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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 온 더 트레인
폴라 호킨스 지음, 이영아 옮김 / 북폴리오 / 2015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소설의 주인공은 당당하고 멋졌으면 좋겠다. 그저 소설일뿐이지만 읽는 순간만큼은 소설 속 주인공의 입장이 되기 때문이다.
<걸 온 더 트레인>의 주인공 레이첼은 서른네 살의 이혼녀이다. 이혼 후 그녀는 알코올 중독 증세로 회사에서 잘렸고 지금은 친구 캐시 집에 얹혀 살고 있다. 캐시에게는 차마 자신의 해고 사실을 말하지 못하고, 매일 출근하는 척 통근 기차를 탄다. 기차는 매일 정해진 구역에서 정차를 하고 레이첼은 창 밖으로 보이는 블레넘 로 15호를 관찰한다. 기찻길 옆의 집을 관찰한 것이 우연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사실 레이첼은 블레넘 로 23호에서 살았었다. 이혼하기 전까지는. 지금은 전남편과 애니, 그들의 딸 에비가 살고 있다. 한때는 자신의 남편과 살았던 집을, 일부러 보지 않으려고 애쓰다가 눈에 띈 집이 블레넘 로 15호인 것이다. 그 집에는 잘생긴 남자와 예쁜 여자가 살고 있는데 누가봐도 잘 어울리는 한 쌍의 부부다. 그래서 레이첼은 그 부부에게 상상의 이름인 제스와 제이슨이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불행의 늪에 빠져 허우적대는 레이첼에게 그나마 위안을 주는 건 술과 블레넘 로 15호를 관찰하는 것이다. 마치 TV나 영화를 보면서 대리만족을 하듯이 레이첼에게 제스와 제이슨의 모습은 완벽하고 이상적인 부부의 모습이다.
그런데 어느날 제스가 낯선 남자와 키스하는 장면을 목격한다. 바로 그 순간, 레이첼은 배신감을 느낀다. 마치 자신의 일처럼.
레이첼의 남편 톰은 아이를 원했지만 레이첼은 임신할 수 없었고, 그로 인해 레이첼은 우울증과 알코올 중독 증세를 겪었다. 그때 톰은 애나와 바람을 폈고, 레이첼에게 발각되자 오히려 당당하게 이혼을 요구했다. 돈이 없었던 레이첼은 황당하게도 살던 집에서 쫓겨나는 신세가 된 것이다. 사실 레이첼에게는 치명적인 문제가 있다. 단기 기억상실증. 톰은 그 때문에 자신이 겪는 곤란한 상황에 대해서 자주 화를 냈고 레이첼은 기억할 수 없는 자신의 말과 행동에 대해 죄책감을 느껴야 했다. 그래서 이혼을 당할 때에도 아무런 대응을 하지 못했던 것이다.
가엾은 레이첼.
살해당한 여성에게는 미안한 일이지만 레이첼은 죽은 희생자보다 더 불쌍하다. 어쩌다가 그녀의 인생이 이토록 망가진 것일까.
<걸 온 더 트레인>은 우연을 가장한 필연이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놀라운 소설이다. 아무도 짐작할 수 없는 진실이 밝혀지는 순간, 소름이 돋을 것이다. 소설의 마지막 부분을 읽으면서 매일 기차를 타는 여인과 기찻길 옆 집이 매우 상징적인 장치였음을 깨닫게 된다. 아마도 소설 속 레이첼은 더이상 기차를 타지 않겠지만 현실에서는 여전히 기차를 타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부디 자신의 행복을 기찻길 옆에 던지지 말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