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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과 짐 ㅣ 에디션 D(desire) 6
앙리 피에르 로셰 지음, 장소미 옮김 / 그책 / 2014년 12월
평점 :
영화 <줄 앤 짐>의 원작 소설을 만났다.
이제야 알 것 같다. 프랑스 영화가 난해한 것이 아니라 그들을 이해하지 못했던 거라는 걸 말이다.
자유로운 영혼과 육체의 상관 관계는 무엇일까?
두 남자 줄과 짐의 우정이란 무엇일까? 사랑하는 여인까지 공유할 수 있다는 게 도저히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렵다. 또한 그것이 여인의 선택이란 점이 핵심이다. 그녀가 줄을 사랑했고, 그 다음에는 짐을 사랑했다. 줄과 짐은 그녀가 그들 중 한 명을 사랑할 때 나머지 한 명은 둘의 사랑을 축복했다. 그래야만 그들 곁에 머물 수 있기 때문이다.
소설로 만난 줄과 짐 그리고 두 남자의 공통분모 속에 있는 여인들은 현실과 동떨어진 세계를 살고 있는 것 같다. 자유롭게 연애하며 사랑을 나누고 여행을 다니며 젊음을 즐기는 그 모든 것이 청춘의 증거라면 그들은 영원한 청춘들이다. 여리고 아름다운 루시를 사랑하여 청혼했지만 거절당한 줄은 루시를 곁에 두고 싶어 친구인 짐과 루시가 결혼하기를 바란다. 하지만 루시는 두 남자들에게 우정 이상의 선을 넘지 않는다. 오직 바라보는 것만 가능한 예술품 같은 여인, 루시는 남자들이 꿈꾸는 이상적인 여인상 같다.
평생 자유만을 즐길 것 같은 예술가적인 줄이 원했던 건 결혼이었다. 결국 그는 그리스 여신의 미소를 닮은 카트린과 결혼함으로써 자신의 영혼을 가정에 정착시키는 데 성공한다. 하지만 그건 짐이 카트린과 만나기로 약속한 날 서로 어긋났기 때문에 카트린의 선택을 받지 못한 결과였다. 이후 전쟁으로 인해 연락이 끊긴 채 살아가던 짐은 줄의 편지를 통해 소식을 듣게 된다. 줄은 카트린과 두 딸을 낳아 살고 있었고, 짐을 그들의 집으로 초대한다. 놀랍게도 줄이 짐을 초대한 건 카트린을 위해서였다. 그녀는 새로운 사랑이 필요한 여인이었다. 짐에게 사랑을 표현하는 카트린과 그것을 지켜보는 줄은 아무런 갈등없이 함께 지낸다. 줄은 카트린을 위해 이혼을 해주고 그들과 함께 지내면서 마치 수도승처럼 글만 쓰며 조용히 살아간다. 짐과 카트린은 두 사람의 아이를 낳기 위해 결혼을 하지만 좀처럼 아이가 생기지 않고, 그 와중에 오해가 생겨 헤어진다. 다시 줄과 재혼한 카트린을 보고 짐은 자신의 오랜 친구이자 연인이 질베르트에게 돌아간다. 카트린은 짐이 다른 여자를 만나면 질투하고 그에 대한 복수로 알베르, 해롤드 등 다른 남자와 사랑을 나눈다. 그리고 자신이 복수한 사실을 짐에게 말한다. 짐은 줄과 달리 크게 분노하고 질투한다. 카트린은 열정적인 사랑만큼이나 질투를 삶의 에너지처럼 분출시킨다. 카트린의 삶은 자유롭다기 보다는 주체할 수 없는 본능으로 늘 불안정해보인다. 자신을 현실에서 붙잡아 주는 남자인 줄과 사랑의 환상을 충족시켜주는 남자인 짐 사이에서 위태롭게 외줄을 타는 것 같다. 짐은 오래된 연인 질베르트가 줄과 같은 존재라고 주장하지만 카트린은 절대로 질베르트는 줄이 아니라고 말한다.
짐과 카트린의 사랑이 정말로 운명적 사랑이라면 왜 그들 사이에 다른 사람들이 함께 있어야 하는 건지 모르겠다. 굳이 결혼을 한 뒤에 두 사람의 아이를 낳으려고 한 것도 이해할 수 없다. 운명의 장난처럼 짐과 카트린의 아이는 세상에 나올 수 없었지만 말이다. 카트린은 두 딸을 낳고도 모성애에 연연하는 엄마가 아니었던 것을 보면 아이를 갖고 싶은 짐을 위한 카트린의 노력이었던 것 같다.
정말 이상한 것은 이들의 삶을 전혀 공감할 수도, 이해할 수도 없는데 계속 바라보게 된다는 점이다. 한 번 펼쳐든 책은 순식간에 마지막 장에 이르게 된다.
앙리 피에르 로셰는 자신의 첫 소설 <줄과 짐>을 일흔네 살에 출간하며 작가가 되었다. 이십대 때 지녔던 작가의 꿈을 일흔 넘은 나이에 이뤘다는 사실이 놀라울 따름이다. 어쩌면 인생의 연륜이 농축되어 들려준 이야기라서 더욱 실감나게 몰입되었는지도 모르겠다. 타인의 인생을 어떤 편견이나 판단 없이 그냥 묵묵히 바라볼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 같다. 줄과 짐의 만남은 190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근 100년 전이라는 시간이 무색하게 느껴질 정도로 그들의 삶에서 연애와 사랑은 자유분방하다. 두 남자와 한 여자가 동시에 사랑할 수 있을까? 삼각관계에 처한 사람들이 서로를 질투하지 않고 공평하게 사랑을 나눈다는 게 현실에서 가능할까? 놀라운 이국의 풍경을 바라보듯 치열한 사랑의 끝을 본 것 같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이보다 더 솔직하고 적나라한 삶이 또 있을까.
다리 위를 신나게 달리는 세 사람. 원래 원서에는 여주인공 이름이 카트인데 워낙 영화로 널리 알려진 작품이라 영화 속 이름인 카트린으로 번역되었다고 한다.
줄 + 짐 = 카트린?
아마도 이 책 덕분에 프랑소와 트뤼포 감독의 영화 <줄 앤 짐>을 다시 보게 될 것 같다.
"내가 꿈꾼 사랑은 아닐세."
짐이 물었다.
"그런 사랑이 존재하기는 할까?"
"물론일세. 루시에 대한 내 감정이 있잖나."
'그건 자네가 그녀를 소유하지 못했기 때문이야.' 짐은 이 말을 속으로 삼켰다.
줄이 이어 말했다.
"게다가 내가 날 잘 아는 데, 난 아마 어떤 여자가 날 사랑한다면 절대 용서하지 않을 걸세. 날 사랑한다는 건 타락했다거나 타협했다는 걸 의미하니까……. 루시는 용케 빠져 나갔지. 그녀는 나의 아주 작은 부분도 받아들이지 않네."
짐이 말했다.
"모든 남자들이 그렇게 생각할 수 있네."
줄이 대답했다.
"응, 생각할 수는 있겠지. 하지만 난 정말 그렇게 생각하는 걸."
"그렇다면 대단하고 존경스러운 일일세. 어떤 의미로는 조금은 순교 같은 거니까. 그게 바로 자네 인생의 핵심일세. 혹시 루시가 자네를 사랑한다면 ……"
줄이 대답했다.
"그렇다면 더 이상 루시가 아닐 걸세." (44-45p)
카트린은 만사를 축제로 만들었다. ...... "삶은 휴가의 연속이어야 해요." (111p)
어느 날, 카트린은 아픈 큰딸을 데리고 병원에 가서 의사한테 말했다.
"제 외동딸이에요, 선생님."
깜짝 놀란 큰딸이 동생을 언급했고, 의사가 물었다.
"어떻게 된 거죠?"
카트린이 대답했다.
"그 애는 제 둘째 외동딸이에요."
아마 연인들에 대해서도 이렇게 말할 수 있었으리라. (138-139p)
카트린이 말했다.
"우리는 정말이지 순간 동안만 사랑하는 것 같아."
이 순간은 늘 다시 찾아들었다.
"사랑은 사람들이 자진해서 받아들이는 형벌이야."
줄이 말했다. (284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