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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배를 든 루스 - 제7회 중앙장편문학상 수상작
이지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16년 6월
평점 :
품절
이름, 그것은 껍데기입니다. 우리가 신경써야 할 건 알맹이.
<담배를 든 루스>라는 제목을 보면 루스가 주인공이겠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이 소설에서는 맞기도 하고 아니기도 합니다.
"안녕. 나는 리타, 리즈 유리 혹은 루스라고 해.
네 이름은 뭐니?
베개는 답이 없었고 그제야 나는 안심했다." (303p)
프롤로그를 보면서 평범하지 않은 이야기라는 걸 짐작했습니다. 주인공 '나'는 거울을 보고 있습니다. 언제나 오늘이 되면 '나'는 오늘의 외출용 얼굴을 씁니다.
그래서 '나'는 어떤 이름으로 불리든지 전혀 상관이 없습니다. 그녀는 대학생이지만 등록금 때문에 알바를 합니다. 실체는 술집이지만 '날씨 연구소'라는 이름을 가진 곳에서 '나'에게 지어준 별명은 여러 개입니다. 언제나 리즈 시절이고 싶다는 염원을 담은 '리즈', 종아리가 예쁘다고 '아리', 단골인 요키 상이 부르는 '유키', 난쟁이 형제는 마네키네코처럼 끄덕끄덕 답을 잘한다고 해서 '네코' 등등. 날씨연구소에서는 손님이 원하는 이름으로 불릴 준비를 하고 있어야 합니다.
여기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저마다 머리 위에 자기만의 뭔가를 이고 있다고 '나'는 말합니다. 연필깎이나 말라비틀어진 귤껍질 혹은 휴지 등등. '나'의 머리 위에는 어떤 사물이 떠 있을까요? 어쩌면 잃어버린 베개가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날씨 연구소'에 면접보던 날, 문득 머리 밑이 허전했던 게 기억났고 베개가 사라졌다는 걸 알아차렸기 때문입니다.
도대체 주인공 '나'가 사는 세상은 어떤 세상일까요? '날씨 연구소'만큼이나 비현실적인 장소가 '나'의 집입니다. 방의 층고가 163센티미터여서 키가 똑같은 '나'는 제대로 일어설 수 없습니다. 더군다나 햇빛이 안드는 지하방이라서 곰팡이와 동거중입니다. 굳이 이 집의 장점을 찾으라면 세상과 더 친해진다고 해야 하나. 종일 앉아 있거나 누워 있기 힘드니까 눈 뜨면 나가게 됩니다. 그날도 밖으로 나갔는데 비가 왔습니다. 도처에 검은 우산이 펼쳐져 있었습니다. 빗 속에서 각자 자신의 천장을 지고 걸어가는 사람들을 보면서 '나'는 평등을 맛보았습니다. 하지만 그 평등은 실제가 아닌 감상 속에 존재할뿐. 바로 그때였습니다. 저 멀리 뒤뚱거리며 달려가는 베개를 본 것이. 그리고 전철역에 붙여진 전단지를 봤습니다. < 날씨연구소 연구원 모집 / 입이 없는 사람 우대 by 웨더맨 >
날씨연구소의 사장, 웨더맨은 이런 말을 했습니다.
"날씨는 사실, 모든 걸 순식간에 똑같게 만들어준단 말이지. 너무 춥거나 더우면 나쁜 생각도 들지 않아. 우리가 여기 같이 폭설에 갇혔다고 생각해봐. 그거야말로 평등한 세상이지. 안 그래?" (24p)
글쎄, 웨더맨은 너무 이상주의자가 아닌가 싶습니다. 어차피 그는 평등과는 거리가 먼 사장이고, '나'는 그 곳에서 일하는 알바생이니까.
이 소설 속에서 '나'는 현실의 고단함이 그대로 느껴지는 인물입니다. 그래서 희한하고 다소 기괴해보이는 상황 속에서 가장 현실적인 존재로 보입니다. 아무리 이름은 껍데기일 뿐이라고는 해도 문어, 순수언니, 다다, 런더너, 라푼젤, 난쟁이 형제로 불리는 사람을 상상하기는 쉽지 않으니까요. '담배를 든 루스'는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힘들고 지쳐서 한숨을 내쉬고 있는 누군가 혹은 모두일 거라고 상상해봅니다.
'나'는 더 불행해지고 싶지 않을 때면 사진을 찍습니다. 액정 속의 풍경과 사물은, 언제나 현실보다 더 아름다워서. 반면 좀더 불행해지고 싶을 땐 드로잉을 합니다. 드로잉을 통해 만들어진 세상은 더 어두우니까요. 그 어떤 선택을 하든 '나'가 진짜 살아가야 하는 현실은 변하지 않습니다. 그저 행복과 불행이라는 줄다리기를 할 뿐. 그 사이에서 버티다가 한쪽으로 확 당겨지는 순간이 삶의 마지막이 아닐런지.
마지막에 주인공 '나'는 잃어버린 베개를 대신하여 새 베개를 삽니다. 마음의 위안이 되었던, 오직 '나'를 위해 존재하는 새로운 베개를 선택함으로써 '나'는 아주 깊이, 즐거운 잠에 빠져듭니다. 저야말로 이 소설이 한낮의 꿈처럼 느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