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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음으로 둘러싸인 세상에서의 침묵
틱낫한 지음, 류재춘 옮김 / 프런티어 / 2016년 5월
평점 :
절판
어느날 싱크대 찬장을 보니 문이 살짝 열려 있어서 문을 열었습니다.
순간 유리컵이 다른 물건과 함께 바닥으로 떨어졌습니다.
쨍그랑...
설거지하면서도 컵을 깬 적이 없는데, 이게 무슨 날벼락이람.
투덜거리면서 깨진 유리컵 조각을 치웠습니다.
그리고 얼마 뒤 발바닥이 따끔거려서 살펴보니 정말 눈곱만한 유리조각이 맨살에 박혀 피가 났습니다.
처음에는 화가 나고 짜증이 났습니다. 누가 찬장에 유리컵을 위험하게 놔둔 건지... 그 누군가를 향해 화를 냈습니다.
하지만 마음을 가라앉히고 바닥에 남은 유리조각이 없는지 꼼꼼하게 치웠습니다.
이미 깨진 유리컵을 제대로 치우지 않아서 발에 찔린 건 전적으로 제 책임이었습니다.
살다보면 이런 소소한 일부터 중요한 일들까지 마음을 흔들어대는 일들이 많습니다.
무엇이 나를 화나게 만드는지, 무엇이 나의 마음을 괴롭히는지......
스스로 그 답을 찾다보면 오히려 마음이 차분해지면서 그토록 화났던 일도, 괴로웠던 일도 괜찮아지는 순간이 옵니다.
틱낫한 스님은 제가 존경하는 정신적인 스승입니다.
이 분의 책을 읽다보면 저절로 마음이 평화로워집니다.
울음을 터뜨린 아기를 달래는 방법은 우선 가슴에 품어 꼬옥 안아주는 일입니다. 저는 이 책을 읽으면서 따뜻한 포옹, 위로를 받았습니다.
<소음으로 둘러싸인 세상에서의 침묵>은 우리를 행복으로 이끄는 수행입니다.
틱낫한 스님은 우리에게 '깨어 있는 마음(mindfulness)'이란 내면의 소음을 잠재우고 고요해지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깨어 있는 마음으로 숨을 쉬면 호흡 그 자체에만 집중하게 되면서 마음 속의 온갖 소리들을 모두 잠재울 수 있습니다. 그 순간 살아 있고 숨을 쉬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으면서 자신의 존재를 느끼게 됩니다. 그러면 내면의 소음이 사라지고 깊고 넓은 침묵의 자리가 생깁니다. 불교에서는 이러한 내면의 침묵을 '우레와 같은 침묵'이라고 합니다.
'우레와 같은 침묵'을 경험하려면 진정으로 홀로 있는 순간이 필요합니다. 그러면 타인과의 관계나 소통에서도 억지로 말을 할 필요가 없어집니다.
고요함 속에서 함께 있을 때 행복도 커진다고 합니다. 깨어 있는 마음을 유지하면 감정적으로 방황하지 않으면서 다른 사람들과 함께 있는 것을 즐길 수 있습니다.
틱낫한 스님은 자신과 세상을 치유하는 일은 깨어 있는 마음으로 걷거나 호흡할 때마다 일어난다고 말합니다. 또한 치유를 일으키는 침묵은 누구와도 함께 할 수 있다고 합니다. 뭔가를 끊임없이 하려다보니 마음이 어지러워집니다. 행동하지 않는 것도 행동하는 것입니다. 서로에게 줄 수 있는 가장 소중한 것은 나라는 존재입니다. 존재만으로도 세상의 행복에 중대한 기여를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가끔 앉아서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면 그 순간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 됩니다.
책 속에서 매우 인상적인 이야기가 나옵니다.
틱낫한 스님이 1947년 베트남 후에 시의 바오꾸옥 사원 불교 연구소의 학생으로 지내던 시절의 일입니다. 바오꾸옥 사원은 틱낫한 스님이 출가한 사찰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었습니다. 당시에 프랑스 군대가 후에 시에 주둔하고 있었습니다. 바오꾸옥 사원을 떠나 출가 사찰을 방문하려고 길을 나서는데 프랑스 군인이 쫓아왔습니다. 그는 잠시 이야기를 나누자고 했습니다. 열흘 전 다섯 명의 군인들과 함께 바오꾸옥 사원에 찾아갔던 일을 말해주었습니다. 한밤중에 베트남 저항군이 모인다는 첩보를 듣고 수색하러 간 것이라 베트민을 체포하고 필요하면 사살하라는 명령을 받았다고 합니다. 바오꾸옥 사원 안은 등잔불이 매우 어두운데다가 놀라울 정도로 조용했다고 합니다. 그들이 비어 있는 방인 줄 알고 손전등을 켜보니 그 방 안에는 오십 명에서 육십 명의 승려들이 가만히 앉아서 조용히 명상을 하고 있었습니다. 스님들은 대답하는 소리도 내지 않았고 당황하거나 두려워하는 기색 없이 자신들의 명상 수행을 계속하고 있었습니다. 군인들이 마당에서 삼십 분쯤 기다리고 있는데 갑자기 종소리가 연달아 나면서 한 스님이 횃불을 밝히고 와서 그들을 안으로 안내했다고 합니다. 프랑스 군인은 스님들의 침묵에 마음이 끌렸고 진심으로 존경하는 마음이 생겼다고 합니다. 그날 이후로 베트남 국민들에 대한 생각이 바뀌었고 자신이 왜 베트민들과 싸우기 위해 이곳까지 왔는지 의문이 들었다고 합니다.
저 역시 이 부분에서 깊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전쟁 중에 벌어진 긴박한 상황에서 스님들은 침묵을 통해 프랑스 군인에게 고요한 평화를 전해준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틱낫한 스님이 승려가 된 뒤에 처음 배운 구절을 마음에 새기며 깨어 있는 마음을 가지겠습니다.
"아침에 잠에서 깨면 나는 웃습니다.
새로운 스물네 시간이 내 앞에 놓여 있습니다.
나는 온전히 그 시간을 보내며
자비의 눈으로 세상을 보는 법을 배우기로 약속합니다." (154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