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미안 꿈결 클래식 1
헤르만 헤세 지음, 박민수 옮김, 김정진 그림 / 꿈결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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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미안.

마치 오래된 친구 이름처럼 느껴진다.

세월이 흘러도 여전히 좋은 문학작품을 읽으면서 마음까지 흐믓해지는 시간이었던 것 같다.

간혹 외국작품 중에는 번역이 부자연스럽거나 어색한 부분 때문에 작품 자체의 매력까지 반감시키는 경우가 있다.

과거에 읽었던 <데미안>은 번역이 문제될 만큼 안 좋았던 기억은 없다.

사실 <데미안>을 다시 만나고 싶어서 읽었을 뿐이지, 번역이 더 완벽한 책이라 선택한 것은 아니다.

일반 독자에게 번역을 비교하라는 건 그만큼의 자신감이겠지만 <데미안>이라는 작품이 번역에 의해 좌지우지 될 정도로 난해한 작품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오랜만에 만난 데미안은 여전히 매력적이다. 이제는 싱클레어의 시각이 아닌 헤르만 헤세라는 작가의 시각에 대해 살펴보게 된다.

싱클레어가 데미안을 처음 만난 시기가 열한 살도 채 되기 전이라는 건 어른이 된 입장에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다. 어린애가 생각하기에는 너무 심오한 내용이라 어른이 만들어낸 가상의 인물일 뿐이라고 말이다. 과연 그럴까?

과거를 돌아보면 열 살이라는 나이에는 뭔가 삶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기 시작할 때였던 것 같다. 헤르만 헤세의 삶을 봐도 수도원 학교에 입학하여 성직자의 길을 가려고 했지만 정신적 고통에 시달리다가 자살 시도까지 할 정도로 힘든 십대 시절을 보냈다. 시대가 바뀌었다고는 해도 청소년 자살은 늘어가고 있다. 무엇이 십대 아이들을 고통에 빠뜨리는 것일까. 헤르만 헤세는 에밀 싱클레어를 통해 불안하고 고통스러운 십대 소년의 내면을 보여준다. 그것은 누구나 겪어야 할 혹은 겪었던 시절의 모습이며 인간 본질의 내면을 그려내고 있다고 생각한다. 데미안이 들려주는 이야기들은 그것이 절대적인 진리여서가 아니라 우리의 낡은 생각들을 흔들어주기 때문에 의미가 있는 것이다. 생각이 생각 자체로 머무는 것이 아니라 삶에서 실천으로 이어질 수 있는 생각으로서의 가치를 일깨워준다.

소년이지만 어른의 얼굴을 하고 있고, 어떤 순간에는 어른도 아니고 아이도 아니면서 늙거나 젊지도 않고, 어쩐지 천 살은 된 것 같은, 아니 시간을 초월하여 우리와 전혀 다른 시간의 지배를 받고 있는 듯한 모습을 상상할 수 있는가? 아마도 그 때문에 연극으로 본 <데미안>은 너무도 실망스러웠던 것 같다. 평범한 사람의 모습으로 데미안인 척 한다는 건 용납될 수 없는 것 같다. 이렇듯 데미안의 존재는 세월의 흐름과는 무관하게 여전히 강력한 힘을 지니는 것이 아닌가 싶다.

"내 모습은 이제 완전히 그와, 내 친구이자 인도자인 그와 똑같았다." (265p)

<데미안>의 마지막 문장이다. 문득 지금 이 순간 거울에 비친 나를 보고 싶다. 그 속에서 나는 어떤 내 모습을 보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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