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첫 필사노트 : 메밀꽃 필 무렵 / 날개 / 봄봄 필사하며 읽는 한국현대문학 시리즈 1
이효석.이상.김유정 지음 / 새봄출판사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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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글씨체를 잊고 지냈던 것 같다.

펜을 들고 적는 일이 별로 없어서일 것이다.

새삼스럽게 하얀 종이 위에 적혀 있는 내 글씨들을 보니 반갑고 뿌듯해진다.

<나의 첫 필사노트>를 보자마자 '아, 이거다!'라는 생각을 했다. 필사는 책을 베껴 쓰는 것을 말한다.

아직 한 번도 필사를 해본 적이 없지만 해보고 싶었다. 필사를 하기 위한 책도 몇 권 골라놓았는데 막상 하려고 하니 이런저런 핑계로 못 했다.

그런데 이 책은 참 간단하다. 책을 보면서 바로 쓰면 되니까.

이효석의 <메밀 꽃 필 무렵>, 이상의 <날개>, 김유정의 <봄봄>은 우리나라 대표적인 단편소설들이다. 이 책에는 각 작품들이 두 번씩 반복되어 실려 있다. 한 번은 필사를 위해 왼쪽면만 나와있고, 또 한 번은 원문이 그대로 나와 있다. 그리고 각 작품의 필사를 위한 몇 가지 도움말이 나와 있다.

처음에는 책에다 직접 쓴다는 것이 좀 망설여졌다. 노트도 아닌 흰 종이 위에 책 내용을 베껴 쓰는 것이라 어떤 펜을 써야 좋을지, 어떻게 써야 잘 쓸지 등등 걱정이 앞섰던 것 같다. 하지만 막상 펜을 들고 써보니 필사의 매력을 알게 됐다.

글자 하나하나를 속으로 읽으면서 손으로 쓰는 과정이 한땀한땀 바느질을 하는 과정처럼 느껴진다. 좋은 작품을 필사하는 것은 작품에 대한 최고의 예의인 것 같다. 읽고 쓰면서 배우는 학생이 된 기분이다. 필사가 숙제였다면 엄청 괴로웠겠지만 스스로 선택한 필사는 나를 위한 선물 같다. 조용히 혼자만의 시간을 보낼 때, 필사를 해보니 다른 잡념이 사라지는 것 같다. 글자 하나라도 틀리지 않게 잘 쓰기 위해서 저절로 집중하게 된다. 엄청 맛난 음식을 아주 천천히 꼭꼭 씹어 먹는 느낌이랄까.

이 책에 실려 있는 세 작품은 우리 문학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휼륭한 작품이다. 학창 시절에 단편소설로 처음 읽었던 작품들을 이렇게 직접 써볼 수 있어서 더욱 의미가 있는 것 같다. 필사를 꼼꼼히 모두 마친 책을 출판사로 보내면 책 한 권을 더 보내준다고 한다. 하지만 정성껏 필사한 책은 기념으로 간직하고 싶다. 작가의 마음이 되어 한자한자 써내려간 모든 것이 나의 작품처럼 느껴진다. 소설가 조정래님은 모든 작품을 원고지에 직접 쓰신다고 하던데 새삼 놀랍고 존경스럽다. 직접 손으로 쓴다는 것이 다소 불편하고 힘들지만 그 과정 속에서 얻는 기쁨이 더 크다는 걸 알게 됐다. 앞으로 펜으로 쓸 일이 많아질 것 같다.

나의 첫 필사노트 덕분에 좋은 작품을 음미하고 직접 쓰는 즐거움을 얻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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