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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에 관한 사소하지만 결정적인 물음 49 - 어디다 대놓고 묻기 애매한
장웅연 지음, 니나킴 그림 / 담앤북스 / 2016년 10월
평점 :
불교에 대해서 뭘 아느냐고 묻는다면 마땅히 답할 게 없습니다.
제가 아는 것이라고는 불교의 가르침을 대신하여 스님들의 책을 읽은 것이 전부일 것 같습니다.
어쩌면 제게 있어서 불교는 신앙이라기 보다는 철학이 아닐까 싶습니다.
잘 모르기 때문에 제 나름대로 해석하고 받아들였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불교의 가르침을 감히 안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마음으로 느끼고 있다고 말할 수는 있을 것 같습니다.
<어디다 대놓고 묻기 애매한 불교에 관한 사소하지만 결정적인 물음 49>은
바로 저와 같은 불교 무식자들을 위해 알맞은 책인 것 같습니다.
이 책은 2015년 <불교신문>에 연재되었던 '불교, 묻고 답하다'라는 컬럼을 다듬은 것이라고 합니다.
불교와 가까워지면서 생길 수 있는 다양한 궁금증들을 알기 쉽게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스님들은 왜 삭발을 하나?
절에서는 왜 새벽 3시에 기상하나?
스님들은 결혼할 수 있나?
목사는 목사이고, 신부는 신부인데, 왜 스님만 '님'자를 붙일까?
부처님은 원래부터 곱슬머리였나?
다소 엉뚱해보이는 질문들도 있지만 그러한 질문들이 오히려 불교에 관한 오해와 잘못된 상식을 풀어가는 기회가 된 것 같습니다.
책 제목처럼 어디다 대놓고 묻기에는 애매하고 사소한 물음들이 불교를 이해하기 위한 결정적인 내용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특히 불교를 뒤늦게 공부하게 된 어느 지인의 질문이 불교 입문자다운 궁금증인 것 같아 소개합니다.
"조사선에 따르면 삼라만상이 원래부터 청정하고 완전한 존재, 즉 '본래 부처'라고 강조한다.
그렇다면 이미 부처인데 부처가 되기 위해 수행을 해야 한다는 말은 모순이지 않은가?"
사실 불교에서 말하는 깨달음과 수행의 불편한 관계는 오래전부터 제기되었다고 합니다.
돈오돈수( 頓悟頓修 )와 돈오점수( 頓悟漸修 ) 의 논쟁.
돈오돈수는 단박에 깨쳐서 더 이상 수행할 것이 없는 경지를 이르는 말입니다.
돈오(頓悟), 즉 문득 깨달음에 이르는 경지에 이르기까지에는 반드시 점진적 수행단계인 점수가 따른다는 말입니다.
이 논쟁의 핵심은 '깨달은 후에도 수행이 필요한가'라는 문제입니다.
불교학계의 보편적인 이론으로 자리한 고려시대 보조 지눌 스님의 돈오점수를,
전 조계종 종정 성철 스님이 지해(知解 ), 곧 불완전한 깨달음이라고 비판하면서 논란이 촉발됐다고 합니다.
이에 대해서 저자의 답변은 역사적 배경을 통해 설명하고 조계종 광전 스님의 말씀으로 마무리합니다.
"점수에 치우쳐 시비를 일삼는 사람에겐 돈頓을 이야기해 분별을 없애고,
본래 부처이거늘 무슨 수행이 더 필요할 것인가 하는 사람에겐 점漸을 이야기해 아만我慢을 없애야 한다."
매우 공감이 되는 답변입니다.
종교를 통해 자신의 인생을 변화시키지도 못하면서 종교의 이론을 갖고 왈가왈부한다는 게 어불성설입니다.
잘못된 것은 고치는 것이 옳지만 논쟁에 치우쳐서 종교의 본질을 놓쳐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유독 우리나라에 사이비 교주가 많은 것을 보면 확실히 돈오돈수는 아닌 것 같습니다.
진정한 깨달음이란 '내가 부처이니 천상천하유아독존'이 아니라 '내가 부처인 만큼 남도 부처'라는 것을 아는 것이 아닐까.
종교는 세상을 밝히는 도구일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