 구 년 전 초여름에 처음 태어났고, 그의 첫 소설이었다고 합니다. 그땐 단편이었고 최종심에 올라 엄청난 기대를 했으며 소설가가 되리라 결심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하지만 그 기대를 저버리며 팔 년을 보냈다고 하니 그 시간들이 얼마나 괴로웠을지 짐작하기 어렵습니다.

바로 그 애증의 첫 작품을 다시금 장편으로 다듬어서 <저스티스맨>이 탄생했다는 것.

이 소설을 읽으면서 우리 사회의 정의가 무엇인지를 생각했다면, 다 읽고난 후 작가의 말을 읽으면서 소설가야말로 이 시대의 저스티스맨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가끔 SNS를 통해 퍼지는 악의적인 댓글들에 화가 치밀 때가 있습니다. 익명 뒤에 숨어서 비열하게 떠들어대는 사람들.

대부분 유명연예인이나 공인들이 주타겟이 되지만 일반인이 피해자가 될 때도 있습니다. 실제 그들의 잘못을 두둔할 생각은 없지만 아무리 잘못했다해도 마녀사냥식의 여론몰이는 반대합니다. 그래서 이 작품이 주는 의미가 매우 큰 것 같습니다.

온라인 강국, 대한민국에서 누리꾼들이 벌이는 악의 향연.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공범이 되었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그만큼 누구나 손쉽게 SNS를 통해 접속하고, 그 영향을 받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정의란 무엇일까요.

다수가 옳다고 주장하는 것?  너무도 쉽게 정의를 운운하며 불의를 저지르는 사회에서 온라인 세상은 교묘한 속임수인지도 모릅니다.

이 소설은 연쇄살인범이 어느 순간 정의를 수호하는 킬러가 되어가는 과정을 보여줍니다. 사람을 죽였으니 당연히 벌을 받아야 할 범죄자라고 여겼는데 나중에 알고보니 그가 죽인 사람들이 모두 파렴치한 인간들이라면 용서받을 수 있을까요. 저도 한때는 사형을 반대했던 사람인데 극악무도한 범죄자를 보면서 생각이 달라졌습니다. 생명존중, 인권보호는 선의를 가진 존재만 해당됩니다. 누가 그것을 판단할 수 있을까요. 중요한 건 사람들이 그 모든 것을 금방 잊는다는 사실입니다. 옳다고 옹호하던 사람들이 한순간 등돌리면 비난에 앞장섭니다. 언제 그랬냐는 듯이... 이렇듯 정의가 손바닥 뒤집듯 바뀌는 세상이니 황당할 따름입니다.

소설 속 카페운영자 저스티스맨처럼 우리의 선의는 언제든지 변질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포기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완전한 정의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정의 자체를 부정해선 안 됩니다. 우리 사회에 정의는 반드시 필요합니다. 제대로 지켜지지 않기 때문에 더더욱 지켜내야 할 정의, 저스티스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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