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어 남자
칼요한 발그렌 지음, 최세진 옮김 / 현대문학 / 2015년 3월
평점 :
절판


인어 남자.

기묘한 상상을 불러일으킨다. 아마도 그 때문에 이 책이 끌렸던 것 같다.

'인어'라는 단어는 동화 '인어공주'를 떠올리게 한다. 덴마크 작가 안데르센의 동화.

어린이들을 위한 동화는 늘 해피엔딩인데, 인어공주의 결말은 비극적이다. 애초부터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었기 때문에 더 슬프다. 물거품이 된 인어공주의 슬픔을 이해할 수 있는 어린이가 있을까. 그러나 결국 살다보면 누구나 인어공주와 같은 비극이 현실이 될 수 있다는 걸 알게 된다.

<인어 남자>는 스웨덴 작가 칼요한 발그렌의 소설이다. 신비로운 인어 남자의 등장을 기대하며 책을 펼쳤는데 예상치 못한 이야기의 전개가 너무 충격적이다.

열여섯 살 소녀 넬라의 독백으로 소설은 시작된다.

"시작도 없고 끝도 없다. 이제는 안다.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는 어딘가로 흘러갈지 모르지만 내 이야기는 그렇지 않다. 제자리를 빙빙 도는 것 같다. 때로는 그조차도 아니고, 그냥 한곳에 가만히 멈춰 있기만 할 때도 있다. 그래서 나는 궁금하다. 하나의 이야기가 계속 반복될 때 당신이라면 어떻게 하겠는가?" (7p)

교도소에 수감 중인 아빠와 알콜중독인 엄마, 학교에서 심한 왕따를 당하는 남동생 로베르트가 넬라의 가족들이다. 넬라와 동급생인 예라르드는 졸개들을 거느린 두목처럼 구는 남자애다. 책을 읽는 내내 가슴이 답답하고 울화통이 터지는 느낌이 든 건 전부 예라르드 때문이다. 예라르드는 단순히 문제학생, 불량아로 보기에는 사이코패스 경향이 다분하다. 어떻게 잔인한 짓을 저지르면서도 시종일관 차분할 수 있는지 이해할 수 없다. 예라르드를 쫓아다니는 페데르와 올가는 충실한 졸개노릇을 하는 애들이다. 당하는 입장에서는 모두 똑같이 나쁜 녀석들이다. 화가 나는 건 예라르드가 로베르트와 넬라를 끊임없이 괴롭히는데 도와줄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사실이다.

학교 아이들은 예라르드의 나쁜 짓을 알면서도 모른 척 한다. 오히려 가난하고 연약한 넬라와 로베르트를 전염병환자처럼 피하기만 한다. 학교 선생님은 문제가 생기면 언제든지 자신을 찾아오라고 말하지만 넬라는 그 말을 믿지 않는다. 아무도 그들을 도와주지 않았으니까.

소설이라는 걸 알고 있으면서도 불쑥 분노가 치밀어올라 가슴을 대신 쿵쿵 칠 수밖에 없었다. 넬라가 로베르트에게 이야기를 만들어 들려주는 건 비참한 현실을 견디는 하나의 방법이다. 넬라의 진짜 이름은 페트로넬라인데, 별명을 넬라로 정한 건 쐐기풀을 넬라라고 부르기 때문이다. 자기 피부가 쐐기풀처럼 다른 이들을 찌르기 때문에 사람들이 자신을 피하는 거라고 믿고 있다. 넬라가 친하게 지내는 사람은 같은 반 친구 토뮈와 넬라가 교수라고 부르는 사람, 그리고 두 살 어린 로베르트뿐이다. 아니, 실제로 친한 사람은 동생뿐인지도 모른다. 넬라는 로베르토에게 늘 누군가 자신들을 구하러 올거라고 이야기해주었지만 그걸 진짜로 믿는지는 알 수 없다. 그 믿음이 실현되기 위해서는 많은 사람이 달라져야 할 것이다. 나를 포함해서.

1983년 스웨덴의 팔켄베리 외곽에 있는 조그마한 마을 스콕스토르프.

과연 이 곳에서 어떤 이야기가 펼쳐질까? 말할 수 없다. 그건 이 책을 펼치는 사람의 특권이니까.

대신 넬라의 질문에 답해주고 싶다. 만약 하나의 이야기가 계속 반복된다면 내가 먼저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낼 것이다. 남들이 만든 이야기에 끌려가는 일은 더이상 없을 것이다. 우리는 충분히 오늘을 자기 뜻대로 살 자격이 있다. 부디 넬라와 로베르트에게도 희망이 함께 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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