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신의 이름은 자비입니다 - 프란치스코 교황과의 대화
프란치스코 교황.안드레아 토르니엘리 지음, 국춘심 옮김 / 북라이프 / 2016년 3월
평점 :
절판
이 책은 바티칸 전문기자인 안드레아 토르니엘리가 프란치스코 교황과의 대담을 기록한 것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2015년 3월에, 자비의 특별희년을 선포합니다. 자비의 희년이란 가톨릭에서 신도들에게 특별한 은혜를 베푸는 성스러운 해를 말합니다.
희년은 25년을 주기로 하는 정기희년과 교황의 권한으로 선포하는 특별희년이 있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선포한 자비의 특별희년은 2015년 12월 8일에 시작하여 2016년 11월 20일에 끝납니다.
'자비'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이자 교황직의 핵심 가치입니다.
안드레아 토르니엘리는 자비의 희년을 맞이하여 프란치스코 교황에게 직접 '자비와 용서'에 관한 질문들을 던집니다.
저는 이 책을 단순히 읽는 것만으로 그 의미를 제대로 이해했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솔직히 말하자면 온전히 이해하기에는 시간이 좀 걸릴 것 같습니다.
교황직무가 시작되고 몇 달 지나지 않은 2013년 7월 세계 청년대회가 열렸던 리우데자이네이로에서 돌아오는 여행 중에 이미 "우리 시대는 자비의 시대"라는 말씀을 하셨다고 합니다. 이 내용을 다시 질문했을 때의 답변입니다.
"교회는 상처받은 인류에게 그 모성적인 얼굴을, 엄마로서의 얼굴을 보여줍니다. 상처 받은 이들이 교회의 문을 두드리기를 기다리지 않고 거리로 그들을 찾아 나서서 그들을 모아 들이고 그들을 품어 안으며 그들을 돌보고 그들이 사랑받고 있음을 느끼게 해줍니다. 그때 저는 이 시대가 카이로스라고, 우리 시대는 자비의 카이로스요, 좋은 기회가 되는 시대라고 말했었고 점점 더 그것을 확신하게 됩니다.' (33p)
그리스어에서 '때'를 나타내는 말로 '크로노스'와 '카이로스'가 있는데, '크로노스'는 해가 뜨고 지는 시간, 지구의 공전과 자전을 통해 결정되는 일반적인 시간, 즉 태어나고 늙고 병들고 죽는 인류 역사의 연대기적 시간을 뜻합니다. '카이로스'는 의식적이고 주관적인 시간으로, 인생을 좌우하는 결정적 기회의 시간이며, 결단의 시간, 곧 은총의 시간을 뜻합니다.
그리고 '비참함'과 '자비'에 대하여 몬띠니 교황의 말씀을 인용합니다. "비참함은 저의 것이고 자비는 하느님의 것입니다. 제가 당신의 지극히 감미로운 자비를 부르고, 받아들이고, 거행하면서 적어도 한없이 선하신 하느님이신 당신이 누구신지를 기릴 수 있기를." (34p)
또한 베네딕도 16세 교황님의 말씀으로 설명합니다. "자비는 실제로 복음 메시지의 핵심입니다. 자비는 하느님의 이름 자체입니다. 하느님께서 구약에서 자신을 계시하실 때, 또 창조주요 구세주이신 사랑이 육화하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충만하게 드러나실 때의 그분의 얼굴입니다. 이 자비의 사랑은 교회의 얼굴도 비추어 주며, 성사들을 통해서도, 특히 화해의 성사를 통해서도 나타나고, 공동체적 개인적 애덕 활동을 통해서도 나타납니다. 교회가 말하고 행하는 모든 것은 하느님께서 인간을 위해 품고 계신 자비를 드러내지요." (35p)
이렇듯 프란치스코 교황은 선임 교황들의 가르침과 증거들을 생각하면서 야전병원으로서의 교회를 생각하면서 이 결정이 내려졌다고 이야기합니다.
야전병원에서는 무엇보다도 먼저 가장 심한 상처부터 치료하듯이, 가까이 머물고 곁에 있으면서 사람들의 마음을 뜨겁게 하는 교회가 되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여러 질문 중에서 유독 눈에 띄는 것이 동성애자에 대한 내용입니다. 이전에 동성애자인 사람들에게 고해성사를 준 경험에 대하여 그들을 소외시켜서는 안 된다고 말합니다. 사람은 그의 성적 경향으로만 규정되지는 않는다, 우리 모두는 하느님께 사랑받는 피조물이며 무한한 사랑의 대상이라는 것을 잊지 말라고 당부합니다. 따라서 동성애자인 사람들이 고해성사를 보러 오는 것은 주님 가까이 머무는 것이며 함께 기도할 수 있어서 좋다고 이야기합니다. 사람을 그 자체로 받아들인다는 것이 인상적입니다.
종교라는 이름으로 얼마나 많은 전쟁이 일어났는지를 생각한다면 교황이 말하고 실천하는 자비는 매우 큰 의미를 지닙니다.
하느님의 자비를 전부 이해할 수 없다해도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왜 자비가 필요한지는 알 것 같습니다. 자비의 활동들을 통해서 인류의 희망을 찾을 수 있을 거라고 믿습니다. 우리는 지금, 자비의 희년을 살고 있다는 걸 잊지 말아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