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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 인생의 이야기
테드 창 지음, 김상훈 옮김 / 엘리 / 2016년 10월
평점 :
슈퍼문 같은 책 표지가 멋집니다.
"당신 인생의 이야기"
와우, 평범한 제목조차도 뭔가 기대감을 고조시킵니다.
어쩌면,
"최고의 과학소설 작가 테드 창의 단편 소설 작품집!"이라는 책 소개 문구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도대체 어떤 소설을 쓴 작가이기에 '전 세대를 통틀어 가장 위대한 과학 단편소설 작가 중의 한 명'이라는 명성을 얻은 걸까요?
우선 이 책 속에는 모두 여덟 편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정말 기발한 상상력이 돋보입니다.
바빌론의 탑, 이해, 영으로 나누면, 네 인생의 이야기, 일흔두 글자, 인류 과학의 진화, 지옥은 신의 부재, 외모 지상주의에 관한 소고:다큐멘터리.
그런데 왠지 단편으로 끝난 이야기들이 아직 끝나지 않은 이야기로 느껴져 아쉽습니다. 마치 영화 예고편만 보고 만 듯한 느낌?
그 중 <네 인생의 이야기> Story of Your Life 가 바로 2016년 11월 개봉 예정인 드니 빌뵈브 감독의 <컨택트> Arrival 의 원작이라고 합니다.
여기에서 제목만 주목해보세요.
Story of Your Life 라는 영어제목이 '네 인생의 이야기' 혹은 '당신 인생 이야기'로 번역됩니다.
그리고 영화로 제작될 때는 Arrival 로 바뀌고 우리나라에서 상영될 때는 '컨택트'로 번역됩니다.
내용은 똑같지만 어떤 제목을 붙이느냐에 따라서 느낌이 달라집니다.
작가가 전하고 싶은 메시지와 감독이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같을까요? 또한 책을 읽는 독자와 영화를 보는 관객은 동일한 메시지를 얻을 수 있을까요?
아마도 조금씩 다를 거라고 생각합니다. 완전히 똑같은, 동일한 의미를 전달하기는 불가능할지도 모릅니다.
그런 점에서 작가 테드 창이 선택한 제목은 탁월합니다. 소설은 작가에 의해서 탄생했지만 그 소설을 읽는 사람에 따라서 각기 다른 소설로 받아들여지므로 '당신 인생 이야기'가 됩니다. 이 소설을 읽는 당신과 세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당신들의 이야기가 될 수 있습니다.
앗, 아직 내용을 설명하지 않았는데도 모든 걸 설명한 기분이 드는 건 왜일까요?
신기한 건 제가 여덟 편의 단편 중에서 가장 인상에 남았던 작품이 <네 인생의 이야기>라는 겁니다.
아이를 가진 엄마라면 공감할 이야기!!!
언어학자이자 딸을 가진 엄마인 루이스는 자신의 딸에게, 딸의 인생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그와 동시에 지구에 들이닥친 외계인의 이야기도 함께 들려줍니다.
놀랍게도 외계인이 나타난 시기에 딸은 열두 살이라는 것. 이 점이 놀라운 이유는,
제가 요즘 딸에게 하던 말이 떠올라서 약간 소름 돋았네요. "너 누구니? 어느 별에서 왔니? 외계인같다..."
우리말로 이야기하는데 외계어처럼 전혀 소통이 되지 않을 때의 당혹감과 낯선 느낌이 마치 외계인을 마주한 느낌이어서.
소설에서 묘사된 외계인의 모습은 일곱 개의 가지가 방사상으로 뻗어 있어서 그리스어에서 7을 뜻하는 hepta와 발을 뜻하는 pod를 합쳐 '헵타포드'라고 부릅니다. 절묘하게도 외계인의 충격적 비주얼이 부모가 사춘기 자녀를 대할 때의 심정과 흡사하지 않을까 싶네요. 근래 사춘기 외계인 출현으로 충격을 받고 속수무책이었는데 이 소설을 읽고나니 안심이 됩니다. "외계인과 소통하기!!! 예, 그 아이가 제 딸입니다."
부모로서 아이가 잉태된 순간, 태어나고 성장하는 순간들을 경험할 수 있다는 게 얼마나 신비롭고 놀라운 일인지, 그건 우주만큼 멋진 일입니다.
누군가에게는 SF 과학소설이지만 제게는 인생 다큐멘터리였습니다.
다음은 <네 인생의 이야기>의 첫 대목입니다. 당신에게는 어떤 소설인가요?
네 아버지가 지금 내게 어떤 질문을 하려고 해. 이것은 우리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순간이고, 나는 온 정신을 집중해서 모든 것을 빠짐없이 기억에 새겨두려고 하고 있지. 그이와 나는 밖에서 디너쇼를 보고 방금 돌아온 참이란다. 자정을 넘은 시각, 우리는 보름달을 보기 위해 파티오에 나와 있어. 춤을 추고 싶다고 네 아버지에게 말하자 그이는 쾌히 응했고, 그래서 지금 우리는 서로를 껴안고 춤을 추고 있어. 달빛 아래에서, 십대들처럼, 삼십대의 남녀가 앞뒤로 천천히 몸을 흔들면서. 밤의 한기는 전혀 느껴지지 않아. 이윽고 네 아빠는 이렇게 말해. "아이를 가지고 싶어?"
네 아버지와 나는 결혼한 지 이 년쯤 된 부부이고, 지금은 앨리스 애비뉴에 살고 있어.
... 오늘밤의 이야기, 너를 잉태했던 이 밤의 이야기를 너에게 해주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단다. 하지만 그런 얘기는 네가 너의 아이를 가질 준비가 되었을 때나 할 수 있는 얘기이고, 우리는 결국 그런 기회를 갖지 못하겠지.
그보다 더 이른 시기에 네게 얘기해보아도 아무 소용이 없을 거야.
네 인생의 거의 모든 기간에 걸쳐서, 너는 자리에 가만히 앉아 이렇게 로맨틱한 - 너라면 감성적이라는 표현을 쓰겠지 - 얘기에 귀를 기울이고 싶어하지는 않을 테니까. 나는 네가 열두 살 때 내놓게 될 너의 탄생 시나리오를 기억해.
"엄마가 나를 낳은 이유는 단 하나, 월급 안 줘도 되는 하녀를 들이기 위해서야." 벽장에서 진공청소기를 끌어내면서 너는 쓰디쓴 어조로 이렇게 말하겠지.
...
나는 이 이야기가 어떻게 끝날지 알고 있단다. 자주 그 생각을 해보곤 해. 불과 몇 년 전, 이 이야기가 어떻게 시작되었는지에 관해서도 자주 생각에 잠기곤 하지. 지구 궤도상에 우주선들이 느닷없이 출현하고, 목초지에 인공물들이 나타났던 그때 말이야. 정부는 그 일에 관해 함구하다시피 했어. 싸구려 신문에선 온갖 가능성을 떠들어댔지만.
그러던 중에 전화가 울렸고, 난 회의에 참석해달라는 요청을 받았던 거야. (151p - 153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