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넘어진 그 자리에 머물지 마라 - 정신과 의사가 들려주는 암이 내게 가르쳐준 것들
김준기 지음 / 수오서재 / 2014년 10월
평점 :
의사도 사람이다. 그런데 병원에서 의사는 사람이 아닌 것 같다. 환자 입장이 되어보면 알 수 있는 것들이 있다.
이 책은 정신과 의사의 암 투병기라고 볼 수 있다. 저자는 국내 정신과 분야에서 대표적인 트라우마 연구자라고 한다. 그런 그가 어느날 갑자기 암 진단을 받고 환자 입장이 되면서 삶이 달라지기 시작한다.
평상시에 건강을 위해 신경쓰고 자기 관리를 잘 해왔는데, 더군다나 한달 전에 받은 검진결과도 정상이었는데 갑작스런 복통으로 병원을 갔더니 암이라고 한다면?
나 같아도 억울하고 기가 막힐 것 같다. 차라리 술이나 왕창 마시고 담배도 피면서 막 살았다면 또 모르겠다. 세상에 살면서 경험할 수 있는 온갖 트라우마를 지닌 수많은 환자들을 진료해온 정신과의사에게 찾아온 암은 자기자신을 환자로 만들어버린 것이다. 20여 년간 의사로 살아온 사람이 한 순간 환자가 된다는 건 그 자체가 엄청난 충격일 것 같다.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있는 분야인데도 불구하고 스스로를 치료한다는 건 힘든 일이다.
암 환자들이 겪어야 하는 고통에 대해서는 많이 들어왔지만 그 강도가 어느 정도일 지는 짐작하기 어렵다. 하지만 극심한 통증을 경험해본 적이 있다면 아주 조금은 짐작할 수 있을 것 같다. 만약 통증이 멈추지 않고 지속된다면 그러한 삶에서도 긍정적으로 살 수 있을까를 묻는다면 나는 바로 답할 수 있다. 살아 있는 동안 지속되는 통증이라면 그 삶을 멈추고 싶을 거라고 말이다.
암 진단을 받고 투병을 하면서 겪게 되는 육체적인 고통 이외에도 심리적인 고통이 엄청난 것 같다. 암이 가져다 준 절망과 우울, 분노와 같은 부정적인 감정들을 어떻게 풀어내야 할까. 아마도 암이 주는 가장 큰 공포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아닐까 싶다.
저자는 정신과의사라서 그런지 자신의 감정에 대해 굉장히 솔직하게 이야기하는 것 같다. 자신이 담당하는 환자들에게 야단을 맞는다거나 오히려 위로를 받는 정신과 의사를 상상해 본 적이 없어서 놀랍다는 생각이 들면서 한편으로는 인간적인 따스한 정을 느낄 수 있어서 좋았다. 실력 있고 냉정한 의사는 기계 같다. 환자라면 누구나 인간다운 따스함을 지닌 실력 있는 의사를 원한다. 실력도 없으면서 냉정하기만 한 의사라면 재앙 수준이다.
암 치료 후 2년째라는데 여전히 재발에 대한 두려움에 떠는 모습은 충분히 이해된다. 이 책을 출간하면서도 혹시나 걱정했다고 하니 암이 주는 공포만큼이나 의사라는 직업이 주는 부담감도 꽤 크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의사도 사람인데 아플 수 있고, 환자가 될 수 있다는 걸 종종 잊는 것 같다. 사람은 누구나 아플 수 있다. 우리 삶에서 피할 수 없는 질병의 고통과 심리적 트라우마를 어떻게 견뎌낼 것인지 이 책을 통해 살펴보면 좋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