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에 쓴 인생론
박목월 지음 / 강이북스 / 2014년 8월
평점 :
품절


<밤에 쓴 인생론>은 박목월 시인의 수필집이다.

1975년 '삼중당'에서 간행된 초판을 현대에 맞게 재정리한 책이다보니 어휘가 다소 낯선 부분이 있지만 내용을 이해하기에는 전혀 문제되지 않는다.

처음에는 책 제목만 보고 읽고 싶다는 생각을 했는데 저자를 보니 유명한 시인의 이름이라 놀라움이 더 컸던 것 같다.

시인의 인생은 어떠했을까.

우선 밤이란 묘한 시공간을 제공하는 것 같다. 고요한 어둠, 정적 속에 홀로 깨어 있으면 나라는 존재가 현실을 초월한 듯 느껴질 때가 있다. 어쩌면 글을 쓰는 이들이 밤 시간을 좋아하는 것도 그런 이유이지 않을까라는 상상을 하게 된다. 그래서 책 제목을 보면서 '밤에 쓴'이란 문장에 주목하게 된 것 같다. 우리네 사는 이야기야 비슷비슷하겠지만 밤에 나누는 인생 이야기라면 뭔가 더 특별하지 않을까. 이건 순전히 나의 사족이고, 책 속에는 '밤에 쓴'이란 문장이 무색하리만치 그냥 시인의 인생이 그려져 있다.

'그냥'이란 표현은 실망해서가 아니다. '밤에 쓴'에 집착한 내 탓을 하는 것이다.

첫 장에 <부부의 대화>에서 아내의 변을 읽으면서 전통적인 현모양처의 모습이 그려졌다. 가난하지만 화목한 가정을 꾸려가는 시인의 아내가 남편을 섬기고 아이들을 돌보며 무던하게 살아온 세월의 힘이 느껴졌다. 또한 남편의 변을 읽으면서 어떻게 한 여자와 남자가 만나 30년을 함께 살 수 있는지를 알게 됐다. 같이 길을 걸어도 남편은 앞서가고 아내는 두어 걸음 떨어져 걷는 모습을 떠올려보라. 성격 급한 남편과 느긋한 아내가 서로 잘 맞을 리 없는데도 이들 부부는 떨어진 거리만큼의 차이를 인정하고 살아온 것이다. 어려운 살림에도 4남1녀를 모두 대학공부 시켜가며 올바르게 키운 것은 아내의 역할이 컸다고 생각한다. 돈에 관해서는 일절 남편에게 부담을 주지 않았다는 아내, 삼십대 말에 남편이 잠시 다른 여자에게 눈을 돌린 적도 있지만 묵묵히 돌아오기를 기다렸다는 아내. 세상에 이런 아내가 또 있을까 싶다.

남편이 말하는 인생 이야기 속에 아내에 대한 고마움이 느껴지긴 하지만 사랑, 고독, 헤세와 릴케, 괴테에서 젊은 날 헤어진 여인에 대한 부분에서는 잠시 주춤하게 된다. 그녀의 집을 찾아가 향기롭고도 씁쓸한 차 한잔을 마신 후 "또 뵙겠습니다."라는 하직 인사를 하고 돌아설 때 하늘에서 펑펑 쏟아지는 눈이 아름답게 묘사되었지만 아내의 눈으로 볼 때는 과연 그러할까 싶다. 여기서 아내는 시인의 아내가 아니라, 세상의 모든 아내를 뜻한다.  가슴 뜨거운 사랑의 감정이 왜 아내가 아니고 다른 여자여야 하는지는 하얀 눈이 쌓이듯 조용히 덮어두겠다.

박목월 시인의 벗 조지훈 시인에 관한 추억은 애틋하고 애달프다. 일제 강점기하에서 글을 쓴다는 것만으로도 서로의 심정이 통했던 벗이었다고. 

조지훈 시인이 보낸 '낙화'라는 시 "꽃이 지기로소니 바람을 탓하랴 주렴 밖에 성긴 별이 하나 둘 스러지고 귀촉도 울음 뒤에 머언 산이 다가서다 촛불을 꺼야 하리 꽃이 지는데 꽃 지는 그림자 뜰에 어리어 하이얀 미닫이가 우련 붉어라 묻혀서 사는 이의 고운 마음을 아는 이 있을까  저허하노니 꽃이 지는 아침은 울고 싶어라."에 화답하여 보낸 것이 박목월 시인의 '나그네'라는 시 "강나루 건너서 밀밭 길을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라고 한다.

박목월, 조지훈, 박두진 세 명의 시인이 함께 <청록집>이라는 시집을 내게 된 이야기와 지훈에 대한 추억을 보면서 우리도 언젠가 겪게 될 이별을 짐작하게 된다. 우리의 표현이 시인과 비교할 수는 없겠지만 시를 쓰는 마음처럼 참된 것, 착한 것, 아름다움을 동경하며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한 편의 시를 읽듯이 시인의 인생을 읽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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