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되고 싶지 않다
마르탱 파주 지음, 김주경 옮김 / 열림원 / 2016년 9월
평점 :
절판


"나는 내 삶이 놀랍고, 아름다우며 기묘하기를 바란다.

그런 마음에서 이 책을 썼다." - 작가의 말

<아무도 닮고 싶지 않다>라는 제목처럼 작가는 어떤 책과도 닮지 않은 그런 책을 쓰고 싶다고 말합니다.

역시나 이 책은 기묘한 이야기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전혀 상상 못한 이야기라서 놀랍다기보다는 현실을 교묘하게 뒤틀었다는 점에서 기발하게 느껴집니다.

잠에서 깨어보니 살해당한 피해자가 되어 있는 남자 라파엘의 이야기는 굉장히 억지스러운 설정처럼 보입니다. 경찰이 들이닥쳐서 대뜸 "당신은 살해된 피해자니까 소파와 거실 테이블 사이, 즉 범죄 현장에 누워 있어야 합니다."라고 말합니다. 경찰 말대로라면 라파엘은 죽은 시체인데 살아있는 듯 걸어다니고 말하는 라파엘을 보고도 전혀 놀라지 않습니다. 범죄 현장을 촬영하는 사진사는 한술 더 떠서 '대벌레' 이야기를 해줍니다. 대벌레는 자기 몸을 죽은 나뭇잎이나 나뭇가지로 착각하게 만드는데, 라파엘은 반대로 살아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살아 있지 않다고 말이죠. 그리고 라파엘 손목에 이름과 출생일, 주민등록번호가 적힌 명찰을 매주면서 시체 안치소에서 확인하는 표식이라고 알려줍니다. 경찰과 사진사는 너무나 자연스럽게 시체가 된 라파엘에게 질문하기도 하고 설명도 해줍니다. 이 상황을 납득할 수 없는 사람은 오직 한 사람, 라파엘뿐입니다. 라파엘 자신만 살아 있다고 주장하고 나머지 모든 사람은 라파엘을 범죄 현장의 시체라고 말합니다. 라파엘은 처음에 자신이 살해당했다는 사실조차 믿지 못하지만 경찰과의 대화를 통해서 범인이 왜 자신을 살해했는지 단서를 찾게 됩니다. 경찰은 시체 안치소에서 온 사람들과 통화를 하면서 라파엘에게 범행 도구였던 칼을 건네 줍니다. 칼을 잡게 된 라파엘은 홀로 남겨지고 유리잔과 술병 등이 나뒹구는 거실이 완벽한 범죄 현장이라는 걸 깨닫게 됩니다. 소파와 탁자 사이 바닥에 앉아 있는 라파엘의 눈은 충혈되어 있고 피부는 어둡고 납처럼 챙백해집니다. 죽음을 선고 받은 남자가 진짜로 죽음을 맞이하는 순간은 스스로 죽음을 인정할 때인지도 모릅니다.

"잘 찾아보면 누구나 살해당할 만한 이유를 가지고 있어요. 아, 그렇다고 당신이 다른 사람보다 더 악하다는 뜻은 아닙니다. 살인자가 재판할 자격이 있는 건 아니니까요. 알다시피 아주 선한 사람들도 살해를 당합니다. 성인, 교황, 심지어 아이들도. 예를 들면 간디, 파트리스 루뭄바, 존 레논 같은 사람도 살해됐죠. 그러니 살해당한 건 윤리의 문제가 아니에요." (54p)

인간의 죽음이란 당사자에겐 이토록 황당하고 허망한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아무도 자신이 왜 죽어야 하는지 모르다가 결국 죽고나서야 그 이유가 알게 되는 것이 죽음인지도 모르겠네요. 살아 있어도 죽은 것처럼 보이는 대벌레와는 정반대 입장이 된 라파엘의 이야기. 이 이야기의 제목은 <대벌레의 죽음>입니다. 우리는 지금 죽은 듯이 살아 있나요, 아니면 살아 있는 듯 죽은 건가요?

<아무도 되고 싶지 않다>, <멸종 위기에 처한 남자>, <평생 직장에 어울리는 후보>, <내 집 마련하기>, <벌레가 사라진 도시>, <세계는 살인을 꿈꾼다>

이 모든 이야기들은 상상력이 아닌 상징성으로 바라봐야 할 이야기들이라고 생각합니다. 마치 연극 무대의 부조리극을 본 것 같습니다. 왜곡되고 뒤틀린 세상 속 사람들의 이야기가 오히려 더 현실적으로 느껴지는 요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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