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유자적 피플 - 무중력 사회를 사는 우리
이충한 지음 / 소요프로젝트 / 2014년 12월
평점 :
절판


근래 <인터스텔라> 영화를 봤다. 식량난으로 허덕이는 지구를 벗어나 우주로 떠난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뜬금없이 웬 SF 영화 이야기를 하느냐면, '무중력'이라는 단어 때문이다.

편협한 사고의 한계인지는 몰라도 '무중력'이라는 단어를 우주 이야기 이외에 사용했다는 것이 굉장히 강렬한 인상을 주었다.

사회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고 둥둥 떠나다니는 사람들, 이른바 '무중력 인간'으로 표현한 것이 참신하면서도 너무나 적절한 것 같다.

이 책을 쓴 저자는 대기업 카드 회사에 '창의 인재'로 채용되었지만 적응하지 못하고 그만둔 뒤 작곡가로 활동하다가 대학원에서 사회학 공부를 한 것이 밑천이 되어 사회적기업 '유유자적 살롱'을 운영하게 된 사람이다. 그렇다면 '유유자적 살롱'은 어떤 곳인가, 궁금할 것이다.

우선 사회적기업이라는 용어가 낯선 사람을 위해서 설명을 덧붙이자면, 비영리조직과 영리기업의 중간 형태로 취약계층의 일자리 제공이나 사회서비스 제공, 환경보호처럼 사회적으로 가치 있는 활동을 통해 이윤 창출을 하는 조직을 뜻한다. 저자는 인디 뮤지션들과 함께 '유유자적 살롱'이라는 사회적기업을 만들어 그곳에서 무중력 청소년을 위한 '집 밖에서 유유자적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무중력 청소년들을 이 프로젝트를 통해 자신에게 알맞은 악기를 배우고 다함께 공연을 준비한다.

사회부적응자, 자퇴 청소년, 은둔형 외톨이 등등 어딘가에 속하지 못하고 혼자 방황하는 사람들을 일컫는 부정적인 용어들이 많다. 무심코 떠드는 말들이 우리를 가두는 족쇄가 될 때가 있다. 하지만 '유유자적 살롱'(줄여서 유자 살롱)에는 무중력 청소년과 유유자적 피플이라는 긍정형 인간만 있다.

유독 남들 시선을 의식하며 살아가는 우리 사회에서 무중력 인간으로 산다는 건 상당히 괴롭고 힘든 일이다.

이 책 속에서는 상처 입고 절망 속에 있던 청소년들이 유자 살롱을 통해 본연의 자아를 찾아가는 과정이 덤덤하게 나온다. 굳이 그 아이들이 겪은 고통을 들춰낼 필요는 없을 것이다. '집 밖에서 유유자적 프로젝트'가 무중력 청소년들을 끌어당기는 첫 시도였기 때문에 그 자체로 의미가 있다고 본다. 완벽히 성공적인 프로젝트가 아닐 수도 있다. 프로젝트에 참가할 때는 그 안에서 잘 적응하던 아이들이 다시 집안에 틀어박혀 나오지 않는 경우처럼 말이다. 모든 일에는 시행착오가 있게 마련이다. 그만큼 무중력 피플에서 유유자적 피플이 되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사실 유자 살롱의 이야기를 보면서 감동한 것은 프로젝트의 성공 여부가 아니었다. 여러가지 어려움 속에서도 서로의 잡은 손을 놓지 않는다는 것, 그래서 언젠가는 서로의 중력을 느끼며 자신만의 유유자적 삶을 찾을 거라는 믿음 때문이다. 그것이 각박한 무중력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들을 붙잡아 주는 든든한 동아줄이 되지 않을까라는 기대를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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