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각사 (무선) 웅진지식하우스 일문학선집 시리즈 3
미시마 유키오 지음, 허호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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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각사>를 읽고나서 일본문학이 새롭게 느껴졌습니다.

노벨문학상 후보로 세 차례나 거론되었다는 작가 미시마 유키오의 대표작 <금각사>.

역시 그럴만한 작품이라는 걸 확인했습니다.

이 소설은 미조구치의 고백으로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주인공 미조구치는 타고난 말더듬 증세가 있습니다. 시골 절간의 주지인 아버지로부터 금각에 관한 이야기를 자주 들으며 자랍니다. 그가 중학생이 되었을 때 부모를 떠나 숙부 집에 맡겨지면서 혼자 있는 시간에 금각을 상상하곤 합니다. 아버지가 들려준 금각의 환상을 마음속에서 키워나간 것이죠. 못생긴데다가 말까지 더듬는 소년은 짖궂은 아이들에게 늘 놀림감이 됩니다. 무엇보다 가장 큰 상처는 첫사랑 소녀였던 우이코가 준 모욕감일 겁니다. 우이코는 자기 앞을 가로막은 채 아무말 못하는 미조구치에게, "뭐야. 이상한 짓을 다 하네. 말더듬이 주제에."라고 말하며 무시합니다. 또한 자신의 엄마에게 고자질해서 그 사실을 알게 된 숙부는 미조구치를 심하게 야단칩니다. 이 일로 우이코를 저주하며 죽기를 바랐는데, 수개월 후에 그 저주가 이루어집니다. 아무리 철부지 소년이라지만 수치심 때문에 좋아했던 소녀를 저주하다니, 좀 소름이 끼칩니다. 누구나 마음속에 엄청난 악을 품을 수 있는 거니까, 그만큼 미조구치의 심리 상태를 적나라하게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들이 소년을 금각에 대한 절대적 미(美)에 빠져들게 하는 요인이 된 것 같습니다.

봄방학 때 아버지는 미조구치를 데리고 교토에 있는 금각사를 데리고 갑니다. 당시 아버지는 폐병이 상당히 악화된 상태였기에 아들과 함께 하는 여행지로 금각사를 선택했던 겁니다. 드디어 꿈에 그리던 금각사를 본 소감은 너무나 실망스러웠습니다. 낡고 거무튀튀하며 초라한 3층 건물. 상상으로 극대화된 아름다움을 능가할 건 세상에 없습니다. 그는 결국 현실과 타협합니다. 현실을 수정하여 몽상을 자극하는 방향으로, 그러니까 금각의 아름다움은 환영이 아닌 실재(實在)로 변하게 됩니다.

그는 아버지의 죽음 이후 유언대로 교토로 가서 금각사의 도제가 됩니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금각사는 미조구치에게 아버지가 남긴 정신적 유산이라는 점입니다. 그래서 평생 집착할 수밖에 없는 상징물이 된 겁니다.

미조구치의 인생에서 중요한 인물이 두 사람 있습니다.

모든 게 완벽해보이는 쓰루카와 그리고 안짱다리 장애를 가진 가시와기.

우리가 눈으로 보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건 사람에 관해서도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좋은 집안에 잘생긴데다 성격까지 좋은 쓰루카와는 미조구치에게는 유일한 친구였는데, 대학에서 가시와기를 만나면서 서로 소원해집니다. 말더듬이로 소심한 미조구치가 보기에 가시와기는 다소 만만한 존재였습니다. 그러나 예상과 달리 첫 대면에서 독설을 퍼붓는 가시와기는 잔인하리만치 현실적인 친구였습니다. 그는 매우 당당하게 자신의 안짱다리를 이용하여 아름다운 여자들을 지배했습니다. 멘탈 능력자.

<금각사>의 표면적 주인공은 미조구치인지는 몰라도 실질적인 힘을 지닌 존재는 가시와기가 아닌가 싶습니다.

금각사를 향한 집착이 나중에는 파괴본능으로 이어질 때, 따끔한 충고를 던진 건 가시와기입니다.


"어때? 너의 내부에서 무언가가 무너졌지?

나는 친구가 무너지기 쉬운 걸 가슴에 품고 살아가는 모습을 잠자코 보고만 있을 수는 없거든.

내 친절은 오로지 그것을 파괴하는 거야."

"아직 무너지지 않았다면 어쩌지?"

"어린애 같은 떼거리는 쓰지 마." 하고 가시와기는 비웃었다.

"나는 너에게 알려 주고 싶었다고.

이 세계를 변모시키는 건 인식이라고. 알겠냐, 다른 것들은 무엇 하나 세계를 바꾸지 못해.

......

인식은 견디기 힘든 삶이 그대로 인간의 무기가 된 거지만,

그러면서도 견디기 힘든 것이 조금도 경감되지 않아. 그것뿐이야."

"삶을 견디는 다른 방법이 있으리라고 생각하지 않니?"

"아니. 나머지는 광기나 죽음이지."   (311p - 312p)

 


​끝내 금각사를 불태우면서 자신도 함께 사라지려고 하는 미조구치.

불꽃이 튀고 연기로 가득한 금각사에서 숨이 막혀오는 순간, 그는 주저하지 않고 불길 속을 빠져나옵니다. 자신이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 채 뛰쳐나간 그는 계속 달립니다.

산길을 달려 올라간 곳은 히다리 다이몬 산의 정상.​

정신을 차리고 나서 그가 한 일은 호주머니에 있던 단도와 수면제 병을 계곡 사이에 던져버리고 담배를 피운 것입니다.

"일을 하나 끝내고 담배를 한 모금 피우는 사람이 흔히 그렇게 생각하듯이, 살아야지, 하고 나는 생각했다."​(376p)

이것이 <금각사>의 마지막 문장입니다.

놀랍게도 그는 살아남았습니다. 

가시와기에게 세계를 변모시키는 건 절대로 '인식'이 아니라 '행위'라고 반박했던 미조구치.

이후의 미조구치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확인할 수 있는 건 현실 세계에서 미시마 유키오(『금각사』의 저자)의 생애 마지막 모습입니다.

<금각사>를 쓴 지 14년 후인 1970년 11월 25일, 당시 만 45세였던 미시마 유키오는 그가 주재하는 '다테노카이(나라를 지키는 방패들의 모임이라는 뜻)' 회원 4명을 이끌고 육상자위대에 난입하여 자위대의 궐기를 외친 후 할복자살하는 이른바 '미시마 사건'으로 전 세계를 충격에 빠뜨립니다.

안타깝습니다. 작품을 통해서 인간 심리를 그토록 예리하게 그려냈으면서 정작 자신은 잘못된 사상에 빠져 자멸을 선택했다니... 광기어린 죽음이었습니다. 이것이야말로 반면교사의 교훈이 아닌가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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