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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물처럼 내게 밀려오라
이정하 지음 / 문이당 / 2016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너의 모습
- 이정하
산이 가까워질수록
산을 모르겠다.
네가 가까워질수록
너를 모르겠다.
멀리 있어야 산의 모습이 또렷하고
떠나고 나서야 네 모습이 또렷하니
어쩌란 말이냐, 이미 지나쳐 온 길인데.
다시 돌아가기엔 너무 먼 길인데.
벗은 줄 알았더니
지금까지 끌고 온 줄이야.
산그늘이 깊듯
네가 남긴 그늘도 깊네.
비 오는 날처럼 마음이 촉촉해집니다.
시를 읽으면 늘 그랬습니다.
<너는 물처럼 내게 밀려오라>는 시인 이정하님의 시·산문집입니다.
시와 시로 못다한 이야기를 엮으며 시인은 '나는 다시 스무 살이 되고 싶다'고 말합니다.
우리 인생에서 가장 아름답고 찬란한 때가 언제일까요.
스무 살.....
그건 숫자상의 나이가 아닌, 풋풋한 사랑의 상징처럼 다가옵니다. 혹은 이루지 못한, 이룰 수 없었던 사랑일 수도 있습니다.
누군가를 사랑할 때는 시를 쓰지 않아도 시인의 마음이 되어 사랑을 노래하고 싶어집니다. 그리고 이별할 때도 시를 쓰지 않아도 그 마음은 이미 한 편의 시가 되어버립니다. 그래서 시인은 사랑 없이는 단 한 순간도 살 수 없는 사람이 아닐까 싶습니다. 사랑은 세상을 온통 그대, 오직 그 사람으로 물들게 합니다. 하늘과 바람과 구름과 별을 노래하게 합니다. 마음 한 켠에 사랑이 자리잡는 순간 삶의 모든 것이 달라집니다. 사랑을 처음 느낀 그때를, 우리 인생의 스무 살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달콤했던 스무 살의 사랑이 쓰라린 상처를 남길 때, 우리 인생은 한 살 한 살 나이를 먹습니다.
'사랑은 깊어질수록 가혹한 형벌'이라고.....
'산다는 것은 이렇게 슬픔을 녹여 가는 것'이라고.....
'보내고 나서야 흐드러지게 피어나는 저 가슴 아픈 사랑을.'
이정하 시인은 후회하며, 부끄러워하며 다시 그때로 돌아가 새로 시작하고 싶다고 말합니다. 그것은 소망이 아닙니다. 가슴에 간직한 그리움입니다. 돌이킬 수 없는 걸 알기 때문에 하염없이 그리워하는 것입니다. 뜨겁게 사랑했던 나를 잊지 않으려는 의지입니다. 사랑한 것을 후회하는 것이 아니라 더 뜨겁게 사랑하지 않은 것을 후회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시인이 노래하는 사랑을 가볍다고 말합니다. 삶의 무게가 사랑보다 더 무겁다고. 하지만 그렇게 말하는 사람은 진정한 사랑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는 사람입니다. 사랑은 삶과 저울질 할 수 있는 별개의 것이 아닙니다. 사랑에 빠진 사람은 그 속에 빠져 죽어도 좋을 만큼 간절합니다. 그것이 사랑입니다.
<낮은 곳으로>라는 시의 마지막 구절 - '잠겨 죽어도 좋으니 너는 물처럼 내게 밀려오라.'- 을 자꾸만 읊조려봅니다. 시를 읽을 수 있어서 행복했습니다. 사랑에 젖어들고 시 속에 빠져들 수 있어서 기뻤습니다. 살아있구나, 사랑이 있구나,라고 느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