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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살아보기 - 우리가 미처 몰랐던 조선생활사
반주원 지음 / 제3의공간 / 2017년 4월
평점 :
절판
"태종태세문단세~ 예성연중인명성~~"
조선시대의 역사를 배울 때 줄줄 외우던 것이 생각납니다. 조선 왕조의 계보를 앞글자만 딴 것이죠.
조선시대는 왕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왕을 중심으로 역사를 공부했던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왕이 아닌 일반 백성들의 삶을 어떠했을까요?
<조선시대 살아보기>는 제목 그대로 조선시대의 생활상을 알려주는 책입니다.
역사 교과서에서는 미처 담아내지 못한 시대상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매우 흥미롭습니다.
조선시대의 여인들은 어떻게 외모를 꾸몄을까요? 지금 우리가 사용하는 화장품과는 비교할 수 없지만 당시의 여인들도 희고 뽀얀 피부를 위해 화장품을 만들었다는 것이 <규합총서>에 기록되어있습니다. 또한 화장발 못지 않게 머릿발에도 정성을 쏟아서 조선 중후기에는 높고 화려한 가체가 양반가와 기녀들 사이에서 유행하였다고 합니다. 그러나 가체의 값이 한양 기와집 두 채에 해당하는 등 사치가 만연하여 1788년 정조 때, 가체를 법적으로 금지하는 <가체신금사목>이 등장하게 됩니다. 국가 차원의 규제 속에 가체가 줄어들었지만 머리를 장식하고 싶은 여인들로 인해 비녀와 각종 장신구가 더욱 화려해지는 현상이 두드러집니다. 아름다워지고 싶은 인간의 욕망은 시대를 초월하는 본능인 것 같습니다. 여성에 비해 외모를 치장할 요소가 많지 않았던 남성들조차 머리 장식에 힘을 썼고, 화려하게 만들어진 장신구를 즐겼다고 하니 새삼 우리 멋의 역사를 보는 듯 합니다.
조선시대에도 과학수사를 했을까요? 네, 과학수사 지침서들이 존재했다고 합니다. 세종20년에 일상생활 속 범죄를 다룬 법의학서 <신주무원록>이 완성되었고, <경국대전>을 통해 조선의 공식 법의학서로 규정되었습니다. 영조 때에 이르러 <신주무원록>의 오류를 수정하여 <중수무원록>이 만들어졌고, 정조 때는 한층 심화된 <중수무원록대전>이 완성됩니다. 특히 정조는 과학수사를 통해 사건의 진실을 규명하고 백성의 억울함을 풀어주는 데에 적극적이었습니다. 정조는 정약용에게 명하여 사건처리 과정에서 의혹이 있는 살인사건을 골라 역추적 조사를 실시하도록 했고, 이러한 연구과정을 기록한 것이 <흠흠신서>라고 합니다. 조선 후기 최고의 법의학서이자 형법연구서로 평가받는 <흠흠신서>와 엄격한 삼검제도가 존재했다는 것이 조선이 정의실현에 대한 의지가 있었음을 보여주는 증거입니다.
가장 인상적인 건 '팽형'이라는 형벌제도입니다. 조선시대의 팽형은 중국과는 달리 사람을 끓여 죽이는 육체적 형벌이 아닌 상징적인 처벌이지만 혜정교 위에서 모든 과정을 공개함으로써 관리의 부정부패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웠다는 점에서 놀랍습니다. 이렇듯 조선은 관리들의 청렴을 최우선 덕목으로 여기며 법적으로 규제했습니다. 관직에 있는 자가 뇌물을 받은 경우에 수장죄, 기존의 법을 어긴 자가 범법 행위를 눈감아 주는 대가로 뇌물을 받은 것은 왕법수뢰, 음식이나 사소한 물건 등을 받은 것은 불왕법수뢰, 개인의 부탁으로 사사로이 일을 처리해주는 것을 사후수뢰라고 하여 각각의 경우에 따라 처벌을 달리 했다고 합니다. <세종실록>에는 불왕법수뢰를 공직사회 기강문란과 직결된 수장죄로 보고 규율을 바로 세운 기록이 나옵니다. 당시 세종은 뇌물의 양이 문제가 아니라 뇌물을 상납하는 자체가 용서할 수 없는 죄라며 아무리 적고 값싼 뇌물도 근절되어야 함을 강력하게 이야기했다고 합니다. 시대는 바뀌었지만 청렴한 공직사회와 정의로운 사회에 대한 소망은 변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이밖에도 우리가 몰랐던 조선시대 다양한 삶의 모습을 엿보면서 온고지신의 교훈을 얻은 것 같습니다. 흥미롭고 유익한 역사 읽기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