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카페에서 작가를 만나다 2 - 시간.언어 편 철학카페에서 작가를 만나다 2
김용규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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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 카페에서 작가를 만나다> 1권을 읽을 때는 뭔가 예기치 않은 장소에 간 듯한 어리둥절한 느낌을 처음에 받았습니다.

관객들과 함께 했던 인문학 콘서트를 책으로 만들다보니 공연 그대로가 아니라 주제를 중심으로 또다른 공연이 펼쳐진 듯한 구성이라서 그런 듯 합니다.

그런데 신기한 건 2권을 읽을 때는 조금 익숙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아, 이것이 철학카페구나라는 느낌?

일상에서 철학을 이야기하지는 않지만 철학은 늘 일상에 녹아들어 있는 것 같습니다.

이번 책에서는 시간과 언어를 주제로 이야기를 나눕니다.

시간에 관한 이야기를 소설가와 함께 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꽤 철학적인 것 같습니다. 그들이 하는 일이니까요.

소설가 윤성희는 이렇게 말합니다.

"...제가 망연자실이라는 단어를 되게 좋아해요. 망연자실, 어리둥절, 이게 제 인생의 키워드인 것 같아요. 그런 순간이 있어요. 내가 왜 여기 서 있지? 기억상실증처럼 그러고 있을 때 맨 처음 영상처럼 떠오르는 사건이 있는데 매번 달라요. 영상처럼요.

소설을 쓸 때 제가 저 자신을 버리고 3인칭으로 쓰려고 노력하는 건 맞지만 어쨌든 쓰는 건 저라는 사실은 버릴 수 없는 것 같아요. 그래서 작가는 소설을 잘 쓰기 위해 최선을 다해서 사는 게 아니라 저 자신이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최선을 다해서 살 필요가 있어요. 소설 주인공에겐 어쨌든 나 자신이 투영되기 마련이에요." (183p)

제가 느낀 시간도 비슷한 듯 다릅니다.

누군가 제게 "너 예전에 이런 일이 있었잖아."라고 말해줄 때, 제 기억에는 전혀 없는 일이라서, "무슨~ 그건 내가 아니지."라고 잡아 뗐습니다. 기억에 없으니까 아니라고 부정했지만 과연 내 기억이 확실한가에 대해서는 자신할 수 없습니다. 그러니까 시간은 우리에게 각자 방식으로 흘러가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기억과 망각 사이에서 아무런 거림낌없이 조작되는 사실들. 무엇이 진실이냐가 아닌 존재했다는 사실이 더 중요한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그와 관련된 철학자들의 이야기는 책에 잘 나와 있습니다. 또한 마르셀 프루스트의 7부작 장편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대표적인 작품으로 소개되고 있습니다. 프루스트가 말하는 '잃어버린 시간'이 '잊어버린 시간'이 아니듯, '되찾은 시간'도 '다시 기억난 시간'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따라서 '되찾은 시간'은 잃어버린 삶의 진실과 의미가 되살아나는 시간이라고 합니다. 이 작품을 읽지 않았는데도 워낙 여러 곳에서 인용되다보니 그 누군가의 해석이 내 것인양 받아들여집니다. 작품은 몰라도 의미는 알 것 같습니다. 미완성으로 남아 있는 과거들을일지라도 그 안에서 아름답고 소중한 것들을 발견하면 되지 않을까.

다음은 심보선 시인의 두 번째 시집 <슬픔이 없는 십오 초> 중 <웃는다, 웃어야 하기에>의 한 구절입니다.

"내게 인간과 언어 이외에 의미 있는 처소를 알려다오.

거기 머물며 남아 있는 모든 계절이란 계절을 보낼 테다.

그러나 애절하고 애통하고 애틋하여라. 지금으로서는

내 주어진 것들만이 전부이구나." (333p)

인간과 언어에 대해서 시인과 나누는 대화에서 시를 빼놓을 수는 없을 것입니다. 달리 어떤 말을 덧붙일 필요없다는 게 '시'가 주는 선물인 것 같습니다.

심보선 시인은 이렇게 말합니다.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너는 무엇이다' 정의하는, 아까 누구였죠? 여자 주인공이? 아, 아그네스의 언어 '참, 잘생기셨어요'라고 하는 진실의 언어. 거기서 어떤 생각이 들었냐 하면 선생님께서는 사실과 진실을 말씀하셨지만 저한테 중요한 건 행복이거든요. 제가 여기서 행복을 증언하는 당신이라고 얘기했는데, 사실은 그 사장이나 간부들이 그 말을 듣고 중요한 것은 행복해졌다 하는 거고, 그리고 행복한 현실이 만들어졌다는 것 같아요. 그래서 저한테는 '너느 이렇다'가 아니라 '너는 사실 못생겼음에도 불구하고 너는 잘생겼다', 일종의 '그럼에도 불구하고'인 것 같아요. 사실을 넘어서는 행복한 현실을, 사실을 극복하는 행복한 현실을 시가 만들어주는 게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340p)

철학가처럼, 소설가처럼, 시인처럼 멋진 언어로 표현할 수는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는 무척 공감하는 일상의 언어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행복하게 살아야겠다는, 그런 희망 혹은 의지를 갖게 해줍니다.

마지막으로 철학 카페를 통해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건 '해답' 그 자체가 아니라 그 해답을 찾아가는 '나' 자신이 아닐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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