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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니와 수잔 ㅣ 버티고 시리즈
오스틴 라이트 지음, 박산호 옮김 / 오픈하우스 / 2016년 12월
평점 :
기묘한 소설 속으로 당신을 초대합니다.
심장이 약한 분이나 노약자는 보지마세요.
앗, 이런 구태의연한 문구를 쓰다니.
하지만 어쩔 수가 없네요.
이 소설을 읽으면서 급격한 심박동수 증가와 답답증을 느낀 사람으로서 경고합니다.
앞으로 당신이 느낄 공포는 매우 현실적이며, 당신이 느낄 분노는 지극히 정상적인 반응입니다.
그러니 피할 수 있을 때 피하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이 이야기는 수잔 모로의 첫 번째 남편인 에드워드가 지난 9월 그녀에게 보낸 편지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가 책, 그러니까 소설을 하나 썼는데 읽어봐주지 않겠냐는 내용이었다.
에드워드와 재혼한 부인이 크리스마스 때마다 보내는 안부 카드를 제외하곤 20년 만에 처음으로 에드워드에게 받은 연락이었기 때문에 수잔은 충격을 받았다." (9p)
<토니와 수잔>의 처음 부분입니다.
자, 아직 기회는 남았습니다. 수잔이 충격을 받은 건 전 남편의 갑작스런 편지 때문이지만 당신은 수잔이 아니니까 부담을 가질 필요는 없습니다. 그냥 안 읽으면 됩니다.
하지만 수잔은 거절하기가 어렵습니다. 에드워드는 편지에서 이 소설은 정말 잘 썼기 때문에 보여주고 싶다며, 그녀가 직접 읽어보고 판단해주었으면 한다고 썼습니다. 에드워드에게 있어서 수잔은 최고의 비평가였다고, 이 소설이 장점은 많지만 유감스럽게도 뭔가 빠졌는데 그녀가 도와줄 수 있을 거라고, 그녀라면 뭐가 부족한지 알고 말해줄 수 있을 거라고, 천천히 읽어보고 뭐든 떠오르는 대로 몇 마디 적어달라면서 마지막에는 '여전히 당신을 잊지 않고 있는 에드워드'라고 서명했는데, 이 서명을 보는 순간 수잔은 짜증이 났습니다. 그건 잊고 있었던, 아니 기억하고 싶지 않았던 많은 것들이 떠올랐기 때문에.
여기까지는 괜찮습니다.
아직은 수잔의 감정과 거리가 있으니까.
어떤가요? 읽을 준비가 되셨나요?
<토니와 수잔>은 액자식 구성입니다. 주인공 수잔의 이야기와 에드워드가 쓴 소설 <녹터널 애니멀스>라는 이야기.
우리는 <토니와 수잔>의 수잔을 만나고, <토니와 수잔>의 수잔은 <녹터널 애니멀스>의 토니를 만나게 됩니다.
문제의 소설 <녹터널 애니멀스>의 주인공이 바로 토니 헤이스팅스입니다. 토니는 그의 아내 로라와 딸 헬렌과 함께 휴가차 메인에 있는 여름 별장으로 가고 있습니다. 그가 한밤 운전을 하는 이유는 헬렌이 모텔을 찾지 말고 그냥 밤새 달리자고 제안했기 때문입니다. 질서정연한 생활패턴에서 벗어난 딸의 제안을 그가 받아들인 건 순전히 좋은 아빠가 되고 싶다는 마음 때문입니다. 그는 자신이 좋은 아버지이자, 좋은 교수이자, 좋은 남편이라고 여겼으니까.
그런데 그 밤, 그 시각에 두 대의 차가 나란히 앞을 막으며 차선을 방해하더니 급기야 앞뒤로 포위하듯 오락가락하는 바람에 충돌 사고가 벌어집니다. 불안한 마음에 차를 세우지 않자 계속 뒤쫓아 온 차가 그를 앞질러서 방향을 홱 틀어 갓길로 밀어부칩니다. 결국 차를 세우게 되고 두 대의 차에서는 술냄새를 풍기는 세 명의 남자가 내려서 토니의 가족을 위협합니다. 인적이 드문 고속도로에서 벌어진 의도적인 사고, 시비를 거는 세 남자에게 대항해보지만 토니는 제대로 힘도 못 써보고 끌려가게 됩니다. 그들 중 한 명이 토니의 차를 운전해서 아내와 딸을 데려가버립니다. 정말 기가 막히고 답답한 상황입니다.
자세한 묘사를 하면 할수록 공포와 분노가 뒤섞여버립니다. 만약 내가 토니였다면 아내와 딸을 지킬 수 있었을까. 장담할 수는 없습니다만 토니처럼 어이없게 끌려가지는 않았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더 화가 납니다. 왜 지키질 못했는지.
휴우... 한숨이 나옵니다.
수잔 역시 <녹터널 애니멀스>를 읽으면서 토니의 가족이 납치되는 상황을 견딜 수 없어 합니다. 치욕과 두려움. 그놈들이 토니를 쓰러뜨린 것이 마치 에드워드가 그녀를 막고 있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그녀는 분명히 소설 속 세계와는 거리가 먼, 따뜻한 거실에서 책을 읽고 있고 아이들은 옆방에서 게임을 하고 있는데 왜 갑자기 그녀의 일상에 균열이 생기고 누군가 없어진 것 같은 느낌이 든 걸까요. 이 이야기가 그녀를 사로잡았고, 감정을 휘두르고 있다는 걸 보는 동시에 똑같이 반응하는 제 자신이 신기하면서도 소름끼칩니다. 원래 이렇게 감정이입과 공감능력이 탁월한 사람이었던가, 아니면 정말 이 소설이 잘 쓰여진 건가.
중요한 건 수잔이 <녹터널 애니멀스>를 읽을 수밖에 없었던 것처럼 나 역시 <토니와 수잔>을 읽을 수밖에 없었다는 사실입니다.
피하고 싶지만 피할 수 없는 매력을 가진 소설입니다.
부부 간의 일은 부부만이 안다고, 수잔과 현재 남편 아놀드 그리고 전남편 에드워드의 속사정은 끝까지 읽어야 알 수 있습니다. 놀라운 반전이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