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로 떠나는 영성순례 - 이어령의 첫 번째 영성문학 강의
이어령 지음 / 포이에마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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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령님의 신간이라 관심이 갔다. 하지만 잠시 망설였던건 영성순례라는 제목 때문이었다.

종교적인 편견은 없지만 굳이 찾아 읽고 싶을 정도로 종교적 관심을 가지진 않은 탓에 읽기를 포기하려고 했다. 그래도 나를 붙든 건 이어령님의 책이라는 것.

도대체 이 책의 정체가 뭔지는 확인해봐야 되지 않을까. 제목에 연연하지 말고 먼저 내용에 집중하자는 생각으로 펼쳐보니 역시 이어령님의 글이구나,라는 감탄을 했다.

프롤로그에서 나의 망설임을 순식간에 몰아내는 시원한 설명이 나와 있었다.

우리는 왜 소설에서 영성을 찾으려 하는가.

여기서 '우리'는 실제 우리가 아니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는 소설을 읽으면서 그 안에서 영성을 찾을 수 있다는 생각조차 해본 적이 없었으니까. 그러니까 우리는 이 책을 통해 읽기 전의 '나'를 읽은 후의 '우리'로 포함시키면 된다. 어쩌면 영성이라는 의미를 단순히 종교적인 측면에서만 국한되어 이해하고 있었던 '나'의 오류를 깨뜨리는 시간이 아니었나 싶다. 내게는 종교가 삶 속에 스며들지 않는 뭔가 어긋나는 부분들이 있다. 삶으로 온전히 받아들이기에는 세속에 찌들었다는 자괴감이랄까. 혹은 순수의 영성을 거부하고 싶은 일탈심리라고 해야 할까.

그러나 소설은 다르다. 그냥 우리의 삶을 느낄 수 있는 소소한 이야기일 뿐이다. 전혀 거부감을 느낄 것도 없고 들려주는 대로 순순히 들을 수 있다. 바로 그 소설을 이 책에서는 우리가 경험할 수 있는 또다른 영성의 세계라고 설명한다. 대신 우리가 볼 수 있는 순간은 찰나에 불과하다. 성경에 나오는 가나의 혼인잔치가 눈 앞에 펼쳐졌는데 정작 나는 초대받지 못한 채 문 밖에 서 있다고 상상해보자. 그 때 초대받은 사람이 나타나 문을 열고 들어가는 순간, 그 짧은 순간에 시끌벅적하고 화려한 혼인잔치 장면을 보게 되는 것이다. 그것을 저자는 시이고, 문학이고, 소설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이 책에서는 다섯 편의 소설을 만나게 된다. 즉 다섯 개의 문으로 잠시 열린 틈을 들여다볼 수 있는 기회를 얻는 것이다. 크리스천들이 기도를 통해 얻는 영성체험이 아니더라도 문학평론가의 입장에서 다섯 편의 소설을 분석하는 것만으로도 영성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것이다. 일개 독자로서 이 소설들이 영성을 찾는 방법인 줄 알았다면 좋았겠지만 이 책이 아니었다면 과연 스스로 찾았을까라는 의문이 든다.

도스토옙스키의 <카라마조프 형제들>,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말테의 수기>, 앙드레 지드의 <탕자, 돌아오다>, 빅토르 위고의 <레미제라블>, 얀 마텔의 <파이 이야기>.

청소년 시절에 읽었던 소설들을 어른이 되어 다시 읽기는 쉽지 않다. 소설은 변함이 없는데 그 소설을 읽는 사람의 시각에 따라 다르게 느껴진다는 사실이 새삼 놀랍다. 소설을 줄거리로만 기억하던 나이에서 이제는 삶으로 공감하는 나이가 되었다. 나이가 든다는 게 몸은 늙어가도 마음과 정신은 더욱 깊어지고 넓어질 수도 있다는 걸 생각하면 꽤 괜찮은 거구나 싶다. 쌀쌀해진 찬바람에 몸으로 나이를 체감하며 서글펐는데 소설로 떠나는 영성순례 덕분에 앉아서도 먼 여행을 다녀온 듯 뿌듯한 시간이었다. 하지만 진짜 자신만의 영성순례길에 오르는 길은 위대한 문학작품을 직접 읽는 방법뿐이란 걸 잊지 말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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