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엠마뉴엘 1 - 육체에 눈뜨다 ㅣ 에디션 D(desire) 7
엠마뉴엘 아산 지음, 문영훈 옮김 / 그책 / 2014년 12월
평점 :
예술이냐, 외설이냐.
<엠마뉴엘>은 20세기 에로티시즘을 표현한 대표적 작품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대부분은 소설보다는 동명의 영화 <엠마뉴엘>로 많이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엠마뉴엘 역을 맡았던 실비아 크리스텔은 네덜란드의 무명 배우였는데 이 영화를 통해 유럽뿐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유명해졌다. 소설에서 묘사된 선정적인 장면들이 영화라는 영상을 통해 적나라하게 표현되었다고 하니 일반 관객들에게는 굉장히 충격적인 에로 영화였을 것 같다.
과연 소설로 보는 <엠마뉴엘>은 어떠한가.
저자 엠마뉴엘 아산의 본명은 마라얏 비비드이며 <엠마뉴엘>은 그녀의 자전적 소설이라고 한다. 1950년대 태국에 주재했던 프랑스 외교관의 부인으로 알려져 있는데, 소설은 남편과 공동으로 집필했을 거라는 추측이 일반적이다. 프랑스 출간 당시 경이로운 판매를 기록했고 실비아 크리스텔 주연의 영화로 만들어졌을 때는 세계적인 열풍을 일으켰다고 한다. 하지만 실제 저자에 대한 정보는 아직까지 알려진 것이 없다고 한다. 여기까지가 저자와 작품에 대한 소개이다.
짐작컨대 이 소설은 여자가 쓴 것이 아닐 것 같다. 그래서 남편과 공동 집필한 것으로 추측하는 게 아닐까 싶다. 철저히 베일에 가려진 저자라는 점에서 여러가지 의문이 든다. 자전적 소설로 포장한 것 자체가 매우 의도적으로 느껴진다. 여성의 욕망을 표현하는 듯 하지만 실제로는 남성이 원하는 여성 '엠마뉴엘'을 창조해낸 것 같다. 순수한 열아홉의 여성이 열 살 많은 남성과 결혼하여 성에 눈을 뜨게 된 것까지는 알겠는데 그 다음은 점점 성적인 욕망에 빠져들어간다는 게 좀 극단적인 설정 같다. 아이들이 사탕의 달콤한 맛을 알게 되어 자꾸 사탕을 찾는 것과 순진했던 여성이 갑작스럽게 성 중독자처럼 구는 건 전혀 다른 문제다. 건강한 성인 남녀가 성적인 쾌락을 추구하는 것은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책에서 묘사하듯이 실제 생활에서 한다는 건 일반적인 경우는 아닌 것 같다. 마치 삶의 유일한 목적이 성적 쾌락처럼 느껴진다. 도덕이나 윤리는 아예 존재하지 않는 것 같다. 물론 그 당시에 프랑스 외교관 부인들의 생활이 어떠한지는 알 수 없다. 정말로 성적으로 개방적인 삶을 누렸는지는 모르겠지만 너무 퇴폐적인 모습으로 비쳐진다. 삶의 다양한 즐거움을 놓쳐서는 안되겠지만 성적 즐거움만을 위해 산다는 건 현실에선 병적 수준으로 보인다. 어찌됐건 <엠마뉴엘>을 읽으면서 이 책이 출간될 정도로 이 사회가 좀더 개방이 되었구나를 느낀다. 과거 우리나라에서는 현직교수가 색정소설을 출간하여 논란이 된 적이 있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표현의 자유를 억압한다는 반박도 있었지만 당시 사회 분위기를 고려한다면 십분 이해되는 부분이다.
왠지 야한 소설이나 영화는 보면 안 될 것 같은 암묵적인 억압이 있었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하면 너무 순진했던 것 같다. 그만큼 성문화가 폐쇄적이고 보수적이었다. 요즘 이십 대 청춘들이 성에 대해 개방적인 것과는 너무나 대조적이다. 그 당시에는 차마 낯 뜨거워서 못 봤던 것을 이제서야 책으로 보게 된 것이다. 그래서 오히려 <엠마뉴엘>을 객관적으로 보게 되는 것 같다.
<엠마뉴엘>은 프랑스 소설이다. 성적으로 개방된 나라, 프랑스. 인간이 가진 무한한 상상력을 동원하여 성적으로 느낄 수 있는 모든 쾌감을 자극하는 것이 이 작품을 쓴 목적이 아닐까 싶다. 어쩌면 이 소설을 쓴 당사자는 현실에서 불가능한 성적욕망을 글로 해소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만큼 영화같은 이야기다. 엠마뉴엘처럼 완벽한 몸매의 아름다운 여성이라면 모든 사람과 육체적 사랑을 나눌 수 있다? 굳이 엠마뉴엘의 삶을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의 윤리적 잣대로 판단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소설은 소설일뿐, 야한 소설이나 영화를 통해 자신의 성적 환타지를 충족시키는 건 개인의 자유 영역이다. 은밀하고 야한 것에 관심이 가는 건 본능이다. 그런 면에서 <엠마뉴엘>은 성적 본능에 충실한 소설로 가볍게 보면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