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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내어 읽는 즐거움 - 삶을 바꾸는 우리말 낭독의 힘
정여울 지음 / 홍익 / 2016년 10월
평점 :
품절
낭독이라니요.
누구 앞에서 낭독을 하나요.
관객은 딱 한 명만 있어도 된다구요.
그게 누구죠.
아, 저 말인가요.
혼자서 소리 내어 읽어도 '낭독'이라구요.
제 목소리는 그리 좋은 편이 아니라서요.
뭐, 다른 사람도 아니고 제가 제 목소리를 듣는 거니까 괜찮을 것도 같네요.
<소리내어 읽는 즐거움>은 정여울 작가님이 추천하는 '좋은 글 소리내어 읽기'를 위한 책입니다.
"우리가 좋은 작품을 소리내어 낭독할 때마다, 다른 누구보다도 우선 자기 자신에게 그 작품을 읽어주고 있는 것이다.
....나 혼자만으로도 나를 다독이고, 내 아픔을 치유할 수 있는
세상에서 가장 간소한 심리테라피 방법, 그것이 바로 좋은 글 소리내어 읽기이다." (프롤로그 중에서)
매일 수백 마디, 수천 마디의 말을 합니다만
제 목소리를 신경쓴 적은 거의 없는 것 같습니다. 제 목소리에 귀기울인 적도 없는 것 같습니다.
소리내어 말하는 것은 상대방에게 전달하기 위한 것이지, 제가 듣기 위한 게 아니니까요.
그런데 이 책은, 소리내어 읽어주었습니다. 제 자신을 위해서.
물론 처음부터 끝까지 소리내어 읽지는 못했습니다. 삼십여 분가량 소리내어 읽다가 다음 내용이 궁금하여 눈으로 읽었습니다.
그러고나니 알 것 같습니다.
소리내어 읽는 것이 눈으로 읽는 것과 무엇이 다른지.
저벅저벅 걸어가는 길과 자전거를 타고 가는 길이랄까. 쌩하니 달리는 자동차와 비교하기엔 속독이 아닌지라.
너무나 오랜만에 소리내어 읽어보니, 아이가 걸음마를 하듯 단어 하나하나 조심스럽게 정성을 들여 읽게 됩니다.
평범한 단어조차도 소리내는 순간, 낯설면서도 특별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열매 속에서였다"라는 문장을 눈으로 볼 때는 '열매'에 초점이 가지만 소리를 낼 때는 마지막 음절인 '였다'[엿따]가 귓가를 울립니다.
본디 글의 주인은 따로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시는 시인의 것, 소설은 소설가의 것, 수필은 수필가의 것...
그 글을 읽는 저는 조용한 구경꾼이었습니다.
그런데 소리내어 읽는 순간, 마법 같은 일이 벌어졌습니다. 오롯이 제 것 같은 느낌을 받았습니다. 저를 위한 선물처럼.
김선태 시인의 <마음에 들다> 라는 시를 빌려 표현하자면 이 책 속에 아름다운 문장들이 저를 위해서 "온전히 스미도록 마음의 안방을 내어주는 일"을 했습니다.
소리내어 읽는 순간 성큼성큼 문지방을 넘어 안방으로 들어가 집주인이 되는 것을.
그걸 몰라 마당만 서성댔네요.
인제부터라도 마음껏 문지방을 넘어볼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