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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연당 사진관
오지혜 지음 / 마카롱 / 2016년 2월
평점 :
품절
일제 시대를 배경으로 한 이야기는 왠지 꺼려집니다. 암울한 시대인지라......
그런데 <천연당 사진관>은 화사한 책 표지에 끌려 읽고 말았습니다.
조선 최초의 여자 사진사 이야기.
주인공 안나는 어린 시절 일본인들에게 부모님을 잃고 오빠와 함께 악착같이 살아갑니다. 안나는 걸걸한 목소리에 남장까지 하고 기생집을 드나들며 장돌뱅이마냥 물건을 팔아 돈을 벌고 있습니다. 오빠에게 맞아가며 일본어도 배우고, 영어도 대충 할 줄 알아서 책방을 찾는 외국인을 위해 책 번역 일까지 합니다. 돈이 되는 일이라면 물불 가리지 않고 달려들고 사내처럼 거칠게 살아가는 안나에게 특별한 인연이 찾아듭니다.
어느날 우연히 일본인 가게에서 물건을 훔치는 안나를, 재원이 보게 됩니다. 그때 모른 척하지만 다시 책방에서 만났을 때는 '못믿을 사람'이라며 무시를 칩니다.
재원은 영국인 베델이 발행하는 <대한매일신보>에서 일하는 기자입니다. 안나는 자신을 인간취급하지 않는 재원에게 기죽지않고 들이대며 일거리를 구합니다.
안나의 오빠는 오로지 살아남기 위해 이름을 텐신이라고 바꾸고 일본인 사진사 밑에서 일을 합니다.
평길이라는 이름으로 왕자 신분을 숨긴채 다니는 의친왕 이강은 책방에 드나드는 안나를 눈여겨봅니다. 비록 소설이지만 사람의 인연이란 참으로 묘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전까지 서로 모르던 사람들이 한순간 알게 되고, 마음을 나누게 된다는 것이 신기하고 놀랍습니다. 한 번 맺은 인연은 쉽게 끊을 수 없다는 것도.
소설 곳곳에서 일본에 의해 무참히 짓밟히는 조선의 모습을 보고 있자면 가슴 속에 울분이 솟구칩니다. 하지만 안나를 보면 힘들고 괴로운 상황에서도 웃음이 납니다. 어찌 그리도 맑을 수 있을까. 먹고 살기 위해 잔꾀를 쓰고 허풍을 쳐가며 아둥바둥대는 모습이 안쓰러우면서도 귀엽기까지 합니다. 누굴 해치는 나쁜 짓이 아니라 생계를 위한 귀여운 속임수라고 해야 될까.
이 소설의 원제목은 <1907년>이었다고 합니다.
1907년 4월 신민회가 창립되고, 5월에는 이완용 내각이 이토 히로부미의 건의를 받아 성립됩니다.
그리고 6월 우리 역사상 기억해야 할 헤이그 특사 사건이 있습니다. 이 사건으로 7월 고종황제가 강제 퇴위를 당하고 일본에 의해 대한제국 군대 해산령이 내려집니다.
서화가 해강 김규진 선생이 천연당 사진관을 개관한 것은 1907년 8월의 일입니다. 당시 조선에는 일본인 사진사뿐이었는데 한국인 최초로 사진관을 연 것입니다. 그곳에 사진교육생을 모집하고 여성사진사를 두어 여성 사진을 찍을 수 있게 됩니다.
지나간 역사를 바꿀 수는 없습니다. 다만 그 역사 속에서 잠시 상상의 나래를 펴볼 수는 있습니다. 만약 이런 인물이 있었다면, 이런 일들이 있었다면 어땠을까.
저는 이 책을 읽고 드라마를 보듯이 꿈을 꿨습니다. 천연당 사진관에서 사진을 찍고 있는 안나, 그녀를 바라보는 재원과 이강.
그리고 한국 근현대사를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이완용을 비롯한 친일파들을 역사의 심판대에 올리지 못한 것이 너무도 부끄러운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